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탄핵정국 後 점검해야 할 이슈
4편 낙수효과 무용론 분석
尹, 대기업·부자세금 감면했지만
2년 연속 수십조원대 세수결손
낙수효과 논문 작성한 학자 없어
OECD “韓 재벌 낙수효과 없어”
경제가 종교가 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 경제는 때때로 종교가 된다. 논리적인 경로가 있든 말든 이를 뛰어넘어 무언가를 주장하려는 이들은 종종 경제학을 통해서 구원받길 원한다. 이를테면 낙수효과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 사람들에게 경제학은 종교이고, 낙수효과라는 단어는 기도문일지 모른다.
# 경제가 종교로 자리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구도 이를 반박할 수 없다. 반증할 수 없는 게 종교이기 때문이다. 종교로서 경제를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확실한 반대 증거가 있어도 눈을 감아버린다. 반론을 받아들이면 믿음을 버리는 일이 돼서다.
# '탄핵정국 後 점검해야 할 문제' 4편 낙수효과 무용론, 5편 수출·재벌 맹신론은 경제를 종교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 제기일 수 있다. 하지만 경제는 종교가 아니고, 우리는 경제의 신자가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경제이론은 버리고, 효과가 없어진 전략은 바꿔야 한다.
윤석열 정부 3차 부자감세 저지 및 민생복지 예산 확충 요구 집중행동 회원들이 지난 1월 부자감세 폐기 및 민생-복지 추경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낙수효과(Trickle down economics). 대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투자가 증가해 결국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다. 대개의 잘못된 주장이 그렇듯 낙수효과를 경제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하는 논문은 없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는 '낙수효과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논문을 써야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낙수효과를 입에 담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윤석열 정부는 그중 하나였다. 탄핵 후 점검해야 할 문제 4편 낙수효과다.
우리는 탄핵정국 後 점검해야 할 이슈 1편과 2편(더스쿠프 642호)에서 상법 개정과 밸류업을 다뤘다. 상법 개정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의 개편은 우리나라 증시의 밸류업과 별개로 생각하기 힘들다. 4편 낙수효과도 5편 수출·재벌 맹신론과 연결해 생각해 볼 문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낙수효과에 기댄 정책이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걸 가장 잘 보여준 나라는 안타깝게도 한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세금 감면을 부유한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집중했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 듯 사상 최대의 세수 부족이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면세·세금감면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과 2021년 각각 10.8%, 10.9%에 불과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기업의 국세감면 비중은 2022년 16.5%, 2023년 16.7%로 껑충 뛰었다. 기획재정부는 대기업의 국세감면 비중을 2024년 21.6%로 전망했지만,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9.7%에 머물렀다.
2022년 이후 개인의 세금 감면 혜택도 연소득 8400만원 이상 고소득자(평균 임금의 200%)에게 집중됐다. 근로 인구의 7%에 불과한 연소득 8400만원 이상 고소득자가 전체 세금감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32.3%, 2024년 33.2%에 이어 올해에도 33.4%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기획재정부·국회예산정책처).
낙수효과가 작동했다면 부자들과 대기업들 세금을 역대급으로 깎아주면, 세수가 오히려 늘어나고, 경제도 성장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세수입은 2023년 –56조4000억원, 2024년 –30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경제성장률은 2023년 1.4%, 2024년 2.0%로 평년보다 훨씬 낮았다. 이 이상 낙수효과의 허상을 잘 설명해 주는 경우도 드물다.
낙수효과는 기본적으로 경제이론이 아니다. 진영을 막론하고 단 한명의 경제학자도 낙수효과를 진지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기업의 무한한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조차 마찬가지로 낙수효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이란 단순히 돈을 부자에게 몰아주는 것만으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장을 선점한 기업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새로운 기업으로 자본이 이전돼야 경제가 성장한다. 그런데도 누군가 낙수효과를 주장한다면, 경제 성장이 아닌 특정 집단의 이득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일 확률이 무척 높다.
낙수효과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이를 경제용어로 쓰진 않았다. 그 개념은 1986년 미국 민주당 정치인 윌리엄 브라이언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시카고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면, 그들의 번영이 위에서 아래로 누수된다(leak through)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공화당 경제정책을 비난했다.
낙수효과(trickle down)라는 단어를 처음 쓴 건 정치 칼럼니스트 윌 로저스다. 로저스는 1932년 11월 27일자 미국 세인트피터즈버그 타임스에 게재한 칼럼에서 낙수효과를 이렇게 풍자했다. "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 내려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맨 꼭대기 부자들에게 사용됐다. 엔지니어 출신인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낙수효과는 오랜 기간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의 경제 정책을 비난하는 말로 쓰였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집권 시기에는 공급측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이 등장했다. 감세해도 실업률이 올라가지 않고, 투자는 늘어나며, 세수가 증가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이론이었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레이건의 이런 감세 경제를 두고 '주술경제(voodoo economics)'라고 비판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레이건 집권기에 경제는 성장하고, 세수도 증가했지만, 재정적자를 8년간 무려 3배나 늘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세수가 증가한 것은 레이건 집권기에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70%에 달했던 영향이 크다. 경제가 성장한 것도 재정적자를 3배나 늘린 효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공급측경제학은 낙수효과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이론이다. 공급론자들은 경기침체기에 제품가격이 하락해도 기업이 이익을 내려면 인건비를 포함한 제품 원가가 떨어져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임금은 어느 수준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고 (일정한 수준까지 내리면) 오히려 실업률이 상승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 공급측경제학은 감세를 통해서 임금 하락 효과를 내겠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인만 와튼 스쿨(금융학) 교수는 와튼 저널 기고문에서 "기업의 투자 수익에 세금을 덜 부과하면 투자가 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우리가 실제로 물어봐야 하는 것은 그 새로운 투자가 얼마나 많을 것이고, 근로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이득을 보는지"라고 주장했다. 숫자를 가져오라는 얘기다.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한 적이 없다. 경제이론이 아닌데, 구체적인 예측치가 나올 리가 없다. 하지만 낙수효과의 무의미함을 입증한 논문들은 실존하는 통계를 제시한다.
오언 지다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지난해 3월 전미경제연구소에 게재한 '과세 정책과 글로벌 투자' 논문은 "트럼프 1기인 2017년 법인세 감면 효과는 트럼프 주장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2017년 감세안을 발표하면서 "미국 근로자 임금이 평균 최대 9000달러, 최소 4000달러는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논문이 실제로 분석한 미국 근로자의 연간 임금 증가액은 약 750달러였다.
한국경제 입장에서 수출은 과연 맹신할 만한 요소일까. [사진 | 뉴시스]
데이비드 호프 런던경제연구소(LSE) 선임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부자를 위한 대규모 감세의 경제적 결과' 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8개국이 1967~2015년 시행한 대규모 감세 정책은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 실업률, 투자 등 국가 성장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소득 상위 1%의 소득 비중을 0.7%포인트 키워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기만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산업 구조상 '낙수효과'적인 착시현상조차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 것은 벌써 10년 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5년 '한국을 위한 더 나은 정책' 보고서에서 "재벌 기업집단이 주도하는 수출은 내수와 고용에 대한 낙수효과를 예전처럼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생산성 격차가 극대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중소기업연구원).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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