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전 세계가 산불’… 캘리포니아-일본-한국
대형산불, 더 자주 더 강렬하게 더 크게
“사실상 진화 불가능…인명 피해 최소화로 가야”
28일 경북 의성군 산림이 산불에 초토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산림청은 이날 일주일간 이어진 경북 산불의 주불 진화 완료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28일로 8일째 이어진 영남 산불이 잡혀가는 모양새다. 산림청은 이날 오후 5시 기준 진화지인 경북 의성을 비롯한 5개 시군의 모든 주불이 진화됐다고 밝혔다. 이날까지 잠정 집계한 산불영향구역은 모두 4만5157㏊으로, 서울시 면적의 75%에 이른다. 28명이 목숨을 잃고 32명이 다쳤다.
이런 대형산불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기후변화가 가뭄을 심화하고 건조한 산림에 붙은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급속히 확산해 대형산불로 번져간다. 최근 수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대형산불의 공통적 특징이다. 이런 경향은 벌써 수년째 강화되고 있다.
이달 일본에선 에히메현, 오카야마현, 미야자키현 등 서일본 지역에서 산불이 일었다.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규모였다. 올해 초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1월7일부터 31일까지 3주간 이어진 캘리포니아 산불은 1만5000헥타르(㏊)를 태우고 1만2천채의 건물을 파괴했다. 28명이 숨지고 30명이 실종됐다. 같은 시기 멕시코 북서부 바하칼리포르니아주에서도 산불이 발생해 1월22~24일 사흘 동안 1만1000㏊가 불에 탔다.
이런 대형산불은 이제 일상이 됐다. 2019~2020년 무려 1년 동안 지속한 오스트레일리아 산불은 우리나라 면적의 2.4배인 2400만㏊를 태워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돼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온대림의 21%가 사라졌고, 30억 마리의 동물이 죽거나 서식지를 잃었다. 원래 한 번에 100㏊(1㎢) 이상 면적에 확산하거나 24시간 이상 지속한 산불을 ‘대형산불’이라 하는데, 한 번에 100만㏊ 이상을 태우는 산불을 이르는 ‘초대형 산불’이란 개념이 오스트레일리아 산불로 인해 새로 생기기도 했다. 2023년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도 5개월 간 지속하면서 1800만㏊의 산림을 태워 없앴다. 오스트레일리아 산불이나 캐나다 산불 같은 초대형 산불은 사실상 한 대륙의 풍광을 바꾸는 규모다.
문제는 이런 초대형 산불들이 세계 도처에서 점점 잦아진다는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두 개의 지구관측위성 테라(Terra)와 아쿠아(Aqua)를 이용해 지난 21년간 전 세계 산불을 관측한 결과를 보면, ‘극심한 산불’은 더 자주, 더 강렬하게,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 미국 ‘국가기관간화재센터’(NIFC) 자료를 보면, 1983년부터 2023년까지 20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비교적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되지만, 불에 탄 면적은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산불이 계속 커지는 것이다. 기간도 늘어서 산불 발생 시기가 건조한 봄철에 한정되지 않고 가을까지 연장된다. 미국 서부, 멕시코, 브라질, 동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경우 이런 산불 시기가 35년 전과 비교해, 한 달 이상 길어졌다.
1983년부터 2023년까지 20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일정한 수준을 보이지만, 불에 탄 면적은 계속 증가 추세다. 산불이 계속 커지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대형산불은 무엇보다 고온건조한 기상 조건에서 발현된다. 기후변화 추세를 돌리지 못하면 대형산불이 발생하는 기본적 조건이 계속 심화하는 것이다. 나사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과학자들이 지난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30년 이상 지속하는 ‘메가 가뭄’이 현재 미국 남서부와 중부 평야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12% 정도인데,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 추세로 계속되는 경우 이번 세기 후반 80%까지 올라간다. 지난 1월 캘리포니아 산불이나 이번 영남 산불 같은 대형산불이 지금보다 훨씬 빈번해지고 오래가게 되는 것이다. 2019~2020년 오스트레일리아 산불도 발생 당시 기록이 시작된 이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가장 덥고 건조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통상 습윤한 기후였던 아열대우림에서부터 산불이 시작됐다.
이 때문에 앞으로 산불 대응체계를 아예 대형산불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부터 산불이 자주 발생해 세계에서 가장 산불 대응체계가 잘 갖춰진 곳 중 하나로 평가받는 미국 캘리포니아 상황도 살펴볼 만하다. 2018년 11월 캘리포니아에선 이번 영남 산불보다 넓은 6만㏊가 불에 타고 85명이 사망하고 1만8804채의 건물이 파괴되는 ‘캠프파이어’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후 주민들의 산불 경각심이 높아지고 즉각적 대응이 일상화됐다. 특히 지속적인 교육과 캠페인 덕에 담뱃불, 캠핑 등의 실화로 인한 산불은 줄어드는 추세다. 캘리포니아 공공전력위원회는 송전선 발화 산불을 예방할 목적으로 산불 발생 위험이 클 때 아예 일대 전력을 차단하기도 하고, ‘레드 플래그 경보’라는 이름으로 강풍과 건조한 날씨가 예상될 때 미리 주민들에게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산불의 진압보단 인명 피해 최소화에 초점을 둬 남아서 집을 지키는 ‘스테이 앤 디펜드’(Stay and Defend)가 아닌, 즉각 대피를 권고한다. 대피소와 대체 주거 시설을 미리 준비해 주민들이 대피할 곳이 없어 집에 남는 상황을 방지하고, 건물 신축 땐 불에 강한 내연성 자재를 쓴다. 곳곳에 산불 방지 구역을 조성해 불길 확산을 막는다.
강호상 서울대 교수(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는 “최근 발생하는 대형산불은 사실상 사람에 의해서 진화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헬기 진화도 초반에 동원해야 하는 것으로, 1만㏊ 이상 퍼졌을 땐 사실상 진화가 불가능하다. 앞으론 이런 초대형 산불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산불 대응 체계 자체를 대형산불에 맞게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맞춰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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