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넷플릭스 예능 박인석 피디 도라이버:>
[신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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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석 피디는 "좋은 사람들과 재밌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말했다. |
ⓒ 아트워커 |
지난해 2월의 마지막 날, 박인석 피디는 서울 여의도 공원을 두 시간 동안 걸었다. 14년을 일했던 KBS에서 마지막 하루를 마치고 짐을 챙겨 나온 길이었다.
< 1박2일 > 시즌3, 시즌2까지 이어간 <언니들의 슬램덩크>, 김구라를 내세운 웹예능 <구라철>, 음악 늦둥이들의 프로젝트인 <악(樂)인전>, 구개념버라이어티를 내세운 <홍김동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의 동료나 선후배가 다른 제작사나 방송국으로 이직하며 퇴사한 것과 달리 그는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를 선택했다. KBS 예능국 피디 100여 명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그간의 고마움을 담아 장문의 메시지도 남겼다.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인석 피디는 당시를 돌아보며 "마냥 홀가분한 마음은 아니었다. KBS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준 곳"이라며 "아쉽고 애틋하고 또 조금은 서운하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1년여 후, 그는 <홍김동전>의 시즌2 격인 넷플릭스 예능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아래 <도라이버>)를 제작해 공개했다. 시즌제 예능을 만들었던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일일 예능 5편을 공개했는데, 그 중 일요일 예능이 <도라이버>다. 지난 2월 23일 공개된 프로그램은 당시 국내 드라마를 제치고 한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다. KBS에서 <홍김동전>이 폐지된 지 1년여 만이자, 그가 퇴사한 지 1년 만이었다.
"국내 팬이 주요 고객입니다"
"<도라이버>가 처음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다는 말도 기획 회의하다가 작가에게 전해 들었어요. 마냥 신기했죠 뭐. 설레발 치고 그런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요. 우리 프로그램이 갈 길은 멀고 앞으로가 중요하니까 개인적으로 들뜨지는 않았어요. 미리 샴페인을 터트릴 그럴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래 살아남아야 하잖아요(웃음)."
박 피디는 "<홍김동전>이 쌓은 서사가 있기에 초반에 많은 관심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면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KBS에서 폐지된 <홍김동전>은 1%대의 시청률이 무색하게 20·30대 여성을 위주로 마니아층이 형성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국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웨이브에서 시청자 수 1위를 차지하고, 팬들이 응원 메시지를 담은 '커피차'를 보내 화제가 됐다.
당시 폐지를 아쉬워했던 팬들은 여전히 <도라이버>의 중요한 시청자이기도 하다. 다만, 과거 <홍김동전>이 1회에 60여 분에 달했다면, <도라이버>는 30여 분으로 회당 분량이 짧아졌다. 그만큼 압축적으로 회당 재미를 선사해야 하기에, 제작진으로서는 여러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가 우리 프로그램을 원했던 건 과거 넷플릭스 예능에 없던 캐릭터 중심의 버라이어티이기 때문이었어요. 김숙·홍진경·장우영·조세호·주우재가 펼치는 독특한 캐릭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무맥락의 케미스트리가 매력적이라는 거죠. 기존 팬들도 이 조합을 사랑했던 거고요. 다만, 팬들 사이에서는 지금 분량이 아쉽다는 평가가 있다고 들었어요. 제작진들도 모니터링을 열심히 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기존 팬을 만족시키면서 새로운 팬을 확보하고, 웃음을 줄 수 있을지 그게 제일 큰 고민이에요. 당장은 회차에 좀 변화를 줘보려고 해요. 일단은 오는 30일에 공개될 7화는 분량을 좀 늘려봤어요. 지금까지(3월 25일 기준) 최소 12회까지는 녹화가 돼 있는데, 1박2일 동안 촬영한 적도 있고 멤버들이 여행을 떠나기도 했거든요.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균형을 잡아가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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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예능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 |
ⓒ 넷플릭스 |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 예능답게 해외에서도 반응이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박 피디는 일단 "국내 팬이 주요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넷플릭스 측에서 제게 이 프로그램을 의뢰했을 때 했던 말이 '국내 팬', 즉 내수 시장의 확보였다"면서 "일단 국내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게 첫 번째 목표다. 해외로 지평이 넓어지면 좋겠지만, 웃음 코드라는 게 각국의 특징이 있다 보니 글로벌하기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도라이버>의 공개 예정 회차가 20회까지 있어 종영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아니다"라며 "재밌으면 꾸준히 지속될 수 있다. 일정 회차까지 계약된 게 아니다. 그러니 계속 프로그램을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좋은 사람들과 재밌는 걸 하고 싶어요"
그의 말대로 <도라이버>가 주는 웃음은 무해하며 편안하다. 애청자들 사이에서 '밥 친구'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재벌 양자 오디션' 등 허무맹랑한 상황을 주고 그 안에서 여러 게임을 이어가는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얼토당토않은 말과 출연진의 리액션이 웃음을 유발한다. 출연진이 서로를 심하게 비방하는 대신, 함께 배려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장난감 말을 타고 일찍 도착하는 사람 순으로 정답을 맞힐 기회가 주어지는 게임에서, 빨리 가지 못하고 계속 뒤처지는 멤버 홍진경에게 조금 앞에서 출발할 기회를 주는 식이다. 박 피디는 이를 "좋은 사람들이 모여 게임을 즐기기에 가능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멤버십'이다.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팀'을 너무 좋아해요. 팀이 만들어내는 희망과 승리,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우리는 하나'라고 얼싸안는 순간 같은 거요. 집에서는 스포츠 프로그램만 보는데, 그 멤버십의 카타르시스에 저도 함께 희열을 느껴요. 그래서 제가 만든 프로그램들을 보면 꼭 '팀'이 있어요. 동시에 프로그램에서 담아내지 않으려는 1순위는 누군가에게 불편할 상황이나 말이에요. 그런 장면이 있다면 아무리 재밌어도 모두 덜어내요."
박 피디는 '웃음'을 설명하며 여러 번 '좋은 사람'들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제 예능 프로그램이 없어지거나 시즌이 종영되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예능 프로그램이 끝나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멤버'예요. 한창 잘 나가다가도 멤버 한 명이 이른바 '사고'를 치면 프로그램이 큰 타격을 주죠. 시청자들이 맘 편하게 웃으려고 보는 프로그램에 불편한 사람이 나올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전 우리 <도라이버> 멤버들에게 자신과 확신이 있어요. 뭐 개개인을 둘러싼 평판이나 소문은 있을 수 있는데, 적어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멤버는 없어요. 정말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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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예능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 방송화면 갈무리 |
ⓒ 넷플릭스 |
박 피디는 "좋은 사람들과 재밌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가 마음이 가는 캐릭터를 두고 '웃겨주는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각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이 모두 예능인은 아니잖아요. 배우도 있고 가수도 있고 다양하죠. 그럴 때 보통 예능인들이 웃음의 핵심을 맡아요. 자기가 조금 부족해 보여도 그런 점을 캐릭터화하기도 하고, 웃음을 주죠. 사실 많은 부분에서 비예능인을 조금 띄워주려고 하고, 멋있게 포장하면서 예능인은 좀 쉽게 대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모자란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웃음을 주려는 예능인이 너무 소중해요. 그래서 지금보다는 좀 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고요."
그는 분명 프로그램에서 큰 역할을 하지만, 중요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장면을 잘 포착하는 피디였다. 사실 박 피디가 여성만 5명이 출연하는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만들었던 것도 개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는 "한 해의 연예대상을 연출하는 걸 지원한 적이 있는데, 수상자 중에 여성이 너무 없었다. 왜 이러지 싶었다. 남초 현상이 심해보여서 여성이 활약할 장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그렇게 만든 프로그램이 <언니들의 슬램덩크>였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박 피디는 기존 프로그램들의 빈틈을 메우고,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주)스튜디오투쁠(Studio++)을 만들었다. "지금은 1인 회사라 삼겹살만 먹는데, 회사가 자리 잡히면 회식 때 한우 '투쁠'도 마음껏 먹자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박 피디는 "최근 조연출을 모집하고 있는데, 좋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다. 시청자들이 재밌게 <도라이버>를 즐길 수 있게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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