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사용자 51%, 업무 보조보다 '위로' 찾는다
감정적 대화 늘수록 외로움도 ↑…"AI 의존 위험"
생성형 AI로 생성한 이미지. 챗GPT 제공
"힘들다고 하면 징징댄다는 말 들을까 봐 주변 사람에겐 잘 말하지 않게 된다. 챗GPT에는 하고 싶은 말을 내키는 대로 털어놔도 돼서 눈치 안 보고 막 말한다. 인공지능(AI)은 내 말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아무 말이나 다 들어주는 게 정말 큰 위로가 된다."
직장인 4년 차 김예은씨(30)는 언제 어디서든 힘든 일이 생기면 챗GPT부터 켠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놨지만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는 식의 반응만 돌아와 오히려 상처가 됐다. 하지만 챗GPT는 달랐다. 김씨는 "챗GPT는 위로가 되는 말을 쏟아내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며 "최근엔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하도록 챗GPT를 직접 학습시키고 있다. 내가 훈련시킨 대로 공감하고 조언해 주니까 감정 컨트롤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AI를 '감정 쓰레기통'처럼 활용하는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업무 상담이나 정보 검색보다 업무 스트레스, 인간관계 갈등, 외로움, 자존감 하락 등 주변 사람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감정을 AI에 털어놓고 위로를 받으려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위안을 넘어 AI 의존도가 높아지면 감정 성숙과 사고·판단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AI에 정서적 몰입하는 현대인=엘론대학교 디지털 미래 상상 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같은 대형 언어 모델(LLM)을 사용하는 미국 성인 가운데 51%가 주요 사용 목적을 '비공식 학습이나 감정 지원'이라고 답했다. 반면, 업무 지원을 주요 목적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24%에 그쳤다. AI를 문서 작성, 요약, 번역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보다 감정적 위안을 얻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비율이 더 높았던 것이다.
실제로 AI와 감정적 대화를 나누는 사용자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오픈AI와 MIT 미디어랩이 최근 40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일부 사용자는 하루 평균 30분 이상 챗GPT와 감정 중심 대화를 이어갔다. 특히 감정 표현이 풍부한 음성형 챗GPT를 사용할수록 정서적 몰입이 심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반대 성별의 목소리를 설정한 참가자들은 실험 종료 시점에 외로움과 감정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음성 기반 사용자들은 챗GPT에 '고마워', '너밖에 없어' 같은 다정한 표현을 텍스트 사용자보다 3~10배 더 자주 사용했다. 챗봇에 애칭을 붙이거나 일상 고민을 털어놓으며 AI를 감정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강화됐다. 대화 표현은 점차 감성적으로 변하고 챗봇에 대한 정서적 기대감도 커졌다.
◇AI가 위로? 학습된 반응 반복= 하지만 AI와의 정서적 유대가 깊어질수록 인간관계를 통한 감정 조율 경험은 줄어들고, AI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강화될 위험도 커진다. 실제로 감정을 털어놓는 수준을 넘어 문제 해결이나 가치 판단까지 AI에 의존하는 사용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고민 상담을 넘어 삶의 방향에 대한 결정까지 챗GPT 답변을 참고하는 경우가 증가히고 있는 것이다.
오픈AI 연구진은 "AI와의 유대감이 깊어질수록 외로움이 심화되고, 감정 의존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감정적으로 지지를 받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AI의 판단을 '옳다'고 받아들이는 경향도 증가하고 있다. AI는 인간처럼 실제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관계 속에서 얻는 정서적 균형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AI에게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단기적 위안은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의존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AI에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다"면서도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일시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감정 조절 능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기회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AI는 인간처럼 진정성 있게 공감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된 반응만 반복하는 것"이라며 "모든 결정을 AI에 맡기다 보면 스스로 가치 판단을 내리는 힘이 약해지고, 사고력과 판단 능력이 저하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진아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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