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1강 구도…‘최대 적수’ 尹은 퇴장, ‘최대 고비’ 선거법에선 2심 무죄
독주의 역설, 거친 견제·가혹한 검증 기다려…비호감도·李 포비아는 ‘숙제’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다. 조기 대선인 6월3일까지 단 60여 일, 권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대선 시계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빠르게 돌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약 3년간 유력 대권 잠룡으로서 누구에게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그다.
특히 1심에서 징역형의 중형이 선고돼 최대 고비로 여겨졌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에서 얼마 전 무죄가 선고되면서 이 전 대표의 '독주' 구도는 더욱 선명해졌다. 지난 대선은 물론 지난 3년 동안 최대 라이벌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까지 4월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퇴장하자 당내는 물론 당 밖에서도 이 전 대표의 마땅한 적수는 보이지 않고 있다.
4월10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개헌 띄운 우원식에 '수박' 공격 쏟아지기도
이 전 대표의 앞길에 꽃길만이 펼쳐져 있지는 않다. 당장 조기 대선 초반 레이스부터 강한 견제와 압박에 둘러싸인 모습이다.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견제구가 쏟아진다. 선두 주자로서 당연한 처지다. 새로운 고비들이 나타나고 약점도 더 부각되는 시간이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개헌론은 이 전 대표의 첫 난관이었다. 4월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고 제안하자 정치권의 시선은 일제히 이 전 대표를 향했다. 국민의힘은 즉각 우 의장의 제안을 받으면서 "이 대표가 답할 차례"라고 압박을 가했다. 개헌 논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 이 전 대표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 것이다.
이 전 대표와 민주당은 우 의장과 국민의힘의 요구에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며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들은 비상계엄으로 인한 전직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과실이 상대에게 있는 상황에서 굳이 계엄에서 개헌으로의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는 국민의힘의 전략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 즉 '내란 종식' 프레임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크게 앞서가는 선두 주자로서 굳이 계엄 논의에 휘말려 다른 주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개헌 이슈는 시간이 갈수록 이 전 대표에게 감점을 발생시킬 요인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가장 유력한 주자로서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해 개헌 논의를 거부한다'는 프레임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원로들은 물론 우 의장과 당내 비명(非이재명)계를 비롯한 같은 진영 인사들이 "개헌이 곧 내란 종식"이라며 이 전 대표를 압박하고 나선 것도 부담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저절로 반전됐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4월8일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임자로 지명한 게 개헌 이슈까지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현상 유지를 위해 대통령 권한을 소극적으로 행사해야 할 권한대행이 적극적 권한인 대통령 지명권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졌다. 더군다나 이 법제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내란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는 인사다.
결국 우 의장은 4월9일 입장을 바꿔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 문제를 거론하며 "개헌 논의는 대선 이후 이어가자"고 했다. 이후 국민의힘이나 비명계 등이 이 전 대표를 공격할 수단으로 삼을 순 있으나 우 의장의 입장 번복으로 개헌 이슈 자체가 상당 부분 동력을 잃은 상황이 됐다. 이 전 대표 입장에선 한숨 돌리게 된 셈이다. 더군다나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과 관련한 논란은 여권에 대한 내란 프레임을 더욱 강력하게 발동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로 이 전 대표에겐 여러모로 호재가 생겨난 모양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4월6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치르자고 제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李 '독주'에 컨벤션 효과 묻힐까 당내 우려
반면 개헌론 자체보다는 우 의장이 그걸 꺼냈다가 다시 번복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표의 약점이 또 한번 부각됐다는 시각은 있다. 우 의장이 '대선-개헌 투표 동시 실시론'을 꺼낸 직후 민주당 내 친명(親이재명)계 인사들, 또 강성 지지자들이 우 의장을 향해 강한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우 의장이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부담을 가진 탓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일부 강성 지지자는 우 의장을 '수박'(비명계를 비하하는 표현)이라 칭하며 문자 폭탄까지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 중심 민주당의 '일극(一極) 체제'가 다시금 부각됐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선 이 전 대표 역시 당내 강성 스피커들, 지지자들 입김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에선 우 의장이 개헌론을 꺼낼 때 이 전 대표와 사전 논의를 했을 거라고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 4월6일 기자회견 때 우 의장은 여야 지도부와의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고, 4월9일 철회 입장을 밝히면서는 "선행됐던 국회 원내 각 정당 지도부와의 공감대에 변수가 발생했다"며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다. 이에 정치권에선 이 전 대표가 우 의장과 사전 교감이 있었으나 민주당 내부 강경파의 반대에 부닥쳐 입장을 거둬들인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선 이러한 일극 체제, 강경파 위주의 당내 분위기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대선을 앞두고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용진 전 의원, 김부겸 전 총리, 김영록 전남지사 등 대권 잠룡으로 분류된 인사들이 연달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데도 이 전 대표 일극화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관측이다. 다른 잠룡들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지지가 거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내 일각에선 이러한 분위기로 이 전 대표만 부각되는 무난한 당내 경선이 치러질 경우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를 연 직후에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걱정한다. 반면 마땅한 1강이 없고, 입장 차가 큰 국민의힘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후보가 선출될 경우 컨벤션 효과 및 대비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는 더 크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조국혁신당과 당내에서도 얘기가 나오는 완전 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 제안과 같은 부분들을 잘 검토해 보면 컨벤션 효과 등을 기대해볼 수 있을 텐데, 지도부나 당내에서 오직 이 전 대표 중심으로 사고하는 걸 보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호중·강훈식·한병도·박수현 등 비명계 전진 배치
물론 친명계의 입장은 180도 다르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의원은 "대선까지 시간이 별로 없지 않나. 오픈프라이머리도 좋지만 지금은 곧바로 본선을 준비해야 하는 촉박한 일정"이라며 "이 전 대표로 당심은 물론 민심이 모이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할 것 없이 당이 단합해 이 전 대표 중심으로 뭉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즉 지금은 오히려 이 전 대표 중심의 '일극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친명계 다른 관계자도 "안팎에서 여러 얘기들과 공격, 견제가 나오지만, 결국엔 휩쓸릴 것 없이 이 전 대표 페이스대로 가는 게 전략이 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 전 대표는 당내 우려의 시각들을 의식한 듯 경선 캠프에 비명계를 전진 배치하는 등 당내 통합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월9일 당대표직에서 사퇴하며 본격적인 대권 도전에 나선 이 전 대표는 경선 캠프 콘셉트도 '실용'과 '통합'으로 정했다. 선거대책위원장은 5선 윤호중 의원이, 총괄본부장에는 3선 강훈식 의원이 각각 내정됐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인 한병도(상황실장)·박수현(공보실장) 의원도 요직에 합류했다.
이 전 대표는 4월10일 11분짜리 출마 선언 영상을 공개하며 공식적으로 대권 도전의 포부를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세상이 진정한 봄날 아니겠나. 그냥 이름만 있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며 "그런 대한민국은 대한국민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위대한 대한국민의 훌륭한 도구, 최고의 도구 이재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닥칠 여러 고비와 우려들을 넘어 '이재명의 시간'은 결국 완성될까. 앞으로도 60여 일간은 가혹한 검증의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세등등한 이재명의 시계는 원하는 시간을 맞추게 될까. 그 시계가 빠르게 돌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박은숙
李에게 도전장 낸 비명 '3金', 개헌 앞세우고 親文에 호소
대권 경쟁 초반 더불어민주당 내 이재명 전 대표 경쟁자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 이 전 대표에게 도전장을 낸 당내 주요 잠룡으로는 세 사람이 거론된다.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두관 전 의원이다. 모두 비명(非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세 사람의 전략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유사점이 많다. 우선 개헌을 앞세운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에서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김두관 전 의원은 4월7일 출마 선언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4월9일 미국 출장을 떠나며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가진 김동연 지사는 개헌을 위한 '차기 대통령 임기 3년' 주장을 다시 꺼냈다. 김두관 전 의원도 여기에 대해선 긍정적인 의사를 표한 바 있다. 김경수 전 지사도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치러지는 방식이 포함된 2단계 개헌론을 주장해 왔다.
경쟁자들의 이 같은 전략의 핵심은 결국 이 전 대표와의 차별화다. 개헌과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 등 이 전 대표가 외면하는 지점들을 파고드는 것이다. 김동연 지사는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포퓰리즘 정책, 무책임하게 감세를 남발하는 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했다. 역시 최근 '우클릭' 행보를 보인 이 전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차별화를 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친명(親이재명)과 대비되는 친문(문재인)·친노(노무현) 지지자들을 향해 호소한다는 점도 겹친다. 김두관 전 의원은 4월9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김동연 지사도 4월9일 출마 선언 전에 문 전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중심에 섰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명계가 이재명 전 대표를 상대로 공동전선을 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와 주목됐다. 김동연 지사와 김경수 전 지사가 4월8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독대를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명 주자 간 연대, 단일화 등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실현된다고 해도 세 사람에 대한 지지율이 워낙 미미한 상황에서 아직까진 경쟁자들이 '이재명의 시간'을 멈춰세우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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