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대철 헌정회장이 말하는 ‘尹 정부의 한계’와 ‘차기 대통령의 조건’
“尹한테 ‘이재명 한 번이라도 만나라’ 했더니 ‘그런 나쁜 사람은 안 만난다’ 답했다”
“李만 ‘先 대선-後 개헌’ 주장…민주당 계속 일극 체제로 간다면 ‘독재 정당’ 될 수도”
(시사저널=변문우·강윤서 기자)
"윤석열은 최고의 바보 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국민들께 통절한 사과를 하고 파면 결정에 승복해야 합니다." 원로 정치인 정대철 헌정회장(81·5선)이 8년 만에 탄생한 '탄핵 대통령 윤석열'을 향해 내놓은 쓴소리다. 정 회장은 4월1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정회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이 탄핵된 핵심 이유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능력 부족'과 정치인을 '나쁜 놈'으로 치부하며 정치 친화적이지 못했던 점 등을 꼽았다.
그렇다면 다음 대통령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까. 정 회장은 ①'선(先) 개헌-후(後) 대선'에 대한 공감대가 있고 ②'화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설득과 통합'의 국정 운영이 가능한 인물이 '전쟁' 상태의 정치판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정 회장은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도 "계속 일극 체제로 간다면 독재 정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 대표의 개헌 입장이 오락가락 바뀌는 점을 지적하면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핑계다. 이 대표를 제외한 대다수의 정치 지도자들이 '선 개헌-후 대선' 입장에 찬성하고 있다"고 했다.
정대철 헌정회장 ⓒ시사저널 이종현
헌정사 최초로 두 번째 탄핵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행한 사태를 겪게 된 원인을 무엇으로 보십니까.
"윤 전 대통령의 능력 부족이 핵심입니다. 정치 경험과 경륜이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지 않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자문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엄 요건인 '사변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아닌 상황에서 계엄권을 발동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판단도 잘못했습니다. 심지어 계엄 당시 정진석 대통령실비서실장과 통화했는데 본인도 당일(2024년 12월3일) 저녁 7시에 계엄 계획을 알았다고 전했습니다. 일조차 치밀하게 하지 못했던 최고의 바보 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정치에 친화적이지 못했던 부분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예컨대 2년 반 동안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면서 정치 실종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 임기 중에 제가 직접 만나서 '이 대표나 야당 지도부와 한 번이라도 만나라'고 제안했더니 '그런 나쁜 사람하고는 안 만난다'고 답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나쁜 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야당과의 대화와 설득의 과정도 전혀 없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낙제점을 주고 싶습니다. 물론 외교적으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시킨 부분은 평가해줄 만합니다. 친일 지적 등을 뛰어넘고 적극적으로 했던 부분은 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를 통해 대통령은 정치 경륜이 풍부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승복 메시지' 없이 사저 정치를 이어나가는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국민에게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승복해줄 것을 권면하는 것이 대통령다운 정치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행동도 없이 지금은 본인 집으로 갔는지 안 갔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 어떤 진단을 하고 계십니까.
"그야말로 '전쟁' 상태입니다. 정치 실종으로 상생·협치·통합의 정치가 사라졌습니다. 그 원인은 일단 민주주의 기본인 '상호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agree to disagree)'는 다원주의 원칙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부족해서입니다. 또 양 진영 간 상호 이해와 인정이 부족한 현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이전 정부에선 다른 당 의원끼리 술도 마시면서 대화했는데 어느 순간 만남이 없어졌습니다. 여기에 다수결 원칙, 거부권, 탄핵 등 '힘의 논리'를 서로 자제하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써야 할 수단을 서로 상습적으로 썼습니다."
정당들도 대선에만 집중해 자성이나 쇄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모습입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국민의힘은 탄핵된 대통령을 공천하고 밀어준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깊이 사과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이번에는 당내 대선후보를 내는 것을 포기하고 제3의 인물을 지지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만든 대통령이 잘못했다'며 사과 성명을 내고 '이번에는 떨어져도 좋다'는 식의 진정성을 보이면 국민들의 마음을 살 것으로 봅니다. 최근 국민의힘의 한 원로도 회동 자리에서 '이번에는 우리 당이 후보를 안 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태도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민주당도 입법 폭주와 탄핵 남발에 대해 국민에게 솔직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의 약속을 해야 합니다. 이 전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사건건 반대하고 탄핵하고 있으니 국민들도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더욱 전쟁 상태가 되겠다'는 우려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힘이 있을수록 양보하고 타협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집니다. 당에는 바른말을 하는 비주류도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 전 대표의 민주당이 일극 체제로 계속 간다면 독재정당으로 변할 가능성이 큽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6월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이 끝난 뒤 떠나며 여야 정치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오른쪽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최근 개헌과 관련해 이 전 대표와 직접 전화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4월3일 정동영 민주당 의원의 제안으로 이 전 대표와 오후에 전화했더니 개헌할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의 책임총리제와 경성헌법을 연성헌법으로 고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도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60회에 걸쳐 개헌했던 만큼 우리도 연성헌법을 통해 국민투표를 생략해도 충분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확실하게 국민들에게 먼저 발표하라고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나흘 후인 4월7일 태도를 바꿔 개헌할 뜻이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개헌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진압이 더 중요하다'며 이번 대선 전에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종전에도 비슷한 이유를 핑계로 들며 개헌을 반대해 왔습니다. 탄핵을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면서 내란 진압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내란 상황으로 보고 진압해야 한다는 분은 이재명 전 대표 혼자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영국의 액튼 경의 말처럼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할 가능성이 높다(Power tends to corrupt,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말을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 전 대표의 태도에 대해 원로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이낙연·정세균·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김원기·박병석·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물론 당대표 출신인 서청원·김무성·황우여 전 의원 등은 '나라를 걱정하는 정치원로 모임'을 통해 전원 예외 없이 '선 개헌-후 대선'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소위 정치 지도자들 중에선 이 대표만 빼고 수백 명이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결국 '대선-개헌' 동시 추진안을 철회했습니다.
"우 의장도 이 전 대표의 반응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이 전 대표와 우 의장은 같은 배를 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끝까지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왜 지금이 개헌 적기라고 보십니까.
"첫째는 12·3 비상사태의 교훈이 있어서입니다. 잘나가던 대통령이 느닷없이 제왕적 대통령으로 변해 헌법(제77조)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고 계엄을 선포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합니다. 또 국민들의 60~70%도 개헌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적 백년대계와 민주주의, 정치 발전을 위해 개헌이 필요합니다."
어떤 개헌 로드맵을 구상하고 계십니까.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능성을 없애도록 단시간 내에 '내각책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 원포인트 권력구조 개헌을 한 다음 대선을 치러야 합니다. 소위 '선 개헌-후 대선' 방식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원집정부제는 책임총리제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 이양·분산시켜서 국회에서 선출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 양원제를 채택해 대통령의 임명권은 상원의 동의를 받게 하면 대통령 권한을 견제·분산시킬 수 있습니다. 또 중앙정부나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지방분권 강화안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경성헌법을 연성헌법으로 바꾸는 부분이나 국민발안제(국민이 헌법개정안 등을 직접 제출할 수 있는 제도), 국민소환제(선출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해 파면할 수 있는 제도), 국민기본권 강화안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성헌법을 연성헌법으로 고쳐 개헌 요건을 완화하는 방식에 대해선 국회 다수당에 유리한 개헌안으로 강행 처리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국민투표를 개헌의 조건으로 내건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국회 3분의 2에서 5분의 3이나 과반수 찬성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일이 통일 이후 40여 회의 개헌을 통해 국가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노력해온 경험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연성헌법의 경우 부수적 남용 가능성은 별도 장치 도입을 통해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각에선 개헌에 필요한 시간이 모자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개헌 전문가나 학자들은 원포인트로 권력구조만 바꾸는 데 35~60일이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정 안 되면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같은 날짜에 할 수 있습니다. 1987년 이후 38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개헌을 약속하거나 찬동해 놓고도 대통령이 되면 '꿩 꿔먹은 자리'로 변했던 경험칙상 이번에는 반드시 '선 개헌-후 대선'을 해야 합니다."
다음 대통령에게 필요한 리더십 덕목은 무엇으로 보십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본받아 '용서, 화해, 포용, 통합'의 지도자가 돼야 합니다. 특히 행정의 달인이 아닌 입법의 달인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중심축을 국회로 옮겨야 합니다. 국정 운영 과정에서도 대화를 통한 타협, 협상, 설득을 중시해야 합니다. 일방적 명령과 통제의 책임자가 아닌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차기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탄핵 정국에서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원상 회복해 재도약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난해 느닷없는 계엄 선포로 먹칠했던 것을 다시 '역시 대한민국은 저력 있는 나라' '선진국 자격이 있는 나라'로 평가받기 위해 국제적 신인도를 높이고 전 분야에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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