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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끝이 보인다. 2월 25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변론 종결 후 한 달 이상 장고하면서 ‘솔로몬의 지혜’를 구해온 8인의 헌법재판관들이 4월 4일 오전 11시 고심의 결과물을 국민에게 공개한다. 결론 도출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시중에는 ‘5 대 3 교착설’ ‘4대4 대립설’ 등 출처와 진위를 알 수 없는 온갖 풍문이 나돌고 있다.
과연 재판관들의 최종 결론은 무엇일까. 안타깝지만 구중궁궐보다 깊은 헌재의 속내를 미리 들여다 볼 방법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뜬 소문에 애닳아하는 것보다는 ‘8인의 현자’들의 면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이들이 남긴 결정례를 ‘힌트’ 삼아 결과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보는 게 보다 이성적인 태도 아닐까.
이와 관련해 주목할 선례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다. 그 중에서도 현 단계에서 가장 큰 이목을 끄는 이는 ‘스윙 보터’이자 ‘캐스팅 보터’인 중도파 김복형, 김형두 재판관이다. 보수파로 불리는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의 결정도 관심의 대상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4인은 공히 이 위원장 사건에서 기각 판단, 즉 “이 위원장은 파면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에 섰다. 이들의 결론은 진보파 4인의 그것보다 예상하기가 힘들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운명이 이들 4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
" 조한창? 0표일 수도 있고, 3표일 수도 있죠. " 사법부의 소식통인 A 판사가 묘한 답을 내놓았다. 조한창(60·연수원 18기) 신임 헌법재판관에 관해 묻던 기자는 뜻밖의 선문답에 어리둥절해졌다.
0~3표를 오가는 이 광폭의 영역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단 한 사람이 3표가 될 수 있다는 상식 밖의 산술 법칙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무엇보다도 무엇이 0표이고 3표란 말일까.
A가 기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해설을 이어갔다.
" 헌재 내 ‘탄핵 기각’ 세력이 얻을 수 있는 표를 말하는 거예요. 조 재판관은 엄청난 변수야. 그 양반 한 명이 추가되면서 ‘탄핵 기각’이 0표에서 단숨에 3표로 늘어날 수 있어요. 3표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길 수도 있다는 말이야!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인용되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탄핵 심판 기각, 즉 윤 대통령이 이기려면 8인 체제가 된 헌재에서 3표 이상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조 재판관 한 명의 합류로 3표 확보가 가능해질 수 있다? 아무리 조 재판관이 국민의힘 추천 재판관이라 하더라고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A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한창 신임 헌법재판관이 2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그는 법조계 일각의 시선대로 이번 탄핵심판 사건에서 태풍의 핵이 될 수 있을까. 뉴스1
A의 상세 해설을 더 듣기 전에 먼저 조 재판관이 누구인지, 그가 윤 대통령과 어떤 관계인지부터 따져보는 게 순서일 듯싶다.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서다.
그는 주류(主流)다.
서울지법 판사와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판사와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및 수석부장판사 등 전형적인 법원의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왔다.
게다가 서울법대 출신이고 남성이다. 과거였다면 대법관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자격의 소유자지만 그는 끝내 대법관이 되는 데 실패했다. 후보에만 세 번이나 올랐지만, 매번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다.
사법부의 다양성이 강조되고 이에 따라 여성이나 재야, 향판 출신들이 약진하면서 동료 주류들과 더불어 뒷순위로 밀려난 측면도 있다. 게다가 그는 ‘가시면류관’을, 그것도 여러 개 쓰고 있었다.
그는 이른바 ‘사법농단’이라고 불린 그 무시무시한 사건에서 이름이 두 번이나 등장했다. 때는 2015년,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시절이다. 그는 행정법원에서 진행 중이던 두 건의 재판에 대한 법원행정처 ‘의견’을 담당 재판부에 전달했다.
그중 하나는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제기한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이었다. 당시 통진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져 풍비박산 난 상태였다. 당이 소멸하면서 의원들도 자동으로 의원 지위를 상실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에 반발하면서 의원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대법원 앞에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소송 인용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2,3심 모두 이 소송을 각하했다. 뉴스1
“행정법원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며 각하 결정을 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당시의 ‘양승태 대법원’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법원이 국회의원의 지위를 좌지우지하는 권한을 가질 정도로 힘이 세다는 사실을 만방에 일깨워주고 싶어했다. 이규진 당시 법원행정처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조 재판관에게 ‘각하는 부적절’이라고 적힌 문건을 전달한 이유다.
조 재판관은 당시 그 문건을 파쇄했지만, 내용까지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담당 재판부에 구두로 법원행정처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는 이후 검찰 수사 때 다음과 같이 진술하면서 당시 행동을 아쉬워했다.
" 대차게 거절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업무 능력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의 이름은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 사건 때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진보 성향 판사였던 서 전 의원은 판사 시절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후 판사 재임용이 거부되자 해당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이 2018년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한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부의 지령이 또 떨어졌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역시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이던 조 재판관에게 전화를 걸어 ‘재판 기일을 미룰 이유가 없다. 즉시 기일을 지정하고 소송을 신속하게 진행하라’는 취지의 요구를 여러 차례 했다.
그는 이때도 그 요구 사항을 담당 재판부에 전달했다. 조 재판관은 이후 사법농단 재판에 출석해 “재판을 미룰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사건을 묻어두지 말고 진행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빨리 진행하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조 재판관은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태 때도 구설에 올랐다. 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 배당하고 사건 처리 방향을 제시한 사건이다.
촛불집회 재판 개입 의혹을 받던 신영철 대법관이 2009년 5월 퇴근길에 기자들에 둘러싸여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조 재판관은 바로 그 ‘몰아주기’ 대상이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판사였는데 관련 형사 사건을 집중적으로 배당받았고, 유죄 판결을 많이 내렸다.
조 재판관은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이 논란이 언급되자 “당시 재판과 관련해 아무런 부탁도, 압박도 받지 않았다. 부당한 지시에 맞춰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이런 이력 때문인지 보수 성향의 양승태 대법원에서 진보 성향의 김명수 대법원으로 ‘사법부 정권 교체’가 이뤄진 후 그는 출셋길이 막혔다. 일선 법원장으로 나가야 했지만 몇 년 동안 나가지 못했다. 2021년 정기 인사 때도 법원장으로 임명되지 못하자 그는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랬던 그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일약 ‘대통령의 판사’로 부상했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최고 법관 자리가 빌 때마다 예외 없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1월 민유숙·안철상 전 대법관 후임자를 뽑을 때 3배수 후보 명단에 올랐고, 6월엔 김선수·노정희·이동원 전 대법관의 뒤를 이을 후보 9인에 올랐다. 불과 얼마 전에도 김상환 대법관 후임 최종 후보 4명에 포함됐다. 비록 낙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가 잇따라 대법관 후보군에 들자 사법부 안팎에서는 “대통령실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감지됐다.
여당이 윤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이종석 전 헌법재판소장 연임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지체 없이 폐기한 것도 조 재판관이라는 확실한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만큼 윤 대통령과 여당에서는 조 재판관이 탄핵 기각 쪽에 설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서두에 등장한 기적의 셈법으로 돌아가 보자. A는 “조 재판관이 0표가 될 수도, 3표가 될 수도 있다”고 밝힌 이유를 설명했다.
" 기존 헌재 체제에서 윤 대통령 측이 기대를 걸고 있는 헌법재판관은 정형식 재판관 한 명이었죠. 그런데 설사 그가 탄핵 기각(윤 대통령 승리) 의견이라 하더라도 나머지 전부가 탄핵 인용 편이라면 사람의 심리상 혼자 다른 쪽에 선다는 건 매우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이름이 역사에 기록돼 두고두고 인용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니까요. 그래서 결과가 7대 1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면 그 역시 7쪽으로 붙을 가능성이 커요. ‘7대1 = 8대0’이라는 말이에요. "
A의 말이 빨라졌다.
" 그런데 조 재판관이 합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물론 그가 탄핵 찬성 쪽에 선다면 달라질 게 없겠죠. 하지만 탄핵 기각 쪽에 선다면 얘기가 달라져요. 확실한 탄핵 기각 의견 1표가 더 생겼다고 가정해볼까요. 정형식 재판관 입장에서 7대 1은 부담스럽지만 6대2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죠. 그럴 경우 만일 정 재판관 소신이 탄핵 기각이라면 소신대로 표를 던질 거에요. "
6대2라도 대세를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그래도 6대2니까 탄핵 인용이 되고 대통령이 지는 것 아닌가요? "
A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 6대2가 5대3으로 바뀌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탄핵 기각 쪽이 확실한 2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마음이 흔들리는 분이 추가로 생길 수 있어요. 중도로 분류되면서 자기 의견이 아직 확고하지 않은 분, 이를테면 김형두 재판관 같은 분이 탄핵 기각 쪽에 합류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게 조 재판관 한 명이 합류하면서 생길 수 있는 나비 효과에요. 그만큼 조 재판관이 엄청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지난 2일 신임 헌법재판관 취임식장에서의 조한창, 정계선, 김형두, 정형식 재판관(왼쪽부터). 법조계 일각의 관측대로 정계선 재판관을 제외한 세 명은 탄핵 기각 편에 설 수 있을까. 뉴스1
이게 윤 대통령의 히든카드였을까. 그렇다면 그가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체포영장 집행까지 거부하면서 ‘수사 회피, 헌재 집중’ 전략을 취하고 있는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될 법하다. 헌재에서 탄핵심판 기각 결정을 받아내 현직 대통령의 실권을 회복한 뒤 그 위력을 무기 삼아 수사를 형해화시키겠다는 전략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9인 체제가 아닌 8인 체제의 헌재를 구성한 배경에도 이런 이해관계가 깔려있었을까.
Q : 이게 8인 체제니까 위력적인 거네요. 만약 이번에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도 함께 임명돼 9인 체제가 됐다면 아무리 탄핵 기각 쪽이 3표를 모아도 탄핵 인용으로 결론 났을 텐데 말이죠. 그렇다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런 그림까지 그린 상태에서, 또는 이런 그림을 염두에 둔 윤 대통령이나 여당의 요구를 수용해서 재판관 후보자 세 명 중 두 명만 임명한 걸까요?
A : 그건 알 수 없죠. 하지만 윤 대통령 측 전략이 수사 회피, 헌재 집중인 건 사실이고 그런 전략이 8인 체제에서만 그나마 시도해볼 수 있는 거라는 걸 고려하면 사전 협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죠.
물론 판사 1명의 사견에 불과할 수도 있는 시나리오다. 그렇지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윤 대통령 측의 행동을 어느 정도 설명해줄 수 있는 탁견인 것도 사실이다. 이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본격화하는 ‘헌재의 시간’을 따라간다면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헌재 8인 해부 - 보수 혹은 중도 4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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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창? 0표, 혹은 3표일수도” 尹 탄핵심판 엄청난 변수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5167
尹탄핵 신스틸러로 급부상…한덕수 기각, 김복형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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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우려한 ‘박선영 제부’ 정형식…“산신령 불리는 원칙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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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무죄’ 13초 검증 김형두, 하필 탄핵 전날 野와 사진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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