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 정치권·노동계 시선집중
국힘 '유연히' vs 민주 '도입 확고'
한국, 근로시간 대비 생산성 낮아
임금·근무시간 등 세밀 협의 필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6월 3일 치르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 국민이 주목하는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주4일제 도입 여부이다. 정치권은 물론, 노동계,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주4일제의 향방을 바라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모든 국민이 실생활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표심에도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국내는 일부 대기업이 근무환경을 유연하게 하는 과정에서 주4일제를 도입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1월부터 격주로 주4일제를 시행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월 1회 금요일을 휴무해 주4일 근무하는 날이 있고, SK하이닉스는 초과근무시간을 활용해 월 1회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다만 SKT의 경우 주4일제 근무를 도입했다가 최근 축소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큰 선거 때마다 관심사인 주4일제
한국은 원래 주6일제를 시행하던 나라였다. IMF 외환 위기 이후 2003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주5일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면서 현재 주5일제가 정착됐다. 이후 핵가족화와 그로 인한 일과 가정의 양립 등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해외 선진국 대비 노동시간이 여전히 길다는 점 등을 근거로 주4일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2017년 대선 때까지는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주4일제 대신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주4일제 공약이 본격화한 것은 2022년 대선에서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주4일제를 1호 공약으로 제안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선후보도 주4일제 공약을 검토하고 단계별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윤석열 정부는 필요한 경우 초과근무하고 바짝 쉴 수 있는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게임 업계의 경우 (나중에 휴가를 부여하더라도) 최신 유행에 맞춰 게임을 적기에 출시하는 것이 중요한데, 주 52시간 제도 아래서는 효율적으로 일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주4일제 논의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OECD 38개국 중 연간 근로시간은 6위로 높아 줄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지만, 시간당 노동 생산성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어서 근무시간까지 줄이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평균 1742시간보다 130시간 길었다. 반면 시간당 노동생산성 역시 한국은 50.9$로 여러 선진국보다 낮았다.
이는 노동자 입장에서 일·가정 양립 등을 위해 주4일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지만 기업이나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노동생산성이 개선되지 않는 상태에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입법이 경제 활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을 우려, 양측이 충돌하면서 정부가 입장을 정하기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대선에서도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후보자들이 공약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유연한 접근' 국민의힘과 도입 의지 확고한 민주당
정치권에선 주5일제의 벽을 허물자는 주장이 잇따르며 표심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2월 10일 당대표로서 행한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우리는 OECD국가 중 장시간노동 5위로 OECD 평균(2022년 기준 1752시간)보다 한 달 이상, 149시간 더 일한다"며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4일 근무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월 하순 권성동 원내대표실이 편찬한 '이재명 망언집'에 해당 발언을 포함시켰다.
2023년 11월 15일 이 후보가 노동시간·노동 총량 확대 불가를 주장하며 "민주당은 약속했던 것처럼 주4.5일제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하자, 이튿날 윤재옥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동일한 급여를 주며 4.5일제를 감당할 기업은 극히 드물다"며 "달콤함만 부각해 국민을 상대로 불량정책을 눈속임하는 나쁜 정치"라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도 이달 14일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 회의에서 주4.5일제를 제안하면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주 5일제와 주 52시간 근로 규제는 시대의 흐름과 산업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획일적인 제도로서 유연한 근로 문화 구축에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법정 근로 주 40시간 준수 하에 52시간 근로제 폐지와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대안으로 들었다.
'월~목요일 하루 8시간 근무 외에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 4시간만 근무 후 퇴근'하는 울산 중구청 시범 사례를 거론하며 "총 근무시간이 줄지 않기 때문에 급여에도 변동이 없다. 기존 주5일 근무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유연한 시간배분을 통해 주 4.5일제의 실질적 워라밸 효과를 가져오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주 4일제 및 4.5일제는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지만 받는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이라고 날을 세웠다.
제3세력인 개혁신당에선 양당을 공히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이 주4일제 포퓰리즘의 서막을 열자 국민의힘은 주4.5일제란 무원칙한 추종 정책으로 맞대응하고 있다"며 "현행 주5일제를 주4일제로 전환하면서 임금수준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25% 이상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철폐와 기술혁신, 자동화·기계화를 통한 인력 대체로 구조개혁이 동반되지 않으면 주4일제가 '실업 사태'만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에선 '일률규제'를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5일 손경식 회장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를 만난 가운데 "주4일제나 주4.5일제를 시행했을 때 모든 업종, 모든 기업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은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정부 일각에선 임금삭감 없이 근로시간만 단축하는 방안에 중소기업계 상황 등에 관한 우려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악마는 디테일…구호보단 섬세한 설계가 중요
다만 주4일제 도입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합의도 완벽하게 이뤄진 상황은 아니다. 노동시간, 임금 등의 조건에 따라 주 4일제에 대한 선호도도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앞서 노동·시민단체 주 4일제 네트워크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공동으로 진행한 '주4일제 도입 및 노동시간 단축 인식조사'조사에서는 직장인 1000명 가운데 58.1%가 주 4일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매우 필요하다' 22%와 '필요하다'가 36.1%였고, '필요하지 않다' 30.2%,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11.7%였다. 여성(61.5%)이 남성(55.3%)보다 필요하다는 응답이 많았고, 20대(64.6%)와 30대(74.6%)가 50대(46.1%)보다 필요성에 공감했다.
반면 근무 일수가 임금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경우를 가정하자 주4일제보다는 주5일제를 선호하는 답변이 더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플랫폼 캐치가 Z세대 취준생 177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이달 초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Z세대 취업준비생 41%는 가장 선호하는 근무 형태로 '주4일제'를 선호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다만 근무일수에 따라 연봉이 책정될 땐 '주5일 근무'를 선택하겠단 응답이 54%로 가장 많았다. 같은 조건에서 주 4일제를 꼽은 응답은 32%로 줄었다.
28일 국회도서관 '국가전략정보포털'에서 발간한 '데이터플러스'에 따르면 한국보다 먼저 주4일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주5일제와 동일한 근무시간을 4일로 분산해 근무하는 방식이나, 주당 근무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임금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방식, 또 근무시간을 조정하며 임금도 조정하는 방식 중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각각 택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인 2022년 10월 주4일제를 법제화한 벨기에는 주당 근무시간 단축이 아닌 기존 근무시간을 4일에 나눠 근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업무량과 주당 근무시간, 임금이 동일 하다지만 일일 근무시간이 증가하면서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은 단점이다. 영국에서는 벨기에와 동일한 형태의 집약 근무제를 시행해 주4일제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며,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주당 근무시간을 32시간으로 줄이면서 임금은 동일한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해 현재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근무 체제는 노동자의 주당 근로시간이 감소하는 동시에 임금은 동일하지만, 대체인력 등 기업에 비용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벨기에와 유사한 '플렉스 타임제'를 활용한 '선택적 주휴 3일제' 도입이 늘고 있다. 일정 근무 시간을 채우면 주말을 제외한 평일 중 하루를 쉴 수 있는 방식이다.
한국 역시 주요 지자체에서 유연근무제가 늘어나고 있으나, 아직은 임신·육아 등 조건부 상황에서 재택근무나 4.5일제 근무 등 제한적인 시행에 머물고 있다. 어느 방식을 도입하든 장단점이 명확한 상황에서 한국의 근로 현실과 산업 구조에 걸맞은 섬세한 설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임재섭·한기호·전혜인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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