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미주리대와 연구용 원자로 ‘초기 설계’ 계약
141억원 규모…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성
민감국가 지정 영향 없다는 ‘청신호’ 해석 나와
“미 정보 가져가는 계약 아닌데” 확대 해석 지적도
미국 미주리대에 설치될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 개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에 한국의 원자로 기술이 처음 수출된다. 이번 수출 계약은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효력이 한국에 적용된 이후 성사된 것이어서 그 의미를 두고 엇갈린 시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7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기업 MPR이 구성한 컨소시엄이 미 미주리대와 열출력 20㎿(메가와트)급 연구용 원자로(연구로)를 만들기 위한 초기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초기 설계란 연구로 설계 과정 가운데 개념 설계(1단계)와 기본 설계(2단계)에 앞서 건설 부지 조건 등 사전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이다.
미주리대에 설치될 연구로는 암 환자를 위한 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하기 위해 주로 운영될 예정이다. 전력 생산이 주목적인 상용 원자로와는 다르다. 이번 사업에는 미국 뉴스케일과 아르헨티나 인밥 등 총 7개 업체가 참여했다. 원자력연구원이 포함된 컨소시엄은 지난해 7월 최종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미국 현지 화상 연결을 통해 이날 서울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 참여한 임인철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은 “초기 설계 계약 규모는 약 1000만달러(약 141억원)”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00%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단계 계약들도 무난히 따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원자력계에서는 초기 설계를 맡아 연구로의 기본 틀을 짠 컨소시엄이 이후 계약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1995년 국내 최초 연구로인 ‘하나로’를 자력 설계·건조했다. 2010년대부터는 말레이시아와 요르단, 방글라데시, 네덜란드 등에 연구로 관련 기술을 수출했다. 이번 계약은 원자력 종주국 미국에 대한 수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과기정통부는 밝혔다.
특히 이번 계약은 한국에 대한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효력이 시작된 지난 15일 이후 체결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에서는 한·미 사이에 문제가 없다는 ‘청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현재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은 원활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학계 일각에서는 그렇게 보기에는 이르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원자력 정책에 정통한 국내 한 전문가는 “민감국가 지정 취지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가는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연구로와 관련한 정보를 미국에 가져오는 것까지 막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구로를 미국에 짓는 일이 미국 기술을 가져가는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실제로 민감국가 지정의 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사안도 미국 정보를 외부에 가져나가려던 움직임이었다. 미 에너지부 감사관실은 지난해 작성한 보고서에서 산하 연구소 직원이 한국으로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반출하려다 적발됐다고 밝혔다.
이 전문가는 “한국 원자로 기술이 가격 경쟁력이 강하다는 점도 계약 체결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계약을 민감국가 지정 뒤 한·미 협력에 문제가 없다는 방증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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