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대표하는 이사 선임 위해
집중투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재계 거센 반발에도 개미 표심 겨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21일 주식시장 활성화 공약을 발표하며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공약으로 더 강력한 상법 개정안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21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상법 개정 재추진 방침을 밝히며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도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경영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가 정부의 거부권 행사와 재표결 끝에 폐기된 기존 상법 개정안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내용이다.
이 전 대표는 “상장회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며 “‘쪼개기 상장’ 시 모회사의 일반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한국금융투자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상법 개정안에 대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다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기업 경영권 위축 우려에도 상법 개정안은 물론 자사주 소각 등 기업 지배구조 개혁 방침을 밝힌 것은 ‘개미(개인투자자) 표심’을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재계 반발에 대해 “이기적 소수의 반항”, “힘 있는 특정 소수의 저항”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 원인 중 하나”라며 “국제 경쟁을 하겠다는데 집 안에서 규칙을 안 지키고 부당한 이익을 얻으면서 어떻게 글로벌 경쟁을 하고 살아남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의) 비정상적 요소만 대대적으로 걷어내도 (코스피) 3,000은 넘길 수 있고, 몇 가지 (대책을) 추가하면 5,000은 넘길 수 있다”며 주가 조작 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적용 등을 공약했다.
李 ‘어대명’ 탄력받자, 경영권 위협 논란 상법 개정 다시 꺼내
[더 독해진 상법개정안]
집중투표-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땐… 한경협 “상장 유지비용 12.8% 늘것”
李 “나도 한때 큰 개미, 복귀 99.9%
상장회사 자사주 소각 의무화… 코스피 5000시대 실현” 공약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활성화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전 대표는 “나도 꽤 큰 개미 중 하나였다. 상법이 개정되면 지배 대주주의 횡포가 줄어들고 비정상적인 경영 판단도 중단될 것”이라며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상법 개정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정치를 그만두면 주식시장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99.9%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재계의 우려와 국민의힘 반발에도 21일 상법 개정안 재추진을 공약한 것은 지난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이어 ‘개미’(개인투자자) 표심을 공략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표는 이날 “대한민국 주식투자자가 14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을 ‘휴면 개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당 순회 경선에서 누적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대세론’을 굳힌 다음 날 더 독해진 상법 개정안을 내놨다”는 반응이 나왔다.
● 李 “나도 한때 큰 개미”… 상법 개정안 재추진
이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를 찾아 “(최근) 상법 개정에 실패했는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다시 해야 할 것 같다”며 재추진 방침을 강조했다.
이 전 대표가 재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도 추가될 예정이다. 두 항목은 당초 민주당이 발의했던 초안에 포함돼 있었으나, 국민의힘과 재계를 설득하기 위해 삭제됐던 조항들이다. 이 전 대표 경선 캠프 관계자는 “해당 안이 국회 재표결에서 결국 폐기된 만큼 공약에선 보다 전면적인 개정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의결권을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부여하는 제도다. 주주들이 부여받은 의결권을 한 명의 이사 후보에게 모두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하기 유리한 제도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는 현재 1명의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들과 별도로 선출하고 있는데 이를 순차적으로 늘리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가 도입되면 소액주주 의결권을 강화할 수 있지만,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올 초 국내 600개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이사 충실의무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모두 담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장 유지 비용이 12.8%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상법 개정안은) 여러 부작용과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개정을 먼저 해보자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대변인도 “경제는 안중에도 없이 표심만 얻으면 된다는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 “시장 물 흐리는 기업 정리해야”
이 전 대표는 상법 개정을 통해 국내 주식시장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고 ‘코스피 5,000시대’를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2년 대선 때도 ‘코스피 5,000시대’를 공약한 바 있는데, 3년 전 목표치를 다시 제시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상법 개정과 함께 주가 조작 방지 공약도 내놨다. 그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한 번이라도 주가 조작에 가담하면 다시는 주식시장에 발 들일 수 없게 하겠다”고 했다.
특히 “상장회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하겠다”며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자사주 소각을 유도할 구체적 방법으로는 기업의 자사주 보유 한도 제한이나 소각 시 세액공제 등이 거론된다. 또 “‘쪼개기 상장’ 시 모회사의 일반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배당소득세 조정과 배임죄 폐지 등 당근책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전 대표는 “(배당소득세) 조정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세수 감소를 감당할 만큼 긍정적인지에 대해서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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