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12·3 비상계엄 선포…절차적·실체적 요건 모두 위반
포고령은 헌법 위반…“정치적 기본권·직업의 자유 침해”
尹 “탄핵 소추는 무효” 주장에…“계엄선포는 사법심사 대상”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 8인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정 사상 세 번째 탄핵심판은 '파면'으로 결론이 났다.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하면서다. 12·3 비상계엄 선포를 포함한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 5가지는 모두 인정됐다. 이로써 윤석열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두 번째로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탄핵심판 선고 주문을 읽었다. 헌재는 "피청구인(윤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해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렸다"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했다.
이어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강조했다.
이날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했다. 반대 의견을 남긴 재판관은 없었다. 일부 재판관들이 결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세부 쟁점에 대해서만 보충의견을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12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입구를 계엄군이 통제하고 있다. ⓒ 뉴시스
헌재 "나라 위해 봉사하는 군인들을 시민과 대치하게 만들어"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 5가지를 모두 인정했다. 5가지 쟁점은 △12·3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했는지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국회에 계엄군과 경찰을 투입한 행위가 적법했는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한 것이 적법한지 △사법부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구금 지시가 있었는 지다.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야당의 '줄탄핵' '예산 삭감'으로 중대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서는 "국회의 탄핵소추, 입법, 예산안 심의 등의 권한 행사가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 중대한 위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계엄 선포가 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도 않았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하기 직전에 국무총리 및 9명의 국무위원에게 계엄 선포의 취지를 간략히 설명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계엄사령관 등에게 이 사건 계엄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계엄 선포에 관한 심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은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비상계엄 선포문에 부서하지 않았음에도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하였고 그 시행일시, 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하지 않았다"며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지도 않았으므로, 헌법 및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요건을 위반했다"고 부연했다.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은 헌법을 위반한다고도 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이 사건 포고령을 통해 국회,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 정당제도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 대의민주주의, 권력분립원칙 등을 위반했다"면서 "비상계엄하에서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요건을 정한 헌법 및 계엄법 조항, 영장주의를 위반해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국회에 계엄군과 경찰을 투입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군·경을 투입해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통제한 데다 '끌어내라'고 지시함으로써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읜 심의·표결권, 불체포특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헌재는 비상계엄 당시 군과 시민이 대치한 상황에 대해 "피청구인은 정치적 목적으로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해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다"며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했다.
선관위에 군을 투입한 것도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국회의 권한 행사로 인한 국정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사법부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구금 지시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필요시 체포할 목적으로 행해진 위치 확인 시도에 관여했는데, 그 대상에는 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 대법원장 및 전 대법관도 포함돼 있었다"면서 "이는 현직 법관들로 하여금 언제든지 행정부에 의한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하므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주요 쟁점 ⓒ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
반면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측에서 제기한 절차적 쟁점 중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내란죄 철회' 논란에 대해서는 탄핵소추 사유를 변경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국회 법사위 조사를 거치지 않거나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해 탄핵소추 자체가 무효라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재판관들의 보충 의견도 있었다.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앞으로의 탄핵심판에서는 증거와 관련해 전문법칙을 보다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이미선·김형두 재판관은 전문법칙을 완화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보충의견을 냈다.
정형식 재판관은 다른 회기에도 탄핵소추안의 발의 횟수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한편, 헌재는 작년 12월 14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접수한 뒤 11차례 변론을 거쳐 지난 2월 25일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후 한 달 넘게 장기간 평의를 거듭한 끝에 이날 선고를 마쳤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은 전체 심리 기간과 변론종결 후 평의 기간 모두 대통령 사건 중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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