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 이후 여야 대립 격화하면 개헌 합의 불가능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자기 지지층 적극 설득해야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4월6일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통령 선거와 권력구조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 제안은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됐다. 개헌 반대 여론이 들끓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권력구조 개헌을 대선 뒤로 미뤘고, 우 의장은 9일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 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물러섰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느닷없이 윤석열 전 대통령 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 등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우원식 의장의 개헌 제안은 실패했지만, 6·3 대선 국면에서 개헌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개헌은 해야 하지만 그렇게 시급하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이재명 후보를 뺀 대부분의 대선 주자들이 대통령 임기 단축과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도 토론과 공약을 위해 개헌 일정과 권력구조 개헌안의 내용을 가다듬고 있다고 한다.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임기 4년의 중임제 도입”, “여야 합의를 통해 개헌 시 재임하는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단축하고, 중임제도 적용 배제”,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강화를 헌법에 명문화”,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도입”,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 추천권 등 헌법상 권한 실질적 보장”, “부총리 중심으로 각 부처의 자율성 존중” 등을 공약했다. 자신이 당선되면 2026년 지방선거 때까지 4년만 하고 물러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번에도 큰 틀에서는 비슷한 내용의 개헌안을 제시할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대통령 임기다.
이재명 후보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들은 “4년 중임제로 개헌해 2030년부터 전국 동시 지방선거와 대선을 같이 치르면 된다”고 한다. 대통령은 집행부 권력이므로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 총선거와 같이 선거를 하는 것보다, 시도지사를 뽑는 지방선거와 같이 선거를 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5년 보장’을 전제로 하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권력구조 변화
개헌 시기는 ‘이재명 대통령 임기 초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만들어 2026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 ‘임기 중반까지 합의하고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이 있다. 어느 경우든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중임할 수는 없다. 헌법 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개헌 성사 여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개헌 실천 의지’와 ‘주요 정치 세력들 간의 합의 가능성’에 달렸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개헌의 논거가 부족하다. 개헌론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실패와 개헌 당위성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오히려 반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친위 쿠데타를 했다. 국회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소추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했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대통령 두 사람을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파면한 것은 헌법이 매우 잘 작동한다는 확실한 증거다. 따라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 때문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실패 때문에 개헌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틀린 주장이다.
둘째, 개헌 여론이 확실하지 않다. 1987년 개헌은 사실상 대통령 직선제 원포인트 개헌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과 분노에 전두환 노태우가 항복하면서 개헌이 이뤄졌다. 지금은 어떨까? 한국갤럽이 3월 첫째 주에 개헌 여론조사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였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54%,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30%였다. 선호하는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제 64%, 5년 단임제 31%였다. 대통령 권한은 현행 수준 유지 43%, 현행보다 확대 14%, 현행보다 축소 35%였다. 대통령 권한의 ‘현행 수준 유지’가 더 높다는 게 이채롭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한국갤럽은 2014년 10월, 2016년 6월, 2016년 10월에도 비슷한 여론조사를 했다. 2014년 10월 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42%,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46%였다. 4년 중임제는 58%, 5년 단임제는 36%였다. 대통령 중심제는 35%, 분권형 대통령제는 53%였다. 2016년 6월 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46%,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34%였다. 4년 중임제는 55%, 5년 단임제는 38%였다. 대통령 중심제는 29%, 분권형 대통령제는 49%였다. 2016년 10월 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54%,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33%였다. 4년 중임제는 56%, 5년 단임제는 36%였다. 대통령 중심제는 27%, 분권형 대통령제는 57%였다.
권력구조 개헌안
2014~2016년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때였다. 특히 2016년 10월은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의혹이 폭발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조금 상승했을 뿐 대통령 임기나 분권형에 대해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개헌 여론을 압축하면 “개헌 찬성 의견이 서서히 높아가고 있지만 아직 압도적이지는 않고, 4년 중임제를 선호하면서도 분권형을 강하게 원하지는 않는다”는 정도다. 절박하지 않은 것이다.
셋째, 정치 양극화다. 2000년부터 시작된 디지털 혁명과 2010년부터 시작된 모바일 혁명으로 정치 양극화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부족주의, 정체성 정치, 분노와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횡행한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친구가 될 수 없고 연애도 할 수 없는 시대다. 사람들은 나와 반대편 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좋은 대통령’보다 ‘강한 대통령’을 원한다. ‘통합형 정치인’보다 ‘분열형 정치인’이 더 인기다.
개헌은 주요 정치 세력의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정치 양극화 지형에서 주요 정치 세력의 대화와 타협은 어렵다. 그래서 개헌이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개헌은 해야 한다. 포기할 수 없다. 우리 헌법은 너무 오래됐다. 벌써 40년이 다 되어 간다. 낡았다. 제도는 고쳐가며 쓰는 게 옳다.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는 우리 헌법의 잘못된 권력구조와 ‘간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다. 대통령제는 본래 제왕적이다.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들을 제왕으로 착각했다. 정치가 아니라 통치를 했다. 앞으로는 대통령이 자신을 제왕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 급발진과 화재 사고가 잦은 자동차는 아무리 유능한 운전자가 몰아도 사고가 난다. 차를 바꿔야 한다.
6·3 대선 이후 어떻게 하면 개헌을 할 수 있을까? 과거에 개헌은 독재자의 임기 연장, 쿠데타, 시민혁명으로 이뤄졌다. 그런 방식의 개헌은 지금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먼저 통 크게 양보하고 결단해야 한다. 임기 초에 내란 종식에 치중하면 야당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개헌이 불가능하다. 최소한 내란 종식과 정치 복원을 병행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재명 후보의 개헌 의지가 꽤 강하다는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 제안 전에 이재명 후보를 두차례 만나 권력구조 개헌안의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 전문 수정, 대통령 권한 축소 및 책임총리제,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추천, 회계검사 기능 국회 이관, 헌법 개정 절차 완화 등이다. 대통령 임기는 이번에는 5년을 보장하되 다음부터는 4년 중임제로 바꾸기로 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런 내용이 여당의 개헌안에 포함될 것이다.
개헌은 대통령과 여당의 의지만으로 안 된다. 야당 지도부가 양보하고 결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패배해 야당이 됐다고 곧장 ‘이재명 대통령 퇴진 운동’이라도 벌이면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사라진다. 정치 내전이 벌어질 것이다. 개헌을 하려면 야당이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야 한다.
개헌은 고도의 정치다.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헌은 정치인이 앞장서야 한다. 정치인은 특히 자기 지지층을 집중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생각이 다른 집단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대화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여론을 모으고 개헌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가능할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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