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세계 최초로 가동되는 핀란드의 고준위 방폐장 ‘온칼로’. 화강암 지층 지하 420m 암반 터널 아래 구덩이에 처분 용기로 감싼 사용후 핵연료를 매립한다. Posiva 제공.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장(고준위방폐장) 건설을 추진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이 지난달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별법에는 2050년까지 중간 저장 시설, 2060년까지 영구 처분장을 짓는다는 계획이 담겼지만 부지 선정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한국은 앞서 1984년 정부의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 의결 이후 2004년까지 총 9번에 걸쳐 영구 처분장 부지 선정을 추진했지만 지역 주민 반발로 모두 실패했다. 특별법 통과 후에도 부지 선정이 까다로울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부지 선정 절차와 방법을 법제화하고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처분장을 확보했거나 추진 중인 국가의 사례를 참고한 결과다. 부지 선정과 처분장 운영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기본 소양'으로 평가된다.
원자력발전에 쓰이고 배출된 사용후핵연료는 핵분열 연쇄반응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열과 방사성 물질을 오랜 시간 방출한다. 별도 처분장 없이 원전 내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되면 원자로 운전을 지속할 수 없다. 국내에서도 2030년부터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 가동 원전이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연구가 사용후핵연료를 '공학적 방벽'으로 감싸고 수백 미터 지하의 안정적인 암반을 '자연 방벽'으로 둘러싸 수십만년 이상 저장하는 심층 지하 처분장이다. 대다수 국가들이 지하 처분장을 궁극적인 처분 방법으로 고려하고 있다.
과학기술적 근거만으로는 부지 선정이 어렵다는 사실은 미국의 선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2008년 '유카 마운틴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기술적으로 적합한 영구 처분장 부지를 확인하고 추진했지만 건설 예정 지역인 네바다주 주민의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다.
국내 전문가들도 영구 처분장 건설의 과학기술적 걸림돌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공학적 방벽과 자연 방벽 모두 각각 10~20만년을 버틸 수 있는 기준으로 설계되며 지질학적으로 봤을 때 국내에 지하 처분장 기준에 적합한 지형도 충분할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부지 선정이 핵심인 셈이다.
현재까지 영구 처분장 건설을 확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3곳으로 모두 유럽 국가다. 가장 속도가 빠른 핀란드는 올해부터 세계 최초로 420m 지하 암반에 영구 처분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성훈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이 2023년 5월 한국원자력학회 춘계학술발표회에서 '고준위 폐기물 최종 관리를 위한 특별법'을 주제로 한 발표에 따르면 핀란드·스웨덴과 프랑스는 부지 선정 접근법에는 차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매년 발표하는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 기준으로 정부신뢰도가 60% 이상인 핀란드와 스웨덴은 처분장 부지 선정에 대한 법률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정부 계획만으로 선정하는 데 성공했다.
두 나라 모두 처음 부지를 선정할 때는 찬성률이 30~40%뿐이었지만 원전 사업자와 정부가 과학기술적인 증거를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국민적 신뢰를 쌓아 세부 결정 단계부터는 60% 이상의 찬성률이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신뢰도가 50% 미만인 프랑스는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함께 부지 선정 절차를 법률로 규정하고 법령에 따라 2009년 부지를 선정하는 데 성공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국회 신뢰도는 20.56%, 중앙 정부의 신뢰도는 37.15%로 OECD 하위권이다. 한국에서는 핀란드, 스웨덴처럼 정부 계획만으로 추진하기보다는 프랑스처럼 부지 선정 기준과 절차를 법률로 정하고 국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 외에 미국과 독일, 일본 등도 처분장 부지 선정 절차를 법령에 규정해 추진하고 있다. 독일을 제외하면 정부 신뢰도가 50% 미만인 국가들이다.
처분장 부지 선정 기준과 운영 등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다수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영구 처분장 확보 시점을 한국과 유사하게 현재 기준 30~40년 후로 제시한 영국은 지하 처분장 유치 검토 과정에 이미 지역사회 세 곳이 자원했다.
데임 수 이온 영국 국립원자력기술아카데미 명예회장은 높은 국민 수용성의 비결로 투명성과 정보 공유를 꼽았다. 현재의 사실 관계와 당면과제, 과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구 처분장 실증을 위한 연구시설과 안전 규제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심층 지하 처분장의 장기 안전성 실증을 위해 필수 시설인 지하연구시설(URL)을 늦어도 2030년대 초에는 운영해야 한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도 고준위방폐물 처분에 관한 안전규제 체계 및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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