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 결정문 분량 늘고 설명 심화
재판관 보충의견 확대…'헌법적 다양성' 확보
국가긴급권 남용에 '명확한 한계선' 그어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인용하며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우리 헌정사상 두번째 ‘파면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은 세 번째 대통령 탄핵심판을 통해 축적된 대통령 탄핵 판단기준 등 진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분량 확대·설명 심화…盧 51쪽 → 尹 114쪽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은 총 51쪽 분량이었다. 당시에는 재판관별 의견 표기 의무가 없어 찬성과 반대 의견이 어떻게 갈렸는지조차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은 88쪽으로 확장됐고, 만장일치 의견과 함께 2건의 보충의견이 첨부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은 여기서 한층 더 진화했다. 총 11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계엄 선포의 위헌성, 사법·입법부 침해 행위, 선거관리기관 압수 시도 등 대통령 권한 남용에 대한 정밀한 판단 기준이 적용됐다. ‘헌법질서 파괴’라는 핵심 쟁점에 대해 구체적이고 치밀한 법리가 전개됐다.
이처럼 결정문 분량이 늘고 내용이 정교해진 것은 헌재가 축적한 헌법적 판단의 무게가 커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결정문에서 주목할 점은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오남용, 즉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헌재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고, 국회·사법부에 군경을 투입해 헌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위헌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은 현실적으로 극도의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만 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으며, 예방적·정치적 목적의 계엄은 위헌”이라고 단호히 밝혔다. 이는 과거 판례와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의 판시를 발전시킨 것으로,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명확한 경계선을 그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정치적 갈등’이 아무리 격화돼도 계엄 선포 같은 국가긴급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운 셈이다. 이에 향후 어떤 대통령도 이같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도록 했다.
보충의견 확대로 ‘헌법적 다양성’ 확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보충의견의 확대다. 박근혜 탄핵 사건 결정문에는 2건의 보충의견이 담겼으나 이번에는 3건으로 늘어났다. 이미선·김형두 재판관은 “탄핵심판절차에서 형사소송법상 전문법칙을 완화해 적용할 수 있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반면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탄핵심판절차에서 앞으로는 전문법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법칙은 원칙적으로 전문증거(듣고 전하는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형사소송법 원칙을 말한다.
정형식 재판관은 국회의 탄핵소추권 행사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제안하며 “다른 회기에도 탄핵소추안의 발의 횟수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회기를 달리하며 연이어 제기되는 탄핵소추안에 대한 법적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이 제418회 정기회 회기에 투표 불성립되자 제419회 임시회 회기를 열고 2차 소추안을 발의한 바 있다.
재판관 개별 의견이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헌재 결정문의 ‘헌법적 다양성’은 더욱 풍성해졌다. 법조계에서는 보충의견을 통해 헌법쟁점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미래지향적 제언이 가능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수결로 결정된 판단이라도 소수의 목소리가 기록되는 것은 헌법재판의 성숙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헌재가 단순히 사건을 종결하는 판결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헌법상 절차의 정당성과 통제원칙을 축적하며 대통령제의 위험성과 책임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헌정질서의 기준을 구체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발표된 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사거리 일대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성주원 (sjw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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