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오영국 핵융합연구원 원장을 만났다. 오 원장은 국내 핵융합 관련 기업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융합 상용화에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제공
"현재 미국, 중국 등 전세계는 절박한 심정으로 핵융합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핵융합 상용화'를 이뤄내지 못하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어려운 데다 인공지능(AI) 운영에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민간과 함께 에너지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핵융합 기술 개발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합니다."
20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에서 만난 오영국 핵융합연 원장은 국내 핵융합 관련 기업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융합 상용화에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융합은 원자핵이 고온, 고압 환경에서 합쳐지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반응이다. 태양이 빛을 내는 원리와 같다. 핵융합 에너지를 상용화 한 국가는 아직 없다. 핵융합 에너지는 원자력 에너지에 비해 안전하고 태양광 에너지에 비해 24시간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다.
핵융합연은 1996년 1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의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으로 시작해 사업 규모가 커지자 2005년 KBSI 부설기관을 거쳐 2020년 5월 법 개정을 통해 독립했다.
한국은 현재 핵융합 분야 선도국이다. 2007년 나이오븀틴 초전도자석으로 만들어진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케이스타(KSTAR)를 세계 최초로 독자 구축했다. 핵융합을 지구상에서 구현해 에너지 생산까지 이어가려면 1억℃가 넘는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플라즈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이온화 상태를 의미한다. KSTAR는 2018년 1억℃의 초고온 플라즈마 운전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고 2020년에는 1억℃ 운전 20초, 2021년에는 1억℃ 운전 30초 등에 성공하며 핵융합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한국은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2045년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오 원장은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구글 등 민간 투자를 중심으로 2028년 핵융합으로 전기 에너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중국은 정부가 주도해 매년 핵융합 연구에 약 2조원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탈탄소 시대, 에너지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을 발표했다. 오 원장은 정부의 전략이 고무적이라면서도 '12대 국가전략기술'에 핵융합이 포함되지 못해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 원장의 현재 고민은 국내 핵융합 기업 생태계 유지다. KSTAR 구축과 ITER 참여로 핵융합 관련 부품을 만드는 기업이 170개 가량 생겨났지만 한국의 ITER 납품이 거의 완료돼 일감이 끊기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ITER의 영향으로 ITER 다음 계획인 한국형핵융합실증로(K-DEMO) 구축도 지연되고 있다.
오 원장은 2030년대 '혁신형 소형 핵융합로 장치(가칭)' 건설을 검토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는 "일감이 사라지면 기업과 축적된 기술 노하우가 사라지고 핵융합 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혁신형 소형 핵융합로 장치 건설을 민간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원장은 "잘 키운 핵융합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 1호 핵융합 스타트업인 ‘인애이블퓨전’은 현재 400억원대 규모의 해외 사업 수주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프레지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핵융합 시장 규모는 2040년까지 약 8434억6000만달러(약 1225조463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오 원장은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핵융합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라며 "AI 운영에 필요한 막대한 전기에너지 수요가 커지면 전세계가 핵융합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국 핵융합연 원장. 핵융합연 제공
다음은 오 원장과의 일문일답.
Q. 12대 국가전략기술에 핵융합 기술이 빠졌다.
"한국 핵융합 연구는 수준이 높지만 현재 상용화를 위해 공학적으로 큰 도약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핵융합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까 우려스러웠다.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 중국, 미국, 영국 등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장으로서 경각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Q. 핵융합 상용화 속도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갖고 있나.
"한국의 차별점인 KSTAR를 적극 활용해 연구 방향, 장치 성능, 운영방법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KSTAR의 소재를 탄소에서 텅스텐으로 바꾸는 재료 실험을 하는 등 상용화를 대비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ITER가 운영하기 전까지 ITER와 비슷한 소재, 구조를 가진 KSTAR를 이용해 'ITER 시대'를 대비한 다양한 크고 작은 선행실험을 할 예정이다. ITER 완공이 지연되면서 한국이 KSTAR를 이용해 다양한 핵융합 기술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혁신형 소형 핵융합로 장치(가칭) 건설 추진도 전략 중 하나다. 여러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이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핵융합 연구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차세대 인력 양성에도 힘쓸 예정이다."
Q.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력이 부족한 점이다. 연구인력은 약 250~300명이다. 건물도 2개다. 출연연 중 매우 적은 규모다. 핵융합연과 유사한 규모의 핵융합연구를 하는 미국, 영국, 중국 등 해외에 비해 너무나 적다. 또한 핵융합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하는 젊은 연구자들을 저희가 수용할 수 없어 떠나는 상황들을 보곤 하는데 안타깝다."
Q. 출연연 원장으로서 국내 핵융합 기업 생태계 유지를 계속 강조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출연연이 만들어진 이유는 연구소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출연연을 시작으로 산업이 생기고 발전하면서 한국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본다. 그러려면 민간에 연구 분야와 관련한 생태계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출연연의 의무다."
Q. 1년 간의 임기 동안 가장 뿌듯했던 성과는? 앞으로 임기 중 이루고 싶은 성과는?
"오영국 원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성과는 없다. 핵융합은 장기적인 관점과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짧은 임기 3년 동안 무언가를 반드시 이루려고 하면 탈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국 핵융합 발전을 위해 구체적인 비전을 세우고 동료들과 공유하고, 전략이 실제로 추진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내가 현재 얻고 있는 결과도 전임 원장들이 노력해 가꾼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는 것일 수 있다."
Q. 핵융합 연구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확신하나.
"확신한다. 특히 한국은 국토 크기가 작아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에 많은 제약 조건을 갖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만으로 필요한 전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핵융합은 폭발적으로 많은 전기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핵융합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또 핵융합과 관련된 기술 수출이 한국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큰 기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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