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막아낸 계엄, 헌법으로 마침표…‘의견 충돌설’ 대두됐지만 결과는 ‘전원일치’
탄핵소추 적법성 인정하고 尹 주장 모두 배척…“국민 신뢰 상실, 국정운영 불가”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 선고를 했다. 탄핵 소추 111일, 변론 종결 38일 만이다. 사진은 지난해 5월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 뒤 퇴장하는 윤 전 대통령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4월4일 11시22분을 기해 윤 전 대통령의 '직'을 박탈했다. 헌재의 결론은 명료하다. 2024년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이 선포했던 비상계엄은 분명한 반헌법적 행위이며, 민주주의와 국민을 지켜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위헌·위법을 자행해 국가 전체를 위기로 내몰았다는 평가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압도'한다는 철퇴를 내리며 역사의 법정을 마무리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 결정문에서 '헌법' 405회, '국민' 163회, '민주주의' 40회, '기본권' 29회, '주권'을 18회 언급하며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의 밤'을 통해 훼손한 가치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었다.
'전원일치' 파면 결정…불복 여지 없앴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4월4일 대심판정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8인(정원 9인 중 1인 공석) 전원이 탄핵소추 '인용' 결정을 내렸다. 문형배 소장대행이 "피청구인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주문을 읽는 순간,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는 자연인 신분의 피고인이 됐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때로부터 122일 만, 지난해 12월14일 헌재에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기각·각하 등 반대 의견이 나올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때와 마찬가지로 소수의견은 나오지 않았고, 재판관 5인의 보충 의견이 담겼다. 변론 종결 후 38일간 역대 최장기 평의를 이어온 재판관들은 선고 결과에 대한 '불복'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숙의를 거듭하며 이견을 좁혀온 것으로 해석된다.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현직 대통령 구속·석방이 전개되며 극심한 국론 분열이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전원일치 평결을 통해 사회 통합의 출발점을 이뤄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다.
헌법재판소가 4월4일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윗줄 왼쪽부터), 이미선, 김형두, 정형식, 조한창(아랫줄 왼쪽부터), 정정미, 김복형, 정계선 헌재 재판관이 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입장해 있다. ⓒ 연합뉴스
헌재는 탄핵심판 청구인인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 5개를 모두 인정하고, 위헌·위법성이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결론 냈다. 윤 전 대통령과 변호인 측이 내놓은 '경고성·호소용·평화적 계엄' 주장은 모두 배척됐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해당하므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가 형법상 내란죄 성립 여부를 다투지 않겠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헌재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문 소장대행은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적용 법조문을 철회, 변경하는 것은 소추 사유의 철회, 변경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허용된다"고 했다.
다섯 가지 핵심 소추 사유와 관련해 헌재는 먼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실체적, 절차적 요건을 전부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법과 계엄법은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에 대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의 줄탄핵과 일방적인 입법권 행사, 예산 삭감 등으로 정상적인 국가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던 점도 계엄 선포의 주요 사유로 꼽았다.
그러나 헌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관들은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들은 모두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계엄 선포에 그치지 아니하고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는 등의 헌법 및 법률 위반 행위로 나아갔으므로, 경고성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피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헌재는 계엄 선포가 절차적 요건 역시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문 대행은 "계엄 선포와 계엄사령관 임명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며,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일부 국무위원에게 계엄 선포 취지를 일방적으로 간략 설명했을 뿐 심의를 진행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무위원이 비상계엄 선포문에 부서(서명)하지 않은 점, 계엄 시행일시·지역, 계엄사령관 공고가 없었던 점, 지체 없는 국회 통고 역시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포고령 1호 역시 헌법 위반이 인정됐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포고령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 실행할 의사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주장이 확인된 사실들과 충돌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인 4월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尹 주장 모두 배척…"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국회와 윤 전 대통령 측이 가장 많이 대립했던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과 정치인·법조인 체포 시도, 주요 인사에 대한 위치 확인 지시에 대해 헌재는 그 '실체'를 모두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변론에 직접 나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메모' 신빙성,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의 일부 진술 변화를 고리로 체포 지시 등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헌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윤 전 대통령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를 실행하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헌재가 직권으로 채택한 유일한 증인인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이 2월13일 8차 변론에 출석해 "국회에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명확히 진술했고, 곽 전 사령관이 마이크를 켜둔 채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과 윤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논의하는 것을 들은 군인들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은 무력화됐다. 김 전 장관이 변론에 출석해 주심 정형식 재판관의 압박 질문에 "체포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겠느냐"고 답한 것도 자충수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4일 자정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홍 전 1차장 등에게 직접 전화한 것을 '단순 격려 차원' '일반적 지시 때문'이라고 항변한 것에 대해 "피청구인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김 전 장관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전화해 우원식 국회의장과 각 정당 대표, 전직 대법원장 및 대법관 등 14명에 대한 위치 확인을 지시하고 여 전 사령관이 다시 홍 전 1차장에게 이를 요청한 흐름의 최종 지시자를 결국 윤 전 대통령으로 지목한 것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군경을 투입해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이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함으로써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했으므로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을 위반했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불체포특권을 침해했다"며 "또한 각 정당의 대표 등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에 관여함으로써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했고,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 8인이 4월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사정변도 거론…"尹의 권한 남용으로 군인과 시민 또 대치"
헌재는 결정문에서 우리나라의 과거 군사정변 역사를 거론하며 윤 전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해 국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도 판단했다.
헌재는 "우리나라는 과거 군사정변을 통해 군이 직접 정권을 수립하거나 정치권에서 군을 동원해 정치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며 "현행 헌법이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규정을 도입해 이를 명시적으로 강조한 것은 헌정사에서 다시는 군의 정치개입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전제했다.
이어 "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은 헌정사에서 군의 정치개입을 반복하지 않고자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 명시했지만, 국군통수권자인 피청구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권한을 남용해 군인들이 또다시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영장 없이 부당 압수수색한 점도 위헌으로 인정됐다. 윤 전 대통령은 적법한 계엄 사무였고 선거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지만, 헌재는 당시 선관위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므로 계엄사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봤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4월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관계자들이 봉황기를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적 목적의 계엄, 아픈 경험 있는 국민에 엄청난 파장"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법 위반 중대성'에 대해 △국민주권주의 및 민주주의에 대한 위반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에 대한 부인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결과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확정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돼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국민은 오랜 기간 국가긴급권의 남용에 희생당해 온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윤 전 대통령이 마지막 계엄이 있었던 1979년에서 45년이 지나 '정치적 목적'의 계엄을 다시 선포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고 짚었다.
헌재는 별지를 제외하고 106쪽에 이르는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 마지막에 헌법 제1조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명시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윤 전 대통령을 향해 헌재는 '시민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대응'으로 파국을 막아낸 것이라고 질타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현재의 정치 상황이 심각한 국익 훼손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판단하였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예정한 민주적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에 맞섰어야 한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하였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하여 국민 전체에 대하여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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