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정산일정 재공지 약속은 최형록 대표 사과문으로 대체
최 대표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고민…향후 계획 다음주 공개"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정산 지연 논란에 휩싸인 온라인 명품 플랫폼 발란이 28일까지 정산 일정을 재공지한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발란 대표가 입점 판매자들에게 사과하고 이번 주 안에 실행안을 공개하겠다고 밝혔으나 발란의 유동성 위기론과 판매자 불안이 증폭하는 양상이다.
발란 창업자인 최형록 대표는 28일 오전 입점사들에 보낸 공지를 통해 "정산 지연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창업자이자 대표이사로서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책임지고 해결하고자 밤낮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산 문제 해소와 서비스 정상화를 위해 저를 포함한 경영진과 주주들은 외부 자금 유입부터 구조 변화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복원 시나리오를 실현하고자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주 안에 실행안을 확정하고 다음 주에는 여러분(판매자)을 직접 찾아뵙고 그간의 경위와 향후 계획에 대해 투명하게 설명해 드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발란은 지난 24일 일부 입점사에 대한 정산을 연기한다고 공지하면서 그 이유로 정산금 과다 지급 등의 오류가 발생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28일까지는 입점사별 확정된 정산액과 지급 일정을 공유하겠다고 언급했다.
발란 [발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약속한 정산 일정 재공지 대신 최 대표의 사과문이 나오면서 플랫폼 신뢰도에 금이 가게 됐다.
당장 판매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입점사들은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발란의 월평균 거래액은 300억원 안팎이며, 전체 입점사 수는 1천300여개다.
정산 주기는 일주일, 15일, 한 달 등 세 가지다. 입점사 대부분은 일주일이나 15일 주기로 정산받고 있으나 한 달 주기로 정산받는 일부 입점사는 2월 판매분까지 포함돼 있다. 입점사별 미정산액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억원까지 광범위하다.
이 가운데는 지난해 티몬·위메프로 피해를 본 입점사도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정산 주기가 짧지만, 명품 특성상 단가가 커 미정산 규모도 작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 입점 판매자는 "정산받지 못한 금액이 9천300만원 정도 되는데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입점사는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최근 상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반품을 요청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발란에서 발을 빼는 입점사 수도 늘어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정산 지연이 발생하자 정산 오류로 해명하고서 후속 정산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과정이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초기와 흡사하다"며 "티메프 사태의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은 입점 판매자들로선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 2015년에 설립된 발란은 머스트잇, 트렌비와 함께 온라인 명품 플랫폼 1세대 업체로 꼽힌다.
오프라인 매장 대비 저렴한 가격과 박리다매의 '저마진' 구조를 내세워 코로나19 전후로 비교적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당시 배우 김혜수를 모델로 발탁해 인지도도 끌어올렸다.
하지만 2023년 엔데믹(endemic·풍토병화된 전염병) 이후 고물가·고금리 등에 따른 내수 침체와 온라인 플랫폼 간 경쟁 격화로 매출과 수익성이 동시에 악화하며 급속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22∼2023년 3천억원을 오르내리던 기업가치도 최근에는 10분의 1인 3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최근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형태로 K-뷰티 유통기업인 실리콘투로부터 150억원의 투자 계약을 맺을 때 매겨진 기업가치다.
발란은 지난달 말 실리콘투로부터 1차로 75억원을 긴급 수혈받았고 나머지 75억원은 오는 11월 이후 투자받기로 했다.
다만 2차 투자는 2개월 연속 영업이익 흑자 달성 등의 조건을 달성해야 받을 수 있다. 2차 투자까지 마무리된 뒤에는 최 대표가 경영권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콜옵션도 포함됐다.
발란의 지분율을 보면 최 대표가 37.63%를 보유했고 네이버가 7.98%로 2대 주주다. 나머지 지분은 대부분 사모펀드가 갖고 있다.
다만, 실리콘투의 2차 투자가 실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발란은 설립 이후 한 번도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내지 못했다. 최근 수년간은 매출 부진으로 현금 흐름마저 나빠지자 할인쿠폰을 남발했고 이는 다시 수익성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에 빠졌다.
2020∼2023년 4년간의 누적 영업손실액은 724억원에 달한다.
손실 구조가 지속하면서 2023년 말 기준 결손금도 785억원까지 불어났다. 이는 같은 해 매출액(392억원)의 2배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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