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효림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채효림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대선을 앞두고 노동시간 개편이 주요 공약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주4.5일제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김동연 대선 경선후보는 주4일제를 내세웠다. 전자는 법정 근로시간을 유지하되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한 시간씩 추가로 근무해 금요일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이다.
이와 달리 후자는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36시간으로 줄이고 일주일에 나흘만 근무하는 체제를 목표로 한다.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양당이 각자 내놓은 파격 제안이다. 그러나 해당 제도가 실제 노동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사회에 첫발도 내딛지 않은 나조차 의심이 앞서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 노사 간 합의 하에 최대 5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독일은 하루 8시간, 연장 근로 최대 2시간으로 최대 주 50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근무시간은 1천872시간인 데 반해 독일은 1천343시간에 불과하다. 그 차이는 무려 529시간이다. 하루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무려 66일을 더 근무하는 셈이다. 두 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연간 근무시간에서 큰 격차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괴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졸업한 친구들에게서 하나둘 취업 소식이 들려오면서 부럽고 자랑스러운 동시에 업무 현실을 간접적으로 접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바쁜 기간에는 하루 10시간도 넘게 주 5일을 근무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답답했다. 영업직으로 근무하는 친구는 더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야근은 물론 주말 근무도 불사한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한 '초과근로 현황과 최대 근로시간 상한'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36.3%는 일터에서 조기 출근, 야근, 주말 출근 등 초과근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으로 정해진 시간이 있음에도 관행적으로 이를 초과하는 근무가 일상화된 셈이다. 그 중심에는 포괄임금제가 있었다.
포괄임금제란 정해진 시간 외 근로수당에 대해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미리 급여에 포함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지 않지만 근무시간 산정이 어려우면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그러나 해당 제도가 남용되며 초과근무를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기능하고 있다. 출퇴근시간이 명확한 사무직과 작업시간표에 따라 일하는 건설 현장직마저 포괄임금제가 적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정해진 시간보다 오래 근무하더라도 수당을 요구할 근거가 사라지며 노동자들은 초과근무를 감내해야 한다.
'공짜 야근'을 막기 위한 포괄임금제 개선은 여야를 막론하고 꾸준히 시도됐다.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해당 제도 폐지를 언급했으나 결과는 그대로였다. 이재명 대선 경선후보 역시 2022년 대선 당시 포괄임금제 개선을 공약했으나 올해 경선에서는 지금까지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 주4일제나 4.5일제 도입이 과연 실효성 있는 해법인지 묻게 된다. 물론 법원 판례에서 인정됐듯 진정으로 노동시간을 계산하기 모호해 포괄임금제가 필요한 직종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충분한 숙의를 거쳐 개선 방향을 논의하고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법으로 정해진 주52시간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유연근무제 도입 혹은 법정 근로시간 단축으로 노동환경이 개선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4일제, 주4.5일제 두 정책 중 하나가 시행된다고 해도 초과근무 관행은 유지될 것이므로 실제 노동시간이 크게 줄어들지 의문이다.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선 어긋난 노동법부터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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