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파면 당시 인정된 탄핵사유는 '국정농단' 1개
이번 탄핵선고에선 쟁점별 尹측 주장 모두 배척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절차·결과 등 모두 '위법·위헌' 판단
"국민의 신임 배반…파면해 헌법 수호"
류영주 기자·사진공동취재단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심판 역시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면서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절차·결과 등이 모두 위법·위헌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여러 가지의 탄핵심판 쟁점 중 단 한 가지만이라도 중대한 사유로 인정되면, 대통령은 파면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때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미온적 대응 등이 탄핵소추 사유에 포함됐지만, 대부분 기각됐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연루됐다는 단 하나의 사유가 박 전 대통령을 파면으로 이끌었다.
이런 전례에 비춰본다면, 헌재가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모두 배척한 것은 그만큼 '12·3 내란사태'가 여지없이 부당하고 위법·위헌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기일에 참석해 선고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재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 결정문을 낭독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약 22분간 결정문 요약본을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헌재는 일단 윤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과정의 문제를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탄핵소추의결서에 내란죄 등 형법 위반 행위가 포함됐다가 탄핵심판청구 이후에 빠진 부분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왔다.
헌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적용 법조문을 철회·변경하는 것은 소추 사유의 철회·변경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허용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은 소추사유에 내란죄 관련 부분이 없었다면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가정적 주장에 불과해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근거도 없다"며 "이 사건 탄핵소추안의 의결 과정이 적법하고, 피소추자(윤 전 대통령)의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소명됐으므로, 탄핵소추권이 남용됐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수단으로써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행사했다는 주장이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조사 없이 탄핵소추안을 가결해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 역시 배척했다.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비상계엄 선포가 이뤄졌다면 그 자체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며, 법사위 조사는 국회의 재량일 뿐 필수는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이후 본격적으로 △비상계엄 선포 요건 및 절차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포고령 발령 △선관위 압수수색 △법조인 등 체포인 위치 확인 시도 등 5가지 쟁점 대한 설명과 판단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먼저,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이 충족되었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국회 다수당인 야당이 예산을 과도하게 삭감하고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를 남발한 상황을 '국정 마비' 상태로 규정해, 야당에 대한 경고와 대국민 호소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런 주장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계엄 선포 당시에는 검사 1인 및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만이 진행 중이었다"며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법률안들은 피청구인이 재의를 요구하거나 공포를 보류해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부당하더라도, 헌재의 탄핵심판, 피청구인의 법률안 재의요구 등 평상시 권력행사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어, 국가 긴급권의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국회의 권한 행사로 인한 국정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피청구인은) 야당의 전횡과 국정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계엄법이 정한 계엄 선포의 목적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비상계엄의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여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된 만큼 그밖의 이유로 비상계엄을 행사한 것은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을 위반했다는 판단이다.
곽종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윤창원 기자
윤 전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가장 크게 뒷받침했던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진술을 공격해 왔다. 윤 전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곽 전 사령관의 진술과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지시했다는 홍 전 차장의 증언은 비상계엄의 위법·위헌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정황이었다.
헌재는 두 사람의 증언을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나아가 윤 전 대통령이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직접 6차례 전화를 걸었고, 이에 조 청장이 국회를 봉쇄했다는 점 역시 사실로 받아들였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회의 권한 행사를 막는 등 정치적 목적으로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해 나라를 위해 봉사해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다"며 "피청구인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를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보고 받고 수정해 공표했던 포고령에 대해서는 "포고령을 통해 국회,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 정당제도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 대의민주주의, 권력분립원칙 등을 위반했다"며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요건을 정한 헌법 및 계엄법 조항, 영장주의를 위반해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이밖에 추가적인 설명은 없었다. 그만큼 12·3 비상계엄의 포고령이 명백히 위법·위헌적 내용으로 점철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선관위 장악과 체포조 운용 부분에 대해서도 헌재는 짧고 명확한 판단을 전했다. 선관위 압수수색에 대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도록 해 영장주의를 위반한 것이자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고, 법조인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에 대해서는 "현직 법관들로 하여금 언제든지 행정부에 의한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하므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자 4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헌재는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탄핵소추를 인용했다. 류영주 기자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모두 기각한 뒤 대통령이라도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넘어설 수 없으며, 비상계엄은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일갈했다.
헌재는 먼저 비상계엄이 신속히 해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한 '평화적 계엄' 계획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으로 인해 "국민주권주의 및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병력을 투입시켜 선관위를 압수수색하도록 하는 등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를 무시했으며, 이 사건 포고령을 발령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청구인은 가장 신중히 행사돼야 할 권한인 국가긴급권을 헌법에서 정한 한계를 벗어나 행사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또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해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며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문 권한대행은 선고 직전 말을 멈추고 잠시 시각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22분. 이어 마지막 주문을 읽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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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구연 기자 kimgu88@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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