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북악스카이웨이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일대가 미세먼지로 인해 뿌연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우리 위성이 관측한 대기질 자료를 다른 국가들과 공유한다고?”
언뜻 들으면 왜 힘들게 쏘아 올려서 남 좋은 일을 하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틀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문제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 해결할 수도 없다. 대기질은 국경 없이 이동하기 때문에 인접국과 공동 대응해야만 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민의 사망 원인 5위가 대기오염일 정도로 대기오염은 생명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국제적 난제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 정부가 세계 최초 기후관측 정지궤도 위성을 쏘아 올릴 때부터 대기질 자료를 주변국과 공유하기로 계획한 이유다.
천리안 2B호가 찍은 중국발 미세먼지 이동 모습. 차량 이동이 많은 대도시(서울, 평양, 베이징, 심양, 오사카, 나고야), 공업지역 및 화력발전소 등에서 높은 이산화질소 농도가 관측되는 모습. [과기정통부 제공]
2020년 2월19일 우주로 향한 세계 최초의 기후관측 정지궤도 복합위성 ‘천리안위성 2B호’. 다른 나라의 저궤도 위성의 경우 하루에 한 번 우리나라를 관측할 수 있지만, 약 3만6000㎞ 고도에서 지구 자전 속도와 같은 속도로 공전하는 천리안 2B호는 해가 떠 있는 동안 하루에 8번 한반도 주변 아시아 지역을 관측할 수 있다.
정부는 천리안 2B호가 성공적으로 안착함과 동시에, 아시아 국가들과 천리안 2B호가 관측한 자료를 공유해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함께 활용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이른바 ‘아시아 환경위성 공동활용 플랫폼’ 사업으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몽골, 방글라데시 등 8개국과 함께 했다.
천리안 2B호는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인도 동부, 북으로는 몽골 남부, 남으로는 인도네시아까지 5000㎞ 규모의 아시아 대륙 전체를 관측한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위성 데이터는 넓은 지역을 관측할 수 있지만, 지상 센서 데이터를 통해 신뢰도를 높여야 실질적인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 870여개의 대기질 측정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14개, 태국은 96개 등에 불과하다. 천리안 2B호의 관측 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지역에 지상 관측 데이터가 필요했다.
천리안2B호 비행상상도.[과기정통부 제공]
이에 우리 정부는 5년간 400만달러(약 58억원)를 투입해 아시아 8개 국가에 지상 관측 장비 ‘판도라’ 총 20개를 설치했다.
판도라는 위성과 산출방법이 유사한 관측장비로, 지상에서 천리안 2B호 자료를 검증하는데 활용된다. 이렇게 아시아 8개국에 20개의 판도라가 설치됐다. 이른바 ‘판도라 아시아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코이카를 중심으로 한국환경과학원, 한국환경공단,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ESCAP) 등이 협력했다. 한국환경과학원은 환경위성에서 관측한 데이터를 아시아 국가들에 제공하고, 지상관측망 구축 사업 및 아시아 기술센터를 운영했다.
한국환경공단은 판도라 장비를 설치하고 각국에서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시범운영을 담당했다. UNESCAP은 각국의 정책 수요를 파악하고, 대기질 개선을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위성과 장비 데이터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현지 교육을 진행했다.
티지아나 보나파체 UNESCAP ICT재난방지국장. [매거진 코이카 갈무리]
티지아나 보나파체 ICT재난방지국장은 코이카와의 인터뷰에서 “프로젝트 참여국들은 이제 매일 위성 데이터를 무료로 실시간 활용할 수 있게 됐는데, 이는 굉장한 변화”라며 “각국 지역의 환경에 맞게 위성 데이터를 검증하고 보정하기 위해 지상관측장비인 ‘판도라’도 함께 사용하면서 데이터의 신뢰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어 “환경적 측면에서는 주요 도시의 국지적인 대기오염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대기오염 물질의 흐름이나 계절별 추세, 심지어 화산 활동으로 인한 대기오염 물질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현상을 분석할 수 있다”며 “그동안 이러한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수집하거나 분석하기 어려웠던 나라들이 이제는 과학적 근거를 갖고 정책을 세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환경위성 공동활용 플랫폼은 대기환경 데이터를 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고 대응방안을 함께 찾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은 이 플랫폼 구축을 주도하면서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리더십’을 확보했다.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봄을 맞아 세종대왕 동상을 세척하고 있다. 이번 세척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해 오염된 동상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한 조치이며, 서울시는 오는 16일까지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척 완료할 예정이다. 임세준 기자
보나파체 국장은 “한국은 단순히 위성을 띄울 수 있는 기술만 갖춘 나라가 아니다”라며 “대기질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고, 관련 데이터를 정책에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노하우도 축적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역량 덕분에 아시아 지역의 대기오염 문제를 논의하는 정부간 대화를 정례화하는 성과도 이끌어냈다”며 “결과적으로 한국이 아시아의 대기질 관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면서, 환경.과학 외교의 영역도 넓혀가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2022년 UNESCAP 회원국들이 채택한 ‘아태 대기오염에 관한 지역행동 프로그램(RAPAP)’에 기여했다. UNESCAP은 지난 3월 RAPAP의 실행 기반이 되는 파트너십 및 조정 플랫폼을 출범했다.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