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남시현 기자] 지난 3월 20일, 소프트뱅크 그룹이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 암페어 컴퓨팅(Ampere Computing)의 인수를 공식 발표했다. Arm, 그래프코어에 이은 세 번째 반도체 전문 기업 인수다. 인수 방식은 소프트뱅크가 이번 거래를 목적으로 설립한 실버밴즈 6(Silver Bands 6)를 통해 암페어 컴퓨팅 지분을 보유한 칼라일 파트너스, 오라클로부터 모든 지분을 65억 달러(약 9조 5000억 원)에 사들이는 방식이다. 거래는 2025년 중 완료될 예정이고, 암페어 컴퓨팅은 독립된 자회사로 Arm 반도체 설계 사업을 이어나간다.
소프트뱅크가 Arm, 그래프코어에 이어 암페어 컴퓨팅도 인수한다 / 출처=IT동아
암페어 컴퓨팅은 2017년 르네 제임스가 설립한 Arm 기반 반도체 설계기업으로, Arm 아키텍처로 자체 개발한 '암페어 알트라', 후속 제품인 '암페어 원’ 멀티코어 프로세서를 만든다. 암페어 원은 TSMC 5나노미터 공정으로 제조되며 최소 96코어인 암페어 원 A96-37X부터 최대 192코어 구성의 A192-32X까지 8개 제품군으로 구성된다. 올해 안에는 TSMC 3nm 기반 256코어 구성의 암페어 원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며, 추후 암페어 원 오로라를 통해 512코어까지 확장한다.
지난 2월 20일 공개된 암페어 컴퓨팅의 새로운 프로세서, 암페어 원 오로라 / 출처=암페어 컴퓨팅
암페어 프로세서는 인텔, AMD의 x86 서버용 프로세서 대비 전력 효율적이며, 서버 면적당 코어 밀도가 높아 데이터 서버 구축 비용 등에도 이점이 있다. 특히나 AWS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모두 자체 설계한 서버용 반도체를 인스턴스로 제공하는데, 이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Arm 기반 서버용 프로세서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점으로 꼽힌다. 현재 오라클 서비스의 95%는 암페어 컴퓨팅의 인프라로 제공된다.
Arm의 주력 사업은 반도체 자산을 반도체 설계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다. / 출처=Arm
소프트뱅크가 암페어를 인수한 이유는 Arm과의 시너지 덕분이다. Arm은 반도체 설계 자산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쉽게 말해 설계도만 제공한다. 애플이나 삼성전자, 퀄컴 등의 기업들은 이 설계도를 가지고 자체 반도체를 설계해 제품을 판매한다. 고객과 직접 경쟁하지 않는 것이 Arm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번 암페어 컴퓨팅 인수로 Arm 아키텍처 설계 능력을 통해 제품 설계부터 완제품까지 구축이 가능하며, 이를 토대로 기존 x86 서버 프로세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다.
실제로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Arm이 올해 여름 서버용 자체 칩을 출시할 계획이며, 메타가 첫 고객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Arm은 이미 라이선스 수수료를 꾸준히 인상해 왔고, 제조 칩당 로열티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여기에 서버용 칩까지 제조해 Arm 기반 서버의 업계 표준 제품이라는 입지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표준 칩 이외에도 암페어 컴퓨팅이 독립적으로 제품을 제공하는 방식도 유지될 것이다.
Arm 프로세서는 그 자체로 활용도 많이 하나, GPU 등과 조합하는 이기종 컴퓨팅으로도 널리 쓰인다 / 출처=Arm
시장에서는 소프트뱅크가 Arm의 반도체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한 암페어 CPU와 그래프코어의 지능처리장치(IPU)를 합친 이기종 컴퓨팅 SoC(시스템 온 칩)의 등장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미 Arm 기반 그레이스 CPU와 엔비디아 GPU를 합친 제품이 시장 가능성은 증명했다. IPU는 신경망 등 AI 기반 데이터 흐름을 처리하는데 최적화된 반도체지만, 특정 작업 등에 한정된 처리 능력과 소프트웨어 최적화 등에서 한계가 있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소프트뱅크가 Arm 기반 생태계로 이를 포용한다면 충분히 상업성을 가질 수 있다.
프리퍼드 네트웍스가 2026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MN-코어 L1000 / 출처=프리퍼드 네트웍스
소프트뱅크가 AI 반도체 기업을 사들이는 배경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AI 컴퓨팅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충당하려 하나, 정작 차세대 AI 반도체를 준비하는 기업은 별로 없다. 후지쯔나 NEC의 경우 GPU 등 전통적인 인프라에 가까운 사업자고, 르네사스는 자동차용 자율주행 솔루션을 취급한다. AI 반도체 전문 기업은 프리퍼드 네트웍스 한 곳뿐이다. 프리퍼드 네트웍스만으로는 일본의 AI 생태계와 다양성을 충족할 수 없어, 막대한 자금력으로 외부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소프트뱅크 월드 2023 당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Arm이 초인공지능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손정의 회장과 르네 하스 Arm CEO / 출처=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그리는 그림은 지난해 6월 소프트뱅크 정기 주주총회에서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손정의 회장은 “10년 안에 인간 지능의 1만 배에 달하는 초인공지능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이를 실현할 열쇠로 Arm을 꼽았다. 손정의 회장은 “Arm 라이선스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오라클에서 사용되며, Arm이 모든 구상의 중심에 있다. 이를 활용해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1월에 손정의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샘 올트먼 오픈AI CEO, 래리 앨리슨 오라클 회장과 함께 AI 인프라 및 개발 합작사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알리고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6조 75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최대 5000억 달러(약 731조 8500억 원)까지 투자할 계획이다. 스타게이트는 오픈AI를 위한 새로운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재산업화는 물론 동맹국의 국가 안보를 보호하는 전략적 역량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손정의 회장이 지난 2월 오픈AI와의 합작 법인 발표에서 오픈AI 기반 AI 에이전트, 크리스털 인텔리전스를 소개하고 있다 / 출처=소프트뱅크
아울러 2월에는 오픈AI와 소프트뱅크 그룹이 새로운 고급 엔터프라이즈용 AI를 개발하기 위한 ‘크리스털 인텔리전스’ 파트너십을 맺었고, 각자 50%씩 출자해 합작 법인인 ‘SB 오픈AI 재팬’을 설립했다. 크리스털 인텔리전스는 독립적으로 작업을 실행할 수 있는 오픈AI의 새로운 산업용 모델로, 모든 회사의 요구 사항에 맞게 학습하고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Arm은 크리스털 인텔리전스의 모델 구축에 필요한 인프라와 컴퓨팅 플랫폼 제공에 나선다.
Arm이 인텔과 AMD의 벽을 넘어야만 더 많은 고객과 수요처를 확보하고, 초인공지능 시대의 열쇠가 될 수 있다 / 출처=인텔, AMD
성공 가능성은 반반이다. Arm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커스텀 칩이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했고,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기존 x86 서버 시장의 점유율을 가져와야 한다. 하지만 역으로 인텔이 288코어 구성의 저전력 서버용 프로세서인 클리어워터 포레스트를 공개하는가 하면, AMD도 192코어 384스레드 프로세서를 준비 중이다. 기존 시장의 강자들과 경쟁하면서 현재 인수한 기업들과의 시너지와 통합하고, 공급을 통한 시장 가능성까지 마련해야 한다.
오픈AI와 손을 잡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모두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 10년 뒤 초인공지능 시대를 내다보는 손정의 회장의 시도가 결국 맞아떨어질지는 시장과 시간에 달렸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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