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경북 영양군의 한 마을에서 주민 2명이 산불에 타버린 집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영남권 산불 사망자 28명 중 26명(92.9%)이 60대가 넘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였다. 불에 탄 잔해 속에서 추가 희생자가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휴대전화엔 읽지 않은 재난문자가 수백 통씩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고령층 재난대피 체계를 시급히 개선해야한다”고 지적했다.
28일 경상북도 등 각 지자체가 집계한 산불 사망자는 총 28명이다. 연령대별로는 80대가 1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60대 9명, 70대 3명, 90대 2명, 50대 1명, 30대 1명 순이었다. 이번 산불로 경북에서만 24명이 숨졌다. 특히 영덕군에서만 9명이 숨졌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80대 이상의 고령자다.
지난 26일 경북 영덕군을 덮친 대형 산불로 숨진 100세 이모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부산에서 살다 “고향이 그립다”며 이달 초 영덕읍 석리로 돌아왔다가 사고를 당했다. 이씨는 평소에도 눈이 침침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재난 문자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명피해는 총 65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28명, 부상자 37명이다. 부상자가 전날보다 5명 늘었다. 차량 전소, 주택 붕괴, 매몰 등 다양한 상황에서 피해가 발생했는데, 숨진 이들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보 접근성이 낮은 노인이었다. 특히 석리, 대곡리 등 외곽 마을에 거주하던 고령자들은 휴대전화에 쌓인 재난 문자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한 구조대원은 “구조된 노인들의 휴대전화엔 수십 건의 재난 문자가 읽히지도 않은 채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부상자도 8명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는 전신 화상을 입은 중환자와 연기 흡입으로 의식장애를 겪는 사례도 포함됐다. 영덕군에 따르면 주택 1000여동이 전소되고, 차량·어선·양식장 등 재산 피해도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단전·단수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28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의 한 김치 공장이 불에 타 연기가 일고 있다. 독자 제공
이번 산불 영향 구역은 4만8000㏊다. 역대 최대로 서울 면적(6만520㏊)의 80%에 달한다. 이번 산불로 주택, 창고, 사찰, 공장 등 건물 3481곳이 피해를 봤다. 산불 지역 곳곳은 물, 전기, 통신이 끊겼다. 인근 주민 3만3000여 명이 긴급 대피했고 8000여 명은 아직 대피소에서 머무르고 있다.
28일 경북 영덕군 노물리 인근 해안가에 산불이 옮겨 붙어 까맣게 탄 어선이 정박되어 있다. 영덕군 제공
전문가들은 초고령 사회에 맞는 재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재난 문자가 막연한 경고 문자로 끝나선 안 된다”며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재난 안내 방식의 다각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산불 예방도 중요하지만 화재 진압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은 "지난 22일 하루에만 29건의 산불이 발생했다는 점은 현행 예방 체계에 커다란 허점이 드러난 것을 뜻한다"며 "드론이나 AI 등 무인 기술을 활용해 산불 감시 체제의 한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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