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가 열리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21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공공의대 설립이 다시 쟁점화되고 있다. 민주당과 시민단체는 공공의대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정당과 의료계는 설립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공의대를 설립해 공공·필수·지역 의료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27일 대한의사협회(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정면 비판했다.
이준석 후보는 “국내 의료체계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함께 약간의 공공성을 띠면서도 민간이 책임지는 민간의료 중심”이라며 “이 체계를 바꾸기 위해 공공의료 체계를 도입한다면 의사 면허를 분리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공의료 체계는 의사 면허를 이원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의대는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해결책이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이준석 후보는 “지방 근무 의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으면 공공의료 근무 기간을 채우고 자유롭게 서울로 올라오게 될 것”이라며 공공의대는 ‘섣부른 접근‘이며 윤석열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의료계 갈등을 부추기는 실효성 없는 대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앞서 수차례 추진됐다 무산된 공공의대 ’재점화‘
공공의대는 공공보건의료 분야에 특화된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의대다. 공공의대 설립은 졸업 후 일정 기간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의무적으로 근무하면서 의료 취약 지역이나 감염병 대응 등에 나서는 인력을 만들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공공의대 설립 여부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의료 취약지에서 의료 인력을 수급하는 데 점점 어려움이 생기면서 당시 여당과 야당 모두 비슷한 취지를 담은 공공의대 설치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나선 건 문재인 정부다. 2018년 서남대 의대가 폐과가 되면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 접어든 21대 국회에서 의료진 부족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공공의대 설립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의료인들의 파업, 의대생 국시 거부 사태로 이어지면서 결국 논의는 진전 없이 유보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논의는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의료인 수를 늘리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고 국립의대 신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남이 순천대와 목포대를 통합해 국립의대를 만들겠다고 밝혔고 윤 정부는 전남의 숙원 사업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며 새로 생기는 국립의대에도 의대 정원을 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공공의대와 더불어 국립의대 설립 또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24일 호남지역 공약을 통해 국립의대가 없는 유일한 광역지자체인 전남과 서남대 의대가 폐교된 전북에 국립의대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립의대 설립이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면 공공의대 설립은 앞선 정부들에서 추진했다가 중단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불을 더 크게 지폈다.
● 공공의료 강화하려면 필요 vs 공공의대 만능 해법 아냐
이재명 후보는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공공의료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해법의 하나로 공공의대 설립을 제시한 것이다. 의사가 부족한 곳에 의사 수를 늘리고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려면 공공의대가 선행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후보가 공공의대 설립에 시동을 걸자 공공의대가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살리는 방책이 될 수 있을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준석 후보는 지방 의료를 살리려면 공공의대 설립이 아니라 수가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지방에서 의료 행위를 했을 때 합리적인 수가를 적용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공공의대 설립이 ’2000명 증원 시즌2‘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서도 공공의대 설립 반대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아직 특정 공약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기는 이르다고 하면서도 공공의대 졸업생이 지역의료 인프라로 자리 잡으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공공의대는 '만능 해법'이 아니라고 밝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등 시민단체는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공의료 강화,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의대 설립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의대 설립은 문재인 정부 때 의사 파업의 원인이 됐다는 점, 의정 갈등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인해 공공의대 설립은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지방의료원들이 시설 노후화, 만성 적자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공의대 설립은 지역 및 필수의료를 살리는 방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정책이 탁상행정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실과 정책 간 괴리를 줄여야 하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차기 정부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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