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박쥐(학명 Rhinolophus ferrumequinum)가 수면 가까이 날면서 물을 마시는 모습을 옆에서 촬영한 모습. Maitra et al.(2025)/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제공
멈춰 서지 않고 수면에 근접해 비행하며 물을 핥아 마시는 박쥐의 움직임을 과학자들이 정밀 분석해 박쥐의 뛰어난 비행 능력을 확인했다. 연구결과는 복잡하고 정교하게 기동하는 항공기 개발에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성환 미국 코넬대 생물및환경공학과 교수팀은 버지니아공대 연구팀과 함께 비행 중에 물을 마시는 박쥐의 움직임을 자세히 분석하고 연구결과를 23일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학회 인터페이스 저널'에 공개했다.
지구상에는 약 1400종의 박쥐가 보고됐다. 박쥐가 물을 마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몸에 있는 털을 일부 적신 뒤 나중에 핥아먹는 '배 담그기(belly-dipper)'와 수면 가까이 날며 혀로 물을 핥아서 마시는 '혀로 핥기(tongue-lapper)'다. 날아가면서 물을 마시는 전략이 더 일반적이다.
연구팀은 주로 곤충을 잡아먹는 박쥐인 프랫둥근잎박쥐(학명 Hipposideros pratti) 2마리와 관박쥐(학명 Rhinolophus ferrumequinum) 4마리를 통해 물을 마실 때 비행하는 박쥐의 기동을 자세히 분석했다. 박쥐가 물을 마실 때 보이는 움직임은 그동안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박쥐들이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실험실 공간에서 6시간 동안 물을 공급하지 않은 뒤 연못과 유사한 물웅덩이를 제공했다. 주변에 다양한 각도로 설치된 카메라들은 박쥐가 공간을 이동하는 3차원 영상을 촬영해 박쥐의 움직임을 자세히 기록했다. 코끝, 날개끝 등 박쥐의 신체 부위에 따라 움직임을 나누어 기록했다.
연구팀은 관박쥐(학명 Rhinolophus ferrumequinum)가 수면 가까이 날면서 물을 마시는 장면을 3차원 영상으로 촬영해 코끝, 날개끝 등 박쥐의 신체 부위에 따라 움직임을 나누어 기록했다. Maitra et al.(2025)/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제공
분석 결과 박쥐는 하강하며 수면에 가까워질 때 속도를 줄였다. 날개가 물에 닿지 않도록 날개가 움직이는 범위를 약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날갯짓 속도를 높였다. 물을 마시기 위해 머리가 아래로 기울어지자 날개의 받음각을 높였다. 받음각은 날개가 뻗은 방향과 공기가 흐르는 방향 사이의 각도를 말한다. 받음각이 크면 비행 속도는 줄지만 위로 뜨는 힘인 양력이 커진다.
박쥐들은 충격을 피하기 위해 날개가 물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동시에 수면에 있는 물을 퍼올려 입으로 넣기 위해 혀를 정밀하게 제어했다. 개들이 물을 마실 때 혀로 핥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팀은 "혀로 핥을 때 코에 물이 튀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력이 거의 없는 박쥐는 입이나 코로 초음파를 쏘고 반사되는 소리를 통해 주변을 파악하는데 코에 물이 튀면 박쥐의 탐지 능력이 저해될 수 있다.
박쥐가 비행하면서 물을 섭취하도록 진화한 이유로는 지면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박쥐의 비행 능력 분석은 기동성이 뛰어난 항공기 설계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다른 동물에서도 박쥐의 '음수 비행'처럼 한번에 여러 행동을 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연구할 계획이다.
<참고 자료>
- doi.org/10.1098/rsif.2024.0616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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