[인터뷰]서경우 원자력연 연구로공학실장
제안서 제출 부정적 의견 많아
컨소시엄 참여 美 기업 파산해 급히 변경도
글로벌 수요 증가 속 기술력 입증
의료·신재생 산업에도 기여
서경우 실장 "韓 원자력 우수성 알려 기쁘다"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지난 17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미국 미주리대학(MU)과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 사업의 첫 단계인 ‘초기설계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계약은 한국이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에 원자로 기술을 수출한 최초의 사례로, 66년 전 미국의 기술을 도입했던 한국이 이제는 기술을 역수출하게 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성과의 중심에는 서경우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로공학실장이 있다. 그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1959년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지원받은 한국이 66년 만에 그 미국에 자체 원자로 기술을 수출하게 된 것은 곧 한국의 연구용 원자로 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서 실장은 특히 이번 계약이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한 이후 체결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민감국가 지정에도 불구하고 계약이 성사됐다는 것은 이 문제가 한미 간 원자력 기술 협력에 실질적인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며, 이번 계약의 외교적·산업적 의미 또한 함께 짚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주요 인사.(왼쪽부터)주한규 원장, 임인철 부원장, 서경우 실장.(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도전부터가 성과였다”…수출 뒤에 숨은 집념의 시간
한국이 미국 미주리대학과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 초기설계 계약을 체결하며 원자력 종주국에 기술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처음 사업 제안서를 준비할 당시만 해도 대내외적으로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제안서 제출까지 주어진 시간은 매우 촉박했고, 미국 측이 제시한 요구 사양 역시 까다로웠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애초에 응찰 자체가 무리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과 임인철 부원장의 강한 의지, 그리고 연구로 ‘하나로’ 운영 경험 등이 뒷받침되며 “설사 수주에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도전해 보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후 2023년 8월 사전 자격심사를 통과한 연구원 컨소시엄은 2024년 1월 말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예상과 달리 최종 협상대상자 발표는 지연됐다. 그러던 중 연구원 컨소시엄이 ‘준결승 진출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식 일정에는 없던 단계였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되면서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음을 예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예기치 못한 변수도 있었다. 당시 컨소시엄의 미국 파트너였던 USNC가 갑작스럽게 파산하며 사업의 향방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연구원 측은 곧바로 새로운 파트너사인 MPR을 섭외하고, 미주리대 측에 해당 상황을 투명하게 설명했다. 이 같은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대응은 오히려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2024년 연구원 컨소시엄이 최종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서경우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로공학실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미국 대학의 요구에 맞춰 제안서와 답변서를 준비하면서 국내 협력사, 미국 내 파트너사와 매번 시차를 맞춰 새벽까지 회의하고, 문서를 겨우 제출한 뒤 피곤에 지친 몸으로 숙소로 돌아갔던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글로벌 수요 증가 속 기술력 입증…의료·신재생 산업에도 기여
이번 한국의 연구용 원자로 수출은 단순한 계약 체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재 전 세계에 설치된 연구용 원자로의 70% 이상이 가동된 지 40년을 넘긴 노후 시설이며, 원자력 발전 도입을 검토 중인 다수의 개발도상국들 역시 연구용 원자로 설치를 추진하고 있어 시장 수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 가운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확보한 기술력과 사업 역량은 국제 경쟁력을 재차 입증한 셈이다.
서경우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로공학실장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청정에너지 수요 증가와, AI·데이터 산업 발전을 위한 안정적 전력 기반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용 원자로가 보건과 첨단 산업에 직접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국민 건강에 중요한 암 진단 중 80%의 경우에 연구용 원자로에서 만든 방사성 동위원소가 사용되고 있으며, 풍력발전이나 태양열 발전에 필요한 전력반도체 중 제일 우수한 것은 중성자를 이용해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강민구 (science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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