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땐 ‘35조 슈퍼추경’ 무게
필수추경만해도 재정준칙 한도 넘어
국가채무 증가→신용도 하락 가능성
“경기부양위해 슈퍼추경 필요” 의견도
[세종=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정부가 대규모 산불 대응과 쪼그라든 나라 살림을 고려해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제시했지만 조기 대선정국으로 전환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슈퍼 추경론’이 또 한 번 고개를 들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시 남후농공단지가 산불로 피해를 본 가운데 한 공장에 있는 사료 등이 불에 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내수침체와 미국의 관세 전쟁 본격화에 0%대 경제전망까지 나온 상황에서 조기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수십조 원 규모의 ‘선심성’ 추경 편성이 국가채무 증가·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한편에선 위험요인이 있더라도 과감한 추경을 통한 경기부양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있다.
“추경 재원 ‘국채발행’뿐…재정 건전성 고려”
3일 관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은 재정 건전성을 감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잇따른 세수 결손분을 메우느라 세계잉여금과 기금 등 여윳돈이 바닥났고 결국 추경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선 ‘국채 발행’이 남은 선택지인데 이는 고스란히 나랏빚으로 남게 돼 재정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앞서 정부는 올해 73조 9000억원 규모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8% 수준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예상했는데, 필수 추경만으로도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3.2%로 악화해 법제화를 추진 중인 재정준칙 한도(GDP 대비 -3.0%)를 지킬 수 없게 된다. 재정 건전성이 더 악화한다는 의미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일시적으로 흑자를 보이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뺀 것으로 실질적인 나라 살림의 수준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자 기재부가 먼저 필수 추경이란 이름으로 추경 편성액 규모를 최소화하자는 가이드라인을 던진 셈이다. 통상 여야가 추경 용처와 규모 등을 합의하면 기재부 예산실이 각 부처가 쓸 예산을 조율하는 순서로 추경 편성 프로세스가 가동되지만 이번엔 역순이었다. 산불 피해지원을 위해 급히 쓸 재원과 여야 간 이견이 없는 통상 및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한다는 취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은 국채발행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밖에 없고 이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키울뿐만아니라 국가 채무를 늘릴 수 있어서 필수 추경 규모를 산정할 때도 재정 건전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다만 소폭 추경 규모 증액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강영규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여야가 동의하면 약간의 추경 규모 변동은 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2조원 정도 좀 더 해야 한다고 하면 각 부처와 편성안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선심성 ‘슈퍼추경’땐 신용도 하락 우려”
이번 필수 추경은 산불 피해에 따른 ‘시급성’이 명분이자 추진동력으로 작용했지만 오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에 따라 조기 대선정국에 돌입하면 슈퍼 추경론에 무게가 쏠릴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이 대선용 ‘표심잡기’에 몰두해 추경 규모가 야당이 제안한 35조 원대로 대폭 늘어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선심성 추경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미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고 미국발 관세 압박이 거세지면서 경기하방 압력이 강한데다 대규모 국채발행까지 하게되면 국가채무 증가→국가신용등급 하락→국가재정에 약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매번 세수결손을 메우기 기금 등을 활용했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한계를 드러냈다”며 “추경 편성 시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상승해 기업 투자 위축과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편에선 대내외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선 슈퍼 추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지속된 상황에서 부양을 목적으로 최소 20조원에서 야당이 주장한 35조원까지 과감한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며 “산불뿐만 아니라 삭감됐던 연구개발(R&D) 예산 그리고 민생, 특히 자영업자 지원과 지역 화폐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강신우 (yeswh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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