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선고로 맞붙은 ‘김복형 vs 정계선’…‘기각·각하’ 3인방 尹 선고 영향 가능성
“평결 진행 어려운 사고 수준의 상황”…재판관 2명 퇴임하는 4월 중순 마지노선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헌법재판소의 침묵은 끝내 깨지지 않았다. '파면'과 '복귀' 갈림길에 선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은 3월 마지막 주까지 봉인됐다. 4월로 향해 가는 헌재의 시간표 앞에는 '임계점'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졌다. 헌재가 역대 최장 심리 기록 경신 속에 표류를 거듭하면서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경찰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3월 선고 불발…"심각한 상황 생겼을 것"
"대통령 탄핵 사건이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더 중요하다. 무조건 앞에 있는 사건부터 처리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시급한 사건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재판관 회의가 결정했다. 탄핵심판은 헌법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제일 큰 목표다."
2024년 12월27일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첫 변론준비기일. 주심을 맡은 정형식 재판관은 대통령 탄핵심판이 갖는 중대성을 강조하며 최우선 심리 진행과 선고 방침을 명확히 했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의 '대통령직 유지 여부'를 헌법 질서 수호 관점에서 판단하겠다는 헌재의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석 달이 넘게 흐른 2025년 3월28일 현재까지 헌재는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정중동이다.
3월28일 현재까지 기일 공지가 나오지 않았고, 4월2일 보궐선거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3월31일에도 윤 대통령에 대한 선고는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고 지연'이 거듭되며 뚜렷해진 것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8대0' 재판관 전원일치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헌재의 굳건했던 최우선·신속 심리 원칙이 깨지면서 우려는 더 커진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는 표류 중인 헌재의 상황을 암시하는 가늠자가 됐다. 국회는 △비상계엄 내란행위 공모·묵인·방조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김건희 여사·채 해병 특검법 거부 △내란 상설특검 임명 회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공동 국정운영체제 구상 등을 이유로 지난해 12월27일 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3월24일 한 대행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이목이 쏠렸던 비상계엄 위헌·위법성에 대한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 기각(5명)·인용(1명)·각하(2명)를 축으로 총 네 갈래로 쪼개진 판단이 나왔고, 김복형 재판관과 정계선 재판관은 대척점에서 정반대 논리를 펼쳤다.
기각 의견을 낸 김복형 재판관은 한 대행의 소추 사유 5개에 대해 모두 위헌·위법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김 재판관은 마은혁 헌법 재판관 후보자 불임명과 관련해 "재판관 임명은 엄연히 대통령 권한인 점, 헌법에 대통령의 재판관 임명권한의 행사기한을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점" 등을 근거로 대통령 고유권한을 비교적 넓게 인정했다. 반대로 정계선 재판관은 한 대행의 내란 특검 후보자 추천 지연과 재판관 임명 거부 행위를 헌정 질서 수호에 위기를 초래한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로 규정하고 '나홀로 인용' 의견을 개진했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정족수를 대통령 기준인 200석(3분의 2)으로 해석해 국무위원과 동일한 기준(151석·과반 이상)을 적용한 국회의 의결 절차에 흠결이 있다며 본안 판단 없이 각하했다.
법조계에서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복형·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의 이 같은 판단이 윤 대통령 사건 선고 지연의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 것으로 본다. 내란죄 철회 논란이 불거진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부터 과정 전반에 걸친 절차적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수사기록과 물증·진술에 기반한 쟁점별 사실관계 확정까지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재판관은 재판관 의견이 '4대4'로 갈렸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사건에서도 기각을 주장했다. 김 재판관과 정형식·조한창 재판관 3인은 공통적으로 국회의 마 후보자 미임명 권한쟁의심판에서 국회 의결 과정을 지적하는 별개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마 후보자 미임명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김정환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는 "이 정도 지연이면 헌재 내부에 사고 수준의 심각한 상황이 생겼다는 의미"라며 "평의에서 재판관 3명이 기각 또는 각하 결정 뉘앙스를 풍겼다면 다음 단계인 평결 과정으로의 진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법조인 출신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평의가 비공개라고는 하지만 정계선·김복형 재판관이 세게 충돌하고 있다는 세간의 '설'이 정확히 들어맞았다"며 "의견 조율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4월 초·중순까지도 선고가 안 나오는 최악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공전하는 헌재, 재판관 간 '내전'?
헌재가 '5(인용)대 3(기각·각하)' 구도에 갇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의 운명은 재판관 6인의 인용 판단에 달렸다. 인용 의견이 6명 미만으로 확정되면 윤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한다. 이렇게 되면 마 후보자를 끝내 임명하지 않은 한덕수·최상목 두 권한대행의 결정, 권한대행의 재판관 미임명을 위헌·위법 행위로 결정 내리고도 탄핵을 기각한 헌재까지 동반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5대3 구도는 재판관 1인의 합류 여부에 따라 정반대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이 아닌 분열과 혼란을 더 키우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헌재가 외부의 전망과 달리 '6대2' '7대1' 구도에서 만장일치로 가기 위해 릴레이 평의를 진행하며 입장 차를 좁히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유효하다. 전례 없는 계엄 상황에 대한 판단과 재판관 미임명, 줄탄핵에 따른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헌재의 '결단' 시점을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의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재판관 5인 인용, 3인 기각' 시나리오에 대해 "단언컨대 절대 헌재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기존에도 8인 체제에서 5대3으로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기각을 하지 않은 이유가 1명이 합류하면 6대3 인용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더구나 (마은혁 미임명은) 의도적·위헌적 임명 거부인데 그로 인한 결론의 기각을 헌재가 내리면 감당할 수 없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헌재의 선고 지연 이유를 "50%는 물리적인 한계, 30%는 내란죄 (판단) 때문"으로 예상했다.
이재명보다 늦은 尹 선고…헌재 신뢰도 7%p↓
'신속 선고'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면서 헌재가 정파적 흐름을 살피며 '정치적 판단'을 내리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결과를 지켜본 후 선고기일을 지정하기 위해 3월말까지 '의도된 지연'을 했다는 지적도 재판관 8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거듭된 선고 불발은 대한민국 헌법 수호의 최전선에서 쌓아온 헌재의 신뢰도와 권위에도 균열을 만들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3월 선고'가 끝내 불발되면 헌재에 주어진 남은 시간은 평일 기준 13일이다. 4월18일 문형배 소장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은 퇴임한다. 4월2일 부산교육감과 기초단체장 5곳 등 23곳의 재보궐선거가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헌재가 4월1~2일 선고를 진행할 가능성은 낮다. 4월3~4일 또는 한 주를 또 넘겨 7~11일 중 선고가 나올 수 있다.
헌재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 항소심은 탄핵 사건과 완전 별개의 사건으로 (윤 대통령 선고기일 지정에 있어)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며 "재판부가 선고기일을 정하는 데 있어 보궐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재판관의 퇴임일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면 헌재는 '6인 재판관 체제'로 회귀하게 된다. 윤 대통령 선고는 물론 '7인 심리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사실상 식물 헌재로 전락할 수 있다. 헌재가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직무정지 상태에서 낸 '재판관 7인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한 헌재법 23조1항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놓은 상태여서 6인 심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법적 논란과 쟁점에 불이 붙을 수 있다.
3월18일 '마 후보자가 임명될 때까지 임시로 재판관 지위를 부여해 달라'는 취지의 임시지위 가처분 신청서가 헌재에 제출됐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야권은 직무에 복귀한 한 대행이 마 후보자를 즉각 임명하지 않을 경우 2차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늦어지면서 헌재에 대한 신뢰도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3월27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3월24~26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3%로 전주보다 7%포인트 하락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포인트 상승한 40%로, 이는 최근 9주 동안 진행한 조사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탄핵심판 지연 영향으로 헌재를 향한 '불신' 여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NBS 조사는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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