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에너지부 산하기관 연구지원 자격에
민감국가 출신 연구자 제한 문구 명시돼
예상보다 영향 커지나 현장 우려 목소리
국제협력 강조해놓고 과학 외교는 부재
미국 에너지부 국가핵안보국(NNSA)의 ‘예측과학 학술 연계 프로그램(PSAAP)’ 공식 사이트에 게재된 지원 자격 설명 자료. PSAAP 홈페이지 캡처
미국 에너지부 산하 기관의 과학연구 지원 프로그램에 ‘민감국가 출신은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규정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민감국가에 지정돼도 과학기술 협력에 문제가 없다”던 정부의 설명과 상반된다. 정부가 최근 과학기술 국제협력을 강화한다며 글로벌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늘렸지만, 정작 기술외교는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미국 에너지부 국가핵안보국(NNSA)이 2023년 8월 공고한 ‘예측과학 학술 연계 프로그램(PSAAP)’ 제4기 모집공고문에 따르면, PSAAP의 학술 지원금은 ‘미국 시민 또는 민감국가 출신이 아닌 비(非)미국 시민에게만 사용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PSAAP가 공식 사이트를 통해 공지한 프로그램 설명 자료에도 이 같은 주의사항이 언급돼 있다. 4기 모집은 지난해 10월 이뤄졌다.
예측과학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최첨단 기계학습(머신러닝)으로 과학 분야의 응용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이다. PSAAP 학술 지원은 미국 대학의 박사과정생들에게 NNSA 산하 연구기관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등과 협업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선정자는 해당 연구소들을 방문해 핵물리나 재료과학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인턴십에 참가하게 되는데, 보안 문제로 민감국가 출신 연구자는 참여가 제한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현재 해당 연구 프로그램에 대해 파악 중”이라며 “미국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대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달 19일에도 대전에서 출연연들과 간담회를 열고 “미국 에너지부와의 대화를 통해 협력에 문제가 없고 향후 협력 의지도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감국가 지정이 예상보다 폭넓게 우리 과학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인 과학자의 연구 협력도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나, 정부는 지정 여부조차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목록 발효 시점인 이달 15일 전 한국이 목록에서 빠질 수 있을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PSAAP와 유사한 연구 지원에 비슷한 제약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정부는 여전히 파악 중이라는 답변이다.
정부가 최근 큰 투자를 했던 글로벌 R&D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도 글로벌 협력 연구 예산은 전년 대비 3배에 달하는 1조8,167억 원으로 늘렸다. 올해 글로벌 R&D 예산도 2조2,000억 원으로 더 증액됐다. 탁월한 연구성과를 위해 국제협력이 중요하다는 취지이나, 정작 현장에서는 연구자에게 협력 방안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 공학계열 교수는 "R&D 예산은 줄었는데 국제협력을 강조하다보니 협업할 연구실을 직접 섭외하고들 있지만, 그 과정에서 지식재산 같은 연구성과 분배나 보안 문제까지 현장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 혼란이 많다"고 답답해 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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