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56명 입양인 진실규명 결정, 42명은 보류…"전수 조사가 필요하다"
"제 입양 서류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고, 제 입양은 범죄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임시로 보육원에 맡겼고, 어머니가 입양 동의서를 써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11살에 아동 성애자에게 입양이 됐고, 지난 39년 동안 기아(棄兒, abandoned child)인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 한국 아동 입양의 경우 2025년 가격(입양 수수료)이 얼마인 줄 아세요? 6만 달러 입니다. 해외의 잘 사는 나라에서 양부모들이 지불하는 이 수수료 때문에 (국제) 입양 시장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입양인의 권리 회복을 권고하셨는데, 현재 어느 나라에서도 공식적으로 입양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가 없습니다. 그런데 홀트(아동복지회)처럼 민간 기관이 입양인의 권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존재하지 않는 권리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 평생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해외입양인들을 위해 보다 강화된 권고안을 만들어주시길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11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 씨는 이렇게 말한 뒤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26일 진실화해위의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박영선 위원장에게 좀더 적극적인 진상 규명을 호소하고 있는 입양인 김유리 씨. ⓒ프레시안
이날 진실화해위는 지난 2022년 미국·덴마크·스웨덴 등 11개국에 입양된 367명의 조사 신청자 중 56명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 시작된 한국의 해외입양 관련 정부기관의 첫 진상조사 결과 발표다. 그러나 2년 7개월간 조사한 결과를 받아든 입양인들의 표정은 썩 밝지 만은 않았다.
진실화해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고 이상훈 상임위원이 밝혔다. 이 상임위원은 "어제 첫번째 진실규명으로 올린 신청인 98명 중 56명을 제한 42명에 대해 사실상 피해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고 개인적으론 유감스럽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단적으로 이날 사례 발표를 한 3명의 입양인 중 김유리 씨를 제외한 덴마크 입양인 피터 뮐러, 한분영 씨는 피해 인정을 못 받았다.
이 위원은 9명의 위원 중 박선영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이 '자료 미비'를 이유로 40여 명의 입양인들에 대한 결정을 보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입양인들의 책임이 아니다. 입양 서류의 미비나 오류로 인해 평생을 고통 받아온 입양인들이 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화해위는 정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해외입양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으며 이의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진실화해위가 밝힌 구체적인 인권침해는 다음과 같다.
○ 적법한 입양 동의 부재 : 입양 관련 법에 입양 절차 진행을 위해서는 친생부모 또는 후견인의 동의를 얻어 입양동의서 및 기타 필요 서류를 제출하도록 규정하였으나, 조사 결과 적법한 입양 동의 절차가 선행되지 않은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음.
○ 허위 기아발견신고 등 기록의 조작 : 입양대상 아동이 무호적 상태인 경우 구청장이 작성하는 '고아호적'(Orphan Registration)은 아동이 일괄적으로 입양알선기관 소재지 앞에서 기아(棄兒, abandoned child)로 발견되었다는 허위의 기아발견조서에 기초한 것으로서, 형법 228조(공정증서원본등의 부실기재) 및 229조(위조등의 공문서의 행사) 위반에 해당함.
▲허위로 작성된 영문 입양 기록. 신청인 장00의 입양알선기관 최초 의뢰 당시 작성 기록. 입양을 의뢰한 친모의 인적 사항과 출생지 등이 정확히 기재되어 있다.(위) 반면 양부모에게 전달된 영문 입양 기록에는 한글 기록과 다르게 부산에 위치한 남광아동복지원을 통해 입양 의뢰되었고, 친부모 정보도 알 수 없다고 허위로 작성됐다. ⓒ진실화해위원회
○ 요식행위인 부양의무자확인공고 : 사고로 인해 미아가 된 아동이 고아로 둔갑되어 해외입양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입양 절차 중에 '부양의무자확인공고'를 진행해야 했으나, 미아 발생 시점으로부터 한참 지난 때에 미아 발생 장소와는 무관한 지역 소재 법원 게시장 또는 구청에 공고하도록 함으로써 부양의무자확인공고는 요식행위에 그쳤음.
○ 의도적 신원 바꿔치기 : 입양알선기관은 입양 수속을 진행 중이던 아동이 출국을 앞두고 사망하거나 연고자가 아이를 되찾아가는 등의 사유로 입양이 중단되었을 경우, 새로 인수한 아동을 기존에 수속 진행 중이던 아동의 신원으로 조작하여 빠르게 출국시키기도 하였는데, 이는 입양인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임.
○ 양부모 자격 부실 심사 : 법에는 양부모 자격 검증을 보건사회부의 해외이주허가 심사 단계에서 하도록 규정하였으나, 한 해(1984년 기준) 8천여 건에 달하는 해외입양 해외이주허가 심사의 절대 다수(99%)가 신청 당일 또는 다음날 처리되는 등 입양 심사가 유명무실하게 이뤄졌음.
○ 후견인 직무 미이행 : 한국 입양알선기관은 수령국에서 입양절차가 완료되기 전까지 아동에 대한 후견직무를 수행하여 아동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나, 실제로는 아동이 출국하기도 전에 수령국 입양알선기관에 임의로 ‘후견권 이양각서’를 작성하여 그 의무를 해태하였음.
○ 양부모 수요에 맞춘 아동 대량 송출 : 한국 입양알선기관들은 양부모들의 수요에 맞춰 매달 수십 명의 아동을 지속적으로 송출해달라는 수령국 입양알선기관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타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간소한 입양 절차를 통해 아동을 대량 송출하였음.
▲'짐짝'처럼 떠나보낸 아이들. 수십명 이상 집단 호송. ⓒ진실화해위원회
○ 입양대상 아동 확보를 위한 강제적 기부금 : 정부는 입양 수수료를 규제하지 않고 입양알선기관 간 자율 합의에 맡기는 한편, 양부모로부터 입양 실비 외에도 기부금을 강제로 징수하여 이를 입양 대상 아동 확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방치함으로써 해외입양이 경제적 동기에 의해 작동되는 산업으로 자리잡게 만들었음.
▲상품이 된 입양 아동..."장애아동은 수수료 할인해 드립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진실화해위는 "수십 년간 잘못된 해외입양 관행이 유지되어왔던 것은 국가가 입양인 등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책무를 방기한 것"이라면서 □ △국가의 공식 사과 △입양인의 시민권 취득 여부 실태조사 및 후속대책 마련 △신원정보 조작 등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치 △입양 정보 제공 시스템 개선 △입양인 가족 상봉에 대한 실질적 지원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조속한 비준 △입양알선기관의 입양인 권리 회복 노력 등을 권고했다.
박 위원장은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올해말로 활동이 종료되는 진실화해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1955년부터 1999년까지 해외 입양된) 14만 명의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독자적인 조사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또 아동 송출국인 한국 뿐 아니라 수용국인 미국, 유럽 국가들과의 공동 조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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