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기판위에 잉크처럼 바르는 방식
비용 대폭 줄이고 제작 손쉬워 최근 각광
빌딩 외벽·車지붕 등 다양하게 적용 가능
페로브스카이트 전지 분야서 독보적 행보
자신의 광전변환 효율 세계기록 8번 경신
가장 먼저 연구실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
'출연연 1000억 자산가' 성공스토리 야심
의대 쏠림 해소해 이공계에 희망 주고파
전남중 화학연 박사
전남중 화학연 박사
전남중 화학연 박사
전남중 화학연 박사
이준기의 D사이언스 전남중 한국화학연구원 광에너지연구센터장
그는 연구원 내에서 좋은 의미로 요주의 인물이다. 매주 그의 거취를 파악하는 비밀요원(?)이 있다는 농담 섞인 소문이 돌 정도로, 연구원에서 주목받는 연구자 중 한 명이다. 그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세계 최고의 연구성과를 낸 선후배·동료 연구자들이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대학과 산업체로 속속 떠났지만, 그는 남아 연구실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주위의 염려와 달리 그의 연구 여정은 지금 있는 곳(연구원)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지난달 같은 연구실 소속의 전·현직 연구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했는데 모인 인원만 100명이 넘었다. 그야말로 그가 몸담고 있던 연구실이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하다시피 했다.
선·후배·동료 연구자로부터 이어온 끈끈한 케미로 연구실을 독야청청 지키고 있는 전남중 한국화학연구원 박사는 주위로부터 걱정과 동시에 칭송받는 연구자로 통한다. 특히 차세대 태양전지로 각광받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태양전지 분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과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자신이 세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세계 최고 효율 기록을 수차례에 걸쳐 스스로 갈아 치우고, 선배 연구그룹과 때론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연구 수월성을 높이고 있다.
전 박사는 "효율을 경신하기 위한 연구 과정은 매우 힘든 도전의 연속이었다"며 "지금은 대면적 소자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여 앞으로 2년 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대량 생산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출연연에서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출연연에 오면 연구를 통해 소위 '대박'을 쳐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되면 의대 쏠림이나 이공계 기피 등을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출연연 연구자가 더 좋은 여건과 대우를 받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란 신념을 갖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대담=이준기 과학바이오팀 부장
◇자연과 뛰놀던 시골 아이, 화학에 눈뜨다
전 박사의 고향은 전남 보성이다. 보성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진 시골 마을이다. 어릴 때부터 자연을 벗삼아 놀았다. 자연이 품고 있는 동물과 식물, 곤충이 그의 친구나 다름 없었다. 다른 아이에 비해 덩치가 커 초등학교 때는 씨름 선수로 활약했고, 달리기도 곧잘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선 다른 학교에서 정구부원으로 스카우트될 뻔 했을 정도로 공부보다는 운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좋은 화학선생님을 만나 화학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한 것이 계기가 돼 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했다"고 말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고, 이를 이온센서에 적용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유기물 합성 연구에 주력해 제약 분야로 진로를 생각했지만, 지도교수의 제안으로 에너지 분야로 방향을 바꿨다.
전 박사는 "앞으로 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연구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지도교수님의 말을 듣고 유기화학자에서 에너지 화학자로 진로를 정해 화학연에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선배 멘토와 인연으로 페로브스카이트에 눈 뜨다
화학연에 박사후연구원으로 들어온 전 박사는 석상일 박사(현 울산과학기술원 특훈교수) 연구팀에 합류했다. 당시 석 박사가 유무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연구를 하던 중 페로브스카이트 소재의 뛰어난 광전변환효율을 확인하고, 연구 방향을 바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에 본격 뛰어든 시기였다.
그는 "석 박사님의 연구실에 와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를 처음 접했을 때 막막했다"면서 "유기합성을 연구한 덕분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 적용할 수 있는 단분자 물질 합성을 위한 연구를 맡아 태양전지 분야 연구자로 본격 나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 박사는 석 박사님을 '롤 모델'로 정하고, 그의 연구 스타일을 스폰지처럼 빨아 들이며 연구자로서 차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석 박사님은 후배들에게 연구자로서 항상 최선의 모습을 보여 주셨고, 연구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 자기관리 등에 있어 연구자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추신 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가령, 석 박사님은 오전 7시 15분에 연구실로 출근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후 6시 넘어 연구원 근처에 있는 집에 가서 식사를 한 뒤, 다시 연구실로 나와 저녁 9시 넘게 연구를 하다가 퇴근하는 게 일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후배 연구자들이 잘 알고 있었기에 연구에 게으름을 필 수 없었다고도 했다.
전 박사는 "석 박사님은 거의 이런 패턴을 거르지 않고 반복하셨고, 저 역시 석 박사님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석 박사를 따라하던 것이 지금은 습관이 돼 그는 연구실에 가장 일찍 나와서 가장 늦게 나가는 일과를 이어가고 있다.
◇'기록 경신의 연구자'… 산업체와 사업화 결실 '속속'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기존 태양광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고 있다. 유기물과 무기물이 섞여 있는 금속산화물인 페로브스카이트는 반체와 부도체, 도체의 성질을 모두 지녀 광흡수 소재로 우수한 특성을 갖는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빛을 받아 만든 전하 입자가 전극으로 전달되면서 전기에너지를 생성한다. 플라스틱 기판 위에 잉크처럼 바르는 저온 용액 공정으로 생산할 수 있어 실리콘 소재보다 훨씬 저렴하고 간단하게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매우 얇고 유연한 필름 형태로 제작할 수 있어 기존에 설치하기 어려운 빌딩 외벽, 자동차 지붕, 곡면 구조물 등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효율성도 실리콘 태양전지와 비슷해 우수하지만, 상용화를 위해선 높은 효율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대면적 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전 박사는 지금까지 무려 8번에 걸친 광전변환 효율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며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그는 "연구 초창기 12% 효율에서 시작해 소재, 공정, 용매 등을 새롭게 연구하며 26%까지 효율을 높여왔다"며 "기존 기록을 깨면서 색다른 흥미와 앞으로 그 기록을 다시 경신하겠다는 기대감으로 연구에 재미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고 밝혔다.
일찌감치 관련 기술을 다수의 산업체에 이전해 속속 사업화 결실을 맺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니테스트와 실내조명만으로 전기 생산이 가능한 '실내용 저조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선보였고, 솔루엠과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내장해 배터리가 필요 없는 전자가격표시기를 처음으로 사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는 실내에서 발전 효율이 낮아 사용하기 어려운데, 상용화에 성공한 저조도 태양전지는 실내 조명으로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며 "앞으로 기업과 협력해 다양한 사업화 성공 사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면적서 높은 안정성·효율 확보 위한 상용화 '주력'
최근에는 효율을 높이기 보다는 대면적을 기반으로 높은 안정성과 효율성을 확보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대량 생산하는 상용화 연구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단위 소자에서 이론적 효율에 최대로 근접한 것으로 판단하고, 효율을 높이는 연구보다는 중국이 발빠르게 선점해 가고 있는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산업체와 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 박사는 "26% 효율을 27%, 28%로 올리는 연구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빠르게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시장에서 대면적으로 만들어 안정성과 고효율의 양산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과 공동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기판 면적이 넓어질수록 균일한 도포가 어려운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안정화 기술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다. 그는 "여러 물질을 적층하는 특성상 오랫동안 안정하게 효율을 유지하는 게 상용화 성공의 관건이다. 이를 위해 재료, 물리, 화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자들과 원팀을 이뤄 새로운 재료를 발굴해 효율과 안정성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연구가 현재로선 더 큰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中, 우리보다 앞서… 신소재·공정 연구로 2년 내 상용화 실현
전 세계 태양광 설비는 중국이 거의 독점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상용화에 있어 우리를 앞서가고 있다.
전 박사는 "실리콘 태양전지를 우리가 잘 하다가 중국에 추월당한 것처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도 중국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대면적에서 높은 효율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소재와 공정 개발 전략을 통해 중국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물질과 재료특허 등 지재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 박사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서 물질과 재료특허를 무기로 중국과 승부하려면 장비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한다"며 "하지만 출연연 특성상 장비 구매 절차가 까다롭고, 제약이 많아 비효율적인 면이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본격 상용화 시기를 2년 후로 내다봤다. 이를 위해 지난달 화학연에 문을 연 상생기술협력센터에서 고산테크와 함께 차량 일체형·건물 창호형 대면적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사업화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겠다는 각오다.
효율 한계에 직면한 실리콘 태양전지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다중 접합한 탠덤 태양전지 상용화에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전 박사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공계에 희망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개인적인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닌 의대 쏠림 현상 등 이공계에 직면한 여러 문제를 자신이 몸소 많은 돈을 벌어 해소해 보겠다는 작은 바람이다.
그는 "출연연 연구자가 연구해서 100억원, 1000억원 이상의 자산가가 나오는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며 "이를 위해 정부와 기관의 더 큰 관심과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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