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악연’ 박해수·신민아
박해수 “악귀 같은 악인…연기하며 섬뜩”
신민아 “일그러진 감정 꾹꾹 눌러 연기”
자타공인 ‘넷플릭스 공무원’으로 불리는 배우 박해수가 이번엔 ‘악연’을 통해 또 한 번 회자할 연기를 선보였다.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온갖 ‘나쁜 놈’들이 판을 친다. 아버지의 보험금을 받으려 청부살인을 의뢰하는 패륜 아들, 불륜도 모자라 사체 은닉도 마다치 않는 한의사, 돈이면 뭐든 하는 청부살인업자와 사기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온갖 악으로 묶인 인연의 고리가 징글징글하다.
“어디서부터 꼬였지?”
일명 ‘목격남’. 이름도 없이 등장하는 이 남자의 한마디와 함께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그곳에서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의사 이주연과 만난다. 얽히고설킨 관계의 끝에 마주 선 사람들이다.
악은 더 큰 악을 나았다. 자신의 악행에 대해 누구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모든 악이 같지 않지만 누가 더 나쁘고 덜 나쁘다고 판단하기 힘든 이 드라마에서 천하의 ‘쓰레기 같은 남자’가 바로 ‘목격남’ 박해수. 넘쳐나는 악인들 틈바구니의 유일한 피해자인 평범한 인물이 주연을 연기한 신민아다. 두 사람을 각각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은 인물들의 관계성에 초점을 둔 촘촘한 스톨 전개, 뻔하지 않지만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사이다 결말’로 대중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현재 비영어 TV쇼 중 시청 순위 5위에 올랐고, 한국과 일본, 그리스 등 37개국에서는 상위 10위 내 인기작으로 입성했다.
신민아는 “‘악연’이 갖는 장르적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메시지가 분명한 드라마라는 점이 ‘악연’의 장점“이라고 했다.
‘악연’의 신민아 [넷플릭스 제공]
기괴한 악인, 이번에도 ‘미친 연기’ 박해수
육교에서의 첫 등장. 배우 이광수는 귀마개를 한 박해수가 드라마에서 처음 나오는 그 장면은 “정말 미친놈 같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광기로 가득 채워진 기괴한 눈동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 짓는 모습은 그저 그런 ‘악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박해수의 ‘목격남’은 6편에 이르는 내내 종잡을 수 없는 극적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한 작품 안에서 여러 변화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건 배우로서도 만나기 어려운 기회예요. 극단으로 치닫는 ‘목격남’ 같은 캐릭터는 금기를 깨고 선을 넘는 것 같았고, 한 인간의 유형에만 갇히지 않아 연기를 하면서도 자유로웠어요.”
극초반엔 그저 ‘의문의 사고’를 마주하게 된 ‘목격남’이었다. 자신을 더 짓밟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행동하는 지질한 약자 행세를 하나 그 안엔 파렴치한 악을 품은 남자. 하지만 ‘목격남’은 사실 가장 중요한 ‘반전의 키’를 쥔 사기꾼 ‘김범준’이다.
그는 “연극을 할 때부터 진폭이 크고, 갑작스럽게 변모하는 캐릭터를 좋아했다”며 “사람의 얼굴을 보며 험한 말을 하는 게 아무리 연기여도 마음이 참 불편한데, 막상 연기를 하면 날개 단 듯 마음껏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고 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배우 박해수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악연’에서 ‘목격남’ 역할로 또 한 번 회자될 연기를 선보였다. [넷플릭스 제공]
극 중 김범준은 돈을 벌기 위해 뭐든지 하는 사람이다.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훼손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사람을 죽여놓고 “좋은 데로 가실 거다”며 명복을 비는 남자다.
“악인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을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이더라고요. 이 간극에서 비롯되는 코미디 같은 느낌을 잘 살리고 싶었어요. 극 초반 김범준은 약간 모자란 느낌이 풍기는 사이코패스처럼 표현하고 싶었어요.”
첫 등장 장면의 귀마개도 박해수의 아이디어였다. 촬영 중 너무 추워서 샀던 천 원짜리 소품을 활용했다. 박해수는 “육교의 존재 자체도 기묘했는데 완성본을 보니 ‘내게 저런 얼굴이 있었나’ 싶었다”며 “저조차 무섭게 느껴서 희열이 엿보였다”고 했다.
박해수는 매 작품 다양한 악역으로 새로운 얼굴을 꺼냈지만, 이번 드라마는 특히나 쉽지 않았다. 그는 “촬영하는 중 정서적으로 아주 힘들었다”며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마치 몸을 옮겨 다니는 악귀 같은 느낌의 캐릭터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그래서 “극한의 악을 표현하기 위해선 선함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많이 하면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수리남’은 물론 ‘악연’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만 벌써 일곱번째. 공개를 앞둔 ‘대홍수’, ‘굿뉴스‘도 넷플릭스 영화다. 그는 “저 정도면 넷플릭스 5급 공무원 정도는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한 인물의 얼굴을 그려온 그의 바람은 자신 안에서 양관식(‘폭싹 속았수다’ 주인공)을 꺼낼 작품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집에서는 저 나름대로 양관식”이라며 “이제 아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폭싹 속았수다’처럼 따뜻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나, 멜로 같은 작품에 도전해 보고 싶다”며 웃었다.
‘로코퀸’의 서늘함, ‘성폭행 피해자’의 트라우마 표현
소위 말하는 ‘예쁘고 선한’ 모범생이었다. 악의라고는 가져본 적 없던 그에게 닥쳐온 학창 시절의 ‘집단 성폭행’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배우 신민아가 연기하는 의사 이주연의 사연은 총 6회짜리 드라마에서 네 번째 편이 돼서야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존재에 이야기의 ‘해답’이 있다.
신민아는 “특별출연이나 다름없는 분량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러 배우가 함께 끌고 나가는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로웠다”며 “이렇게 이름있는 배우들과 다 같이 작업한 경험이 너무 귀하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는 명실상부 한국 드라마의 ‘로코(로맨틱 코미디) 퀸’이다. 이번 ‘악연’에서 그는 웃음기를 모두 걷어낸 얼굴로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1~3회까진 일그러진 감정들이 오가도 꾹꾹 누르며 심연 속에 사는 사람의 그늘을 만든다.
그는 “인물이 가진 내면의 감정과 갈등,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민이 컸다”며 “감정의 수위와 표현을 가볍게 다루고 싶지 않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성폭행 피해자’라는 고통스러운 과거는 시시각각 그를 짓누른다. 신민아는 “주연이 가진 감정은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두려움, 무서움과 같은 감정이 복잡하게 혼재돼 있고, 그것을 최대한 잘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성폭행 피해자라는 캐릭터를 극의 도구로 쓰지 않으려고도 노력했어요. 감독님과 제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피해자를 이용해 오락성이나 카타르시스를 만들지는 말자는 것이었죠.”
‘로코퀸’ 신민아가 맑은 미소를 지웠다. ‘악연’에서 과거의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피해자 역할을 맡으면서다. [넷플릭스 제공]
몇 번이나 복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다. 과거 ‘악연’ 속 인물이 화재 사고로 주연의 병원에 실려 오면서다. 그가 바로 박해수. 박해수는 김범준의 화상을 치료한 주연이 퇴원하려는 김범준을 붙잡는 장면을 언급, “김범준은 다른 악인들을 마주했을 때는 주도적으로 먼저 공격하는데, 아직 빛에 서 있는 주연을 만났을 때는 저절로 손을 올리며 눈을 가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후 골목에서 만났을 때도 자연스럽게 뒷걸음치게 되는 나를 보며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을 느꼈다”며 “신민아 배우가 가진 에너지 덕분에 주연의 단단함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악연’ 속 주연은 복수 대신 일상으로 돌아간다. 진짜 미소를 한 번도 본 적 없던 주연의 얼굴에 찾아온 편안함은 또 다른 차원의 극복이었다. 신민아는 “복수는 너무 장르적인 결말”이라며 “극 중 주연이는 남자 친구가 말려서 칼을 내려놓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도 가해자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대할 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스스로 고통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로코퀸’이지만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은 신민아에게도 있다. 그는 “모든 배우가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갈증이 있다. 어떤 장르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 노력한다”며 “아직도 안 보여준 모습이 더 많은 것 같다”며 웃었다. 차기작으론 ‘재혼황후’가 검토되고 있다.
“사실 필모그래피에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 많지는 않은데 ‘로코퀸’이나 ‘러블리하다’고 말씀해 주시면 너무나 감사해요. 다만 어떤 작품이든 작업할 때는 생각도 많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어요. ‘악연’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고통을 잘 버텨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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