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뇌 속 청색반점과 연결된 회로가 공감 기능에 영향
옆 생쥐에 전기자극 가하자 관찰한 생쥐 ‘얼음’

기초과학연구원이 진행한 관찰 공포 실험과 좌·우뇌 회로 억제 결과를 나타낸 그림.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세간에 ‘논리적 좌뇌·감정적 우뇌’라고 알려진 뇌 기능과 관련해 국내 연구진이 뇌의 기능적 편측화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타인의 고통을 지켜볼 때 느끼는 공포 반응, 즉 간접적 공감 상황에서 우뇌의 특정 신경회로만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 현상이 실험으로 확인된 것이다. 뇌의 공감 기능과 관련된 신경회로가 밝혀지면서 반사회성 인격장애 등 정신질환 치료 전략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신희섭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명예연구위원 연구팀이 뇌의 각성과 정서 조절에 관여하는 ‘청색반점(LC)’과 ‘전대상피질(ACC)’을 잇는 LC-ACC 회로가 간접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핵심 신경회로임을 규명했다고 31일 밝혔다. 특히, 이 회로는 좌뇌와 우뇌에 대칭으로 연결돼있으나 간접 공포 반응엔 우측 경로의 회로만 선택적으로 활성화됐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나 위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한 듯 생생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거나, 사고 장면이 담긴 뉴스 영상을 보면서 아찔함을 느끼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는 공감 능력과 사회적 행동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실제 경험한 직접 공포와 타인의 고통을 관찰하며 느끼는 간접 공포가 뇌에서 어떻게 구분돼 처리되는진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생쥐를 이용해 간접 공포 반응과 직접 공포 반응을 유도하는 실험을 설계하고, 광유전학 및 칼슘 이미징 기법을 활용해 LC-ACC 회로가 공포 반응 상황에 따라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정밀하게 비교·분석했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전기 자극을 가하고, 다른 생쥐가 그 모습을 지켜보도록 함으로써 간접 공포를 느끼도록 실험했다. 관찰자 생쥐는 다른 생쥐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공포를 느껴 동작을 멈추는 동결 반응을 보였다. 이때 우측 LC에서 ACC로 이어지는 우뇌 회로를 억제하자 동결 반응이 현저히 줄었다. 반면 좌뇌 회로를 억제했을 땐 반응에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이후 연구팀은 직접 공포 반응과 비교하기 위해 관찰자 생쥐에게 직접 전기 자극을 가하거나, 포식자의 그림자를 보여주면서 위협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그 결과 직접 자극에 공포를 느낀 생쥐는 마찬가지로 동결 반응을 보였지만, LC-ACC 회로를 억제해도 공포 반응은 유지됐다.

이는 타인의 고통을 관찰하며 나타나는 공감적 공포 반응에 우뇌의 회로가 선택적으로 관여한다는 의미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아울러 LC-ACC 회로가 직접 겪는 위협이나 이미 학습된 공포 반응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오직 타인의 고통을 관찰할 때 느끼는 공감적 공포에만 특화된 회로임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연구팀은 LC와 연결되는 특정 뇌 부위의 신경을 확인함으로써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상위 수준의 회로도 밝혀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중격선조체핵’과 ‘중심편도체’라는 두 영역이 각각 LC와 연결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포 반응에 관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중격선조체핵은 간접 공포 상황에서 LC-ACC 회로를 활성화해 공감적 반응을 조절하는데 관여했고, 중심편도체는 직접적인 공포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논문 제1 저자인 김종현 선임연구원은 "중격선조체핵과 중심편도체가 각각 공포 자극의 특성에 따라 선택적으로 회로를 조절함으로써 뇌가 다양한 정서적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신희섭 명예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는 공감의 신경회로가 뇌의 우측에 기능적으로 편재돼있으며, 공감적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데 선택적으로 관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라며 "공감의 신경생물학적 원리를 이해하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반사회성 인격장애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처럼 공감 기능에 이상이 나타나는 다양한 정신질환의 치료 전략을 마련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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