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자원연구원 등 개발한 장비 시연 공개
차체에 장착한 대형 드릴 돌려 토양 퍼내
고온 가열 뒤 물과 산소 등 추출하는 기술
2020년대 후반 월면행…우주강국과 경쟁 예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국내 과학계가 개발한 달 자원 채굴용 무인 차량. 땅을 파기 위한 드릴을 장착했다. 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지난 28일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강원 태백시 소재 옛 함태광업의 폐갱도. 높이 3미터에 이르는 입구로 들어서자 완만한 나선형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타고 내부로 10여미터 걸어 내려가자 울퉁불퉁한 바닥과 벽면, 철제 레일, 그리고 낡은 열차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한국전쟁 직후 50년간 무려 1800만t의 석탄이 생산된 대형 광산이었다. 1980년대까지 인구가 10만명대에 이르렀던 태백시를 떠받친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일하는 광부는 한명도 없다. 석탄이 에너지 소비의 핵심에서 밀리면서 1993년 광산이 문을 닫았고, 2006년부터는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 산업화 시대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이곳이 이날 생소한 이유로 또다시 북적였다. 국내 연구기관, 대학, 기업 등이 개발한 달 탐사 장비를 선보이는 종합 실증 시연이 언론과 태백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폐쇄된 갱도가 달 탐사 장비를 위한 시연장으로 변신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갱도 안은 지형이 거칠다. 지상보다 방사선량은 적다. 땅 밑으로 일정 깊이 이상 들어가면 온도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달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기에 알맞다. 폐갱도에 달 탐사 장비 시연장이 들어선 것은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실시되는 시연 장면이 공개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시연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장비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중심으로 국내 과학계가 개발한 ‘자원 채굴용 무인차량’이었다. 길이 1.5미터, 폭 0.9미터, 높이 0.7미터로 덩치가 리어카만 한 무인차량의 특징은 이름답게도 땅을 파기 위한 드릴이 장착됐다는 점이다. 고개를 숙여 차량 밑바닥을 살피자 굵기 약 5센티미터, 길이 약 1미터의 금속 드릴이 차량 중심부에 수직으로 꽂혀 있었다.

자원 채굴용 무인 탐사차량 아래에 장착된 드릴리 고속회전하고 있다. 월면을 뚫어 지하에 묻힌 자원을 캐낼 때 사용한다. 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자원 채굴용 무인차량 아래에 장착된 드릴. 높이가 약 1ｍ에 이른다. 작동 버튼을 누르면 고속회전하며 땅을 판다. 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시연 관계자가 원격 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날카로운 모터 소음을 내며 드릴이 고속 회전했다.

이 드릴은 지하 토양을 파내는 도구다. 파낸 토양은 차체에 딸린 작은 삽으로 최대 1킬로그램까지 차량에 적재할 수 있다. 자율주행 기능도 갖췄기 때문에 사람 개입 없이도 움직인다.

달에서 무인차량에 장착된 드릴을 돌려 채굴을 하는 일은 최신 탐사 기법이다. 202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이 시행하고 있다.

자원 채굴용 무인차량이 드릴을 돌릴 장소는 ‘자원 탐지 센서 탑재 무인차량’이 안내해 준다. 이날 시연에 등장한 센서 탑재 무인차량 덩치는 채굴용 무인 차량과 비슷했는데, 드릴 대신 ‘레이저 유도 파쇄 분광기’라는 감지 장치를 달고 있었다. 시연 관계자는 레이저를 켜기 전 “무인차량 앞에 계신 분들은 준비된 선글라스를 착용하십시오”라고 외쳤다.

레이저는 50종 이상의 원소를 월면에서 찾아낸다. 토양이나 암석을 일일이 파내 실험장치로 옮기지 않아도 즉시 종류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이 장치를 시연 관계자가 작동시키자 ‘탁탁탁’하는 소음이 연속적으로 생기며 센서 탑재 무인 차량 1미터 앞 지면에 레이저 불꽃이 연속해 발생했다.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장면이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외국 기업과 협력해 2020년대 후반 이 차량들을 달에 보낼 예정이다. 상업 운영 목표 시점은 2030년대다. 미국과 중국 등 우주 선진국과 비교해도 달 채굴 분야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 속도다.

달에서 다른 물질도 아닌 토양을 채굴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과 산소가 함유돼 있어서다. 달에서 사람이 늘 머무는 기지를 운영하기 위한 필수재다. 시연에서 함께 선보인 ‘달 표토층 자원 추출기’가 물과 산소를 얻기 위한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날 살펴본 자원 추출기는 높이 약 2미터 몸체에 지붕이 올라가 있는 형태였다. 몸체 양옆에는 태양 전지판이 날개처럼 붙어 있고, 가운데에는 채굴한 달 토양을 1000도 넘게 가열하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달 토양을 고온으로 구우면 물과 산소가 빠져나온다.

국내에서 달 자원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김경자 지질자원연구원 우주자원개발센터장은 “달 토양을 가열하는 공정은 ‘헬륨3’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헬륨3는 핵융합 발전의 연료로, 달에 100만t 묻혀 있다. 지구로 가져오면 지구인이 1만년 동안 쓸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 세계 각국은 달 개발의 최종 목적으로 헬륨3 채굴과 지구 운송을 상정하고 있는데, 이 경쟁에 한국도 뛰어들겠다는 뜻이다.

이평구 지질자원연구원장은 “과거 핵심 에너지원이던 석탄을 생산하던 탄광에서 미래 에너지원이 될 핵융합 기술을 준비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지질자원연구원과 태백시는 실험시설과 산업단지를 함께 갖춘 태백 우주자원 융합 실증단지를 올해부터 2029년까지 조성할 예정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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