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 초안은 주심을 맡은 정형식 재판관(64·사법연수원 17기)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 성향인 그는 헌법재판관 8명 중 유일하게 윤 전 대통령이 지명·임명했다. 만장일치 결론이 나온 만큼 헌재의 선고가 왜 늦어졌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남아있다.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참석해 있다. 공동취재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 재판관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변론 준비 절차가 본격화하기에 앞서 무작위 전자 배당을 통해 이 사건 주심 재판관이 됐다. 주심 재판관은 사건 전반을 관리하고 결정문 작성을 주도한다.
법리 판단이 세밀하다는 평을 받는 정 재판관은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했고 2019년 서울회생법원장으로 임명됐다. 2023년 2월엔 대전고등법원장에 임명됐고, 같은 해 11월16일 윤 대통령 지명에 의해 유남석 전 헌재소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그는 전날 선고를 4시간여 앞둔 오전 6시 54분쯤 재판관들 중 가장 먼저 서울 종로구 헌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다른 재판관들이 출근하자 선고 직전 평의를 열어 최종 결정문을 다듬은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 진영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 재판관과 조한창 재판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서 보수적 의견을 냈던 김복형 재판관이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을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세 재판관 모두 파면 의견을 냈다.
헌재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은 당사자들이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에 불복할 여지를 사전 차단하고, 계엄사태 이후 진영 간 갈등이 극단화되는 상황 속에서 사회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은 정계선, 문형배, 정형식, 김복형, 조한창, 정정미 헌법재판관, 윤 대통령, 이미선, 김형두 헌법재판관. 공동취재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은 12·3 비상계엄이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요건을 위반했으며 국회 군경 투입과 위헌적 포고령 발표, 선관위 압수수색 시도 등에서 실체적인 위헌·위법성이 있었다는 데 동의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가 대통령직을 파면할 만큼 중대하다는 데에도 뜻을 같이했다.
재판관들은 법정의견 결론에 모두가 동의하면서 “탄핵소추안의 발의 횟수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정형식) “탄핵심판절차에서 형사소송법상 전문법칙을 완화해 적용할 수 있다”(이미선·김형두) “탄핵심판절차에서 전문법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김복형·조한창) 등 3개의 보충의견을 제시했다. 보충의견은 결론엔 동의하면서 그 이유를 보충할 필요가 있을 때 내는 의견으로,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논리나 근거가 다를 때 남기는 ‘별개의견’과는 다르다. 반대의견은 없었다.
일각에선 탄핵심판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져 헌재 결론에 관한 온갖 억측이 나돌아 피로감이 커졌다는 불만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를 향해 “탄핵 최종 선고가 늦어지면서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헌법질서의 최종수호기관인 헌재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며 “국민 모두를 위한 현명한 결정을 신속하게 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전날 8명 재판관 전원이 만장일치로 파면을 결정하자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당초 헌법재판소의 선고일은 지난달 14일이 유력하다고 점쳐졌으나 선고가 늦춰지며 재판관들끼리 의견이 달라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진 바 있다. 몇몇 재판관들의 보충의견을 두고 선고 지연 배경이 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보충의견이 나오는 것은 일반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대통령 탄핵 사건인 만큼 재판관들의 고심이 그만큼 깊었던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번 선고 요지를 보면 민주당 등 야당을 향한 지적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가 수차례 등장한다. 결론 첫 줄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라고 적시한 부분 역시 이를 외면한 탓에 벌어진 국가적 분열을 지적하고 우리 사회를 어떻게 설득하면 될지 등에 대한 헌재의 고민이 담긴 것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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