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경 선수와 아버지 박세수씨. photo KLPGA
박현경은 훈련에 몰입하는 순간 오싹한 골퍼가 된다. 웃음기 싹 가신 '진지 모드'로 바뀌면 방금 전 함께 깔깔대며 장난치던 동료들도 옆에 다가가지 않는다. '큐티플(cute와 beautiful을 합한 신조어)'이란 애칭은 분위기 좋을 때나 어울린다. 그만큼 2000년생 용띠인 박현경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뉴트로(Newtro) 골퍼란 느낌이 든다.
지독하게 훈련하는 걸 보면 1988년생 용띠 신지애나 이보미 같은데,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건 딱 밀레니얼 세대다. 이런 박현경 스타일은 캐디 백을 메는 아버지 박세수(56)씨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박현경이 KLPGA 투어 무대에서 7승을 거두며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와 딸의 관계도 진화했다. 한때 '스파르타식 훈련' '일방적인 지시' '불통' 등의 단어가 떠오르던 불편함이 사라지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는 '단짝'이 됐다. 박현경은 "아버지가 캐디로서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데 조금의 의심도 없기 때문에 지금은 최고의 단짝 캐디란 믿음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 박씨는 "자식 잘되는 것 말고 더 이상 바랄 게 뭐 있겠느냐"고 했다.
박씨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활약했던 프로 골퍼다. 박씨의 고향은 전북 익산이다. 어린 시절 집 근처에 팔봉컨트리클럽(현재 익산CC)이 생기면서 골프장이 놀이터가 됐다. 아까시나무를 깎아 골프를 쳤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앞으로는 골프가 유망하다'는 주변 얘기를 듣고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그의 마을에 60가구가 살았는데 16명의 프로 골퍼가 나왔다. 그의 집안에서도 5형제 중 4명이 프로가 됐다.
박씨는 1부 투어에서는 우승을 못 했지만 1999년 2부 투어인 016투어 5차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다. 박현경이 태어나기 약 4개월 전의 일이다. 박씨는 원래 왼손잡이였지만 그가 골프를 배우던 1980년대에는 왼손용 채가 없어서 골프는 오른손으로 했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 채로 쳤으니 아무래도 제 기량을 발휘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1990년 세미 프로(준회원)가 된 그는 1997년부터 투어 무대를 뛰었다. 2002년 현역 은퇴 후 그해부터 전북 전주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세수골프클리닉'과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박현경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연습장에서 플라스틱 채를 가지고 놀았다. "제가 골프를 했으니까 운동신경이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유심히 지켜봤다. 승부 근성이 강하고 소질이 비치길래 현경이가 만 8세이던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켰다.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쳤는데 다행히 잘 따라와 준 게 고맙다"고 했다.
박현경이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는 노력의 상징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중1 무렵 신었던 골프화다. 얼마나 연습했는지 양쪽 깔창 엄지발가락 부분에 구멍이 나 있다. 또 하나는 상처투성이 손바닥 사진이다. 중2 하반기에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며 찍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전주에서 운영하는 실내연습장에서 하루 20~25박스(공 2000개 안팎)씩 쳤다"며 "아침 8시에 시작해도 저녁 8시쯤 돼서야 모두 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노력의 힘을 믿는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박현경은 "힘들어도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골프는 노력하는 만큼 돌아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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