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박사방 사건으로 수면 위에 올랐던 디지털 성범죄의 참상은 끝나지 않았다. 기술·플랫폼과 결합하며 더 광범위하고, 악랄해졌을 뿐이다. 주요 가해자 몇 명을 처벌하는 정도로 이 문제를 묻어두면서 우리 사회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난해 불거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들이 그 사례다. 기술을 앞세운 이 신종 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피해자의 연령대는 더 낮아지고, 암약하는 '공범들'의 규모는 불어나고 있다. 뉴스타파와 추적단 불꽃이 끊임없이 반복·확대되는 디지털 성범죄의 근원, 익명의 '공범들'을 추적한다.
① 텔레그램 '겹지방'에 잠입하다
② 학교로 간 딥페이크, 가해자가 돌아왔다
③ 누구나 피해자도, 공범도 될 수 있다 (가제)
딥페이크 성범죄의 문턱은 낮다. 누구나 URL 링크 주소 하나로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접하고, 만들고, 유포할 수 있다. 10대 미성년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뉴스타파는 10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주요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했다. 최근 5년간 게시글을 확인해 본 결과, 트위터와 DC인사이트에 각각 309건, 166건의 불법 정보가 확인됐다. 딥페이크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가족이나 지인들로 합성해보라’며 권유하고 텔레그램 봇이 탑재된 방으로 연결된 링크가 삽입된 게시글이었다.
하지만 DC인사이드가 2023년 한 해 딥페이크 성착취물 삭제조치는 겨우 4건에 불과했다. 해당 사이트들은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 5항에 의거해 삭제 조치 의무가 있는 사업장이다. 10대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일반 사이트에 버젓이 불법 성범죄의 도구가 전시되어 있는 셈이다.
지난해 경찰청에 접수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은 총 1,094건, 이 중 573명의 피의자가 검거됐다. 검거된 피의자들의 연령대를 분석해 보니, 10대(463명)의 비중이 80%가 넘었다. 하지만 검거된 10대 피의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처벌 없이 그대로 훈방됐다. 범행 당시의 나이가 만 14세가 되지 않는 소년범, 즉 촉법소년이었기 때문이다.
△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연령분석
딥페이크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10대 미성년자들의 일상 공간인 학교가 흔들리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한번 퍼지기 시작한 성범죄물은 학생 네트워크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지난해(2024년 1월~11월) 교육부가 집계한 학교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신고 건수는 561건, 누적 피해자는 948명에 이른다.
△ 학교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피해 현황
하지만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에 대한 교육현장의 인식 변화와 대응은 더디다. 범행에 대한 조사와 증거 확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가해자의 범행을 '그 나이 때 당연한 성적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는 일이 잦다. 심지어 제도적 한계로 인해 사건에 대한 처분이 이뤄진 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한 반에서 생활하는 일도 있다. 디지털 성범죄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인권은 정작 뒷전에 놓인다.
뉴스타파는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심층 취재했다. 또 학교 딥페이크 성범죄의 또 다른 타깃이 되고 있는 여성 교사들과 만나 인터뷰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확산으로 흔들리는 교육 현장을 바로 세우기 위해 어떤 제도와 인식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했다.
10대들은 어떻게 딥페이크 가해자가 되었나
타 학교 친구가 어떤 링크를 주면서 “한 번 해봐 재밌다” 하였습니다. 들어가 보니 채팅방으로 계속 클릭하라는 대로 클릭했는데, 모두 외국어여서… 번역 앱(파파고)까지 사용하며 따라갔더니 딥페이크 사진을 만들어주는 텔레그램 봇이었습니다.
- 가해자 A 피의자 신문조서(2024.5.21)
지난해 4월, 한 중학교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총 14명, 15세 2학년 학생이 11명, 16세 3학년 학생이 한 명, 그리고 교사 2명이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은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불안 증세나 대인 기피 증상을 보인다. 상담에서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 피해자도 있다. 부모들은 이름조차 생소한 딥페이크 성범죄로부터 자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 OO중학교 학교폭력심의위 회의록 중
사건은 타 학교 학생이 가해 학생 A에게 한 URL 주소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A는 해당 URL 주소로 들어갔고, 딥페이크 합성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텔레그램 봇을 처음 접했다. 텔레그램 봇은 텔레그램 메신저 상에서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반응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말한다. 이 학생은 이 텔레그램 봇을 이용해 동급생의 얼굴과 나신이 합성된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만들었다.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30초에 불과했다. A는 하굣길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해당 성범죄물을 돌려봤다.
이후 학교에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급속히 확산됐다. 이후 경찰 조사에 따르면, 도서관과 친구 집, 놀이터 등 10대들의 일상적인 공간이 범행 현장이 됐다. 가해 학생들이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은 동급생과 학교 선생님이었다.
이들의 SNS에 올라온 사진이나 졸업 앨범 사진을 이용해 합성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가해 학생 개인끼리 메신저를 이용해 주고받았지만, 나중에는 더 공개적으로 성범죄물 확산이 이뤄졌다. 아예 20~30명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에 딥페이크물이 올라오는 일도 있었다.
텔레그램 봇이 무료로 딥페이크물을 만들어주는 것은 처음 몇 번뿐이다. 더 많은 작업을 원할 때는 조건이 붙는다. 비용을 내거나, 다른 사람을 새로 대화방에 초대해야 한다. 가해 학생들은 대화방에 다른 학생들을 끌어들였다. 텔레그램 봇을 이용한 학생의 수는 최소 7명으로 늘어났다.
△ 취재진이 직접 찾은 딥페이크 텔레그램 봇
학교가 교내에 딥페이크 성범죄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텔레그램 대화방 URL 주소를 담은 첫 번째 메시지가 전송되고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조사와 증거 확보가 이뤄지기까지는 닷새의 시간이 더 걸렸다. 학교장와 교육청에 대한 보고가 순차로 이뤄졌고, 주말이 끼어있었다. 그 사이 학생들의 휴대전화·메신저에서는 범행 흔적은 삭제되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때 삭제된 증거들로 인해 추가적인 범행과 피해 사실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했지만 일부 내용은 끝내 복원되지 않았다. 학교 측은 학교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인 증거 확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담당 교직원은 가해 학생들에게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했지만 일부 학생은 거부했다.
이 사건에 대한 교육당국의 조사는 해당 학교에 한정됐다. 처음 A에게 텔레그램 대화방의 URL 주소를 보낸 사람은 타 학교 학생이지만, 그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URL 주소를 발송한 학생이 재학 중인 학교에서도 자체 조사를 했지만, 범행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정도로 조사를 마무리했다. 가해 학생 A의 부모는 링크를 전송한 타 학교 학생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데, 정작 링크를 받았을 뿐인 자신의 아이만 처벌을 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OO중학교 학교폭력심의위 회의록 중
이후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7명에 대한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열렸다. 2명은 강제전학, 나머지 5명은 출석정지 3~5일 및 학교 봉사 처분을 받았다. 한 위원은 “학생한테 부탁하고 싶은 건 뭐냐 하면 사람이 커나가면서 호기심으로 인해서 위축되고 그러는데 너무 큰 자책감을 갖지 마시고…” 라며 가해 학생을 두둔하기도 했다.
문제는 닷새 남짓의 정학이 끝난 후 일부 가해 학생이 다시 교실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에도 한 반에서 그들과 생활해야 했다.
제도 때문이었다. 관할 교육청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학급 교체가 아닌 정학 처분을 했기 때문에 분리 조치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학교장이 재량으로 학급교체를 수행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학급교체가 하나의 처분이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근거 없는 처벌을 유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이채의 이은심 변호사는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교육받으며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성범죄의 경우, 현 심의조치의 관행과 규정과는 다른 기준과 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성범죄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를 위한 학급교체 처분이 기존 학폭심의위 처분 기준보다 좀 더 용이해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피해자 부모들은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학교는 6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학폭위를 열었다. 정학 처분을 받은 5명 중 3명에 대해 학급교체 처분이 내려졌다.
성폭력 피해교사들이 말하는 ‘학교’
학교 딥페이크 성범죄의 피해자는 10대만이 아니다. 이 학교 딥페이크 사건 피해자 중에는 교사 2명도 있다. 뉴스타파와 추적단불꽃은 교육 현장 일선에서 학교 내 성폭력 문제를 마주하는 전현직 여성 교사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학교 딥페이크 사태 이전부터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학교가 사실상 교내 성범죄 문제를 묵인하고 축소하는 관행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전직 교사 ‘가넷’(가명) 씨는 2022년 가르치던 제자에게 성희롱 피해를 입은 후 이듬해 의원면직했다. 중고등학교 7년 차 교사였던 그는 2022년 12월 교원평가를 열람하는 중 성희롱 문구를 발견했다. 공황 증상이 찾아왔다.
△ 전직 고등학교 교사 가넷(가명) 씨
학생들의 성희롱 문제는 이미 일상이었다. 가넷 씨는 동료 교사들과 힘을 모아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 했다. 하지만 학교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일부 부장급 교사는 '가해 학생을 토끼몰이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교육청에 문제 제기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원 평가는 ‘익명성’ 보장이 원칙이라는 이유였다. 오히려 이듬해 교육청 감사실은 그를 호출했다. 관계자의 말은 협박에 가까웠다. SNS 등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공무원 품위유지 위반으로 징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가넷 씨는 교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저도 교직에 7년 정도 있었던, 여러 차례 학생들이 가해자인 성폭력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학교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교사들이 나서서 이렇게 취재하시는 것에 응해 인터뷰하고 목소리 내고 크게 사건을 공론화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일 거예요.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학교 안에서도 학교 밖으로도 목소리를 내려면 직을 걸어야 합니다. 내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감수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어요.
- 가넷(가명) 전직 고등학교 교사
현직 교사 반디 씨는 지난 2022년 11월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겪었다. 성인이 된 제자로부터 SNS 상에 반디 씨의 개인정보가 게시되었고, 언어 성폭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상황을 직접 확인해 보니, 본인 얼굴 사진 옆에 여성의 나체 사진이 나란히 올라와 있었다. 사진 옆에는 ‘걸레 교사’, ‘도촬’(불법촬영)이라는 해시태그가 걸려 있었다. 해당 게시물의 ‘좋아요’는 1,000개 이상이었다. 이른바 '지인 능욕'이었다.
반디 씨는 처음에 오히려 자책했다고 말했다. 교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 생각했다. 곁에서 응원하는 동료 교사와 가족 덕에 교단에 계속 설 수 있었다. 경찰서를 찾았지만 신고조차 쉽지 않았다. 담당 경찰은 "온라인에 게시된 불법 촬영 사진 속 치마가 본인 게 맞는지 아냐, 치마가 본인 것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범죄 신고 대신 명예 훼손죄로 신고하려 했지만 이번엔 "가해자를 특정해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반디 씨 사건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반디 씨가 직접 글을 썼고, 방송사가 그를 인터뷰했다. 그제야 경찰 수사가 제대로 시작되었다. 반디 씨의 몸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다. 학생들과 마주치는 게 두려워 밥을 먹으러 가지 못했고, 교단에 설 때 안정제를 꼭 먹어야 했다.
처음 고소장을 제출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정말 사람이 말라간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도 약을 먹으며 진정을 시켜 봤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그러더라고요. 그냥 사이버 세상을 나와 동떨어진 세계라 생각하면서 잊으라고요. 처음 그 말을 들을 땐 답답하고 분한 마음에 그럴 수 없다 생각했지만 6개월가량 지난 지금은 제가 살기 위해서 무의식 중에 그 일을 멀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반디(가명) 씨가 추가 고소장을 제출하며 경찰에게 보낸 답변
1년에 걸쳐 경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반디 씨는 “수사 진전이 안 되는 상황에서 계속 붙들고 있어달라고 하기는 경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 중단에 동의하는 서류를 제출했다.
반디 씨는 본인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나날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학교를 옮겼다. 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연락에 눈물이 났지만, 만날 수 없었다. 반디 씨는 잊힘을 택했다고 말했다. 누군지 모르는 가해 학생들의 기억에서 제발 지워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반디 씨는 말했다.
반디 씨는 학교 딥페이크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계 전반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학교가 딥페이크 성폭력 관련 ‘예방’ 교육만 한다며 정작 피해를 입은 이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교육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학교 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숨는 게 아니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연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반디 씨는 말했다.
뉴스타파와 추적단불꽃은 3편에서 2년 가까이 끊임없는 유포의 공포에 시달리는 피해자의 이야기와 딥페이크 성범죄의 제도적 해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3편에서 계속)
뉴스타파 김새봄 springns@newstapa.org
뉴스타파 변지민 pluto@newstapa.org
뉴스타파 추적단불꽃 / 원은지 대표 56fl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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