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서 본 李 2심 법리와 문제점
“피고인에 유리한 해석은 당연” 주장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자, 법조계에서는 “무죄 심증을 갖고 결론에 법리를 끼워맞췄다” “거짓말의 배경과 맥락은 무시한 채 발언을 조각조각 내 무죄로 몰아갔다” “제2의 권순일 판결을 보는 것 같다” 등의 비판이 나왔다. 반면 “유무죄 판단이 모두 가능한 사건인 만큼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는 반론도 있다.
앞서 1심은 이 대표가 고(故) 김문기씨 사망 직후 “김씨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한 발언,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특혜 의혹에 대해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용도 변경을 했다”는 발언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이 두 발언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고(B)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이 2015년 1월 호주·뉴질랜드 출장 당시 한 공원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서울고법은 26일 “해외 출장 때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이 대표 발언은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 지 않는다며 1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의힘
◇“李 발언, 잘게 쪼개 무죄로… 납득 안 돼”
김씨는 대장동 개발 사업의 핵심 실무자였다. 대선 과정에서 대장동 비리 의혹이 커지면서 김씨와 함께 2015년 1월 호주·뉴질랜드 출장을 갔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마치 제가 (김씨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는데, 단체 사진 일부를 떼어 낸 것이다. 조작한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래픽=박상훈
1심 법원은 이 발언에 대해 이 대표가 대장동 비리 의혹과의 연관성을 끊어내기 위해 “김씨와 골프를 친 적 없다”고 거짓말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1심은 “일반 유권자들은 ‘조작됐다’는 말을 들으면 ‘이 대표가 김씨와 골프 친 적이 없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 측은 “사진이 찍힌 날은 골프를 안 쳤다”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2심은 이 대표의 전체 발언을 세 가지로 쪼갠 뒤 그중 골프 관련 발언은 “성남시장 시절 김씨를 몰랐다”는 앞선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에 불과할 뿐, 독자적 의미를 갖는 발언이 아니라고 했다. 또 국민의힘이 10명 단체 사진을 4명으로 확대한 것을 조작으로 볼 여지가 있고, 사진 찍힌 날 골프를 친 것도 아니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
2021년 12월 이 사진을 처음 공개한 이기인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자세히 보여주려고 확대한 것을 어떻게 조작이라고 하느냐”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무죄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논리를 짜 맞춘 것 같다”고 했다.
◇“백현동 발언도 무죄? 국감서 거짓말해도 되나”
이 대표의 백현동 용도변경 관련 국정감사 증언이 전부 무죄로 뒤집힌 데 대해선 비판이 거세다. 이 대표는 2021년 10월 국감에서 백현동 부지를 한꺼번에 4단계나 상향 조정해 과거 이 대표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김인섭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국토교통부의 용도 변경 요청을 받고 불가피하게 용도를 변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국토부 공무원들이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도 했다. 김인섭씨는 용도 변경 로비 대가로 민간업자에게 70여 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형이 확정된 상태다.
1심은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은 성남시의 자체 판단이고, 국토부 공무원이 성남시를 협박한 적도 없다”며 이 대표 발언은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된다고 봤다.
그런데 2심은 이 대표 발언이 ‘사실 공표’가 아니라 ‘의견 표명’에 해당해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불가피하게”라는 말은 상대적·주관적 개념이고, “협박받았다”는 말도 과장된 표현일 뿐 허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재판부는 2020년 권순일 전 대법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대표 허위사실공표 사건 판례를 다시 인용했다. 그러면서 “어느 범주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표현인 경우 원칙적으로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즉 ‘협박’ 발언도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이라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TV 토론회에 이어 국감장도 거짓말할 수 있는 공간이 돼버릴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검찰 간부는 “국감장에서 어떤 거짓말을 하든 ‘의견 표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했고, 법조계 한 인사는 “‘협박받았다’를 의견 표명으로 볼 경우 형법상 협박죄로 처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판결”이란 지적도 나왔다. 1심에선 국토부와 성남시 전현직 공무원 22명이 증인으로 나와 모두 “협박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2심 증인 2명도 “협박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원심 판단을 180도 뒤집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토부 협박’ 발언은 협박의 존부만 따지면 되는 일인데 왜 저런 판단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무죄로 판단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문제가 된 이 대표 발언이 ‘사실’의 영역인지 ‘의견’의 영역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죄는 후보자의 경력·재산 등 객관적 사실이나 행위 등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만 성립하는데, 이 대표 발언은 주관적 인식이나 의견 표명에 해당할 수 있어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표가 “국토부로부터 협박을 당했다”고 한 데 대해서도 한 법조인은 “국토부가 성남시에 ‘백현동 부지가 빨리 매각되도록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몇 차례 보냈는데, 실제 협박이 없었더라도 본인이 협박받았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도 큰 틀에서만 사실에 부합하면 다소 과장된 표현 정도는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유죄인지 무죄인지 헷갈릴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대원칙”이라면서 “이런 원칙이 모든 사건에 적용되는 것이 올바른 사회”라고 했다.
선거 출마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과거보다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전직 부장판사는 “요즘은 대선 후보가 어떤 주장을 하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논박이 가능한 사회”라면서 “모든 발언을 일일이 법적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자유롭게 토론이 이뤄지게 둔 다음 유권자들이 최종 판단하면 될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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