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척추가 완전히 닫히지 않는 '척추이분증'
대규모 유전자 데이터 분석…'드 노보' 돌연변이에 초점
국제 학술지 '네이처' 등재
연구팀이 척수수막류 관련 유전자를 비활성화해 신경관 결손 여부를 검증한 실험 사진.척수수막류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밝혀진 유전자 중 노스트린(Nostrin) 와 웸(Whamm) 유전자를 비활성성화해 실험대상인 개구리의 신경관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사진=김상우 연세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교수
예방법이 전무한 수준이어서 예비 부모의 속을 태우던 선천성 신경관 결손 장애의 유전적 원인을 국내 연구팀이 처음으로 정확히 찾아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상우 연세대 의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교수가 세계 최초로 척추이분증의 유전적 원인을 규명했다고 27일 밝혔다.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나온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이날 공개됐다.
연구를 주도한 김상우 교수는 앞서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연구 성과 브리핑에서 "전 세계적인 척추이분증 연구 중 압도적으로 큰 규모의 유전자 데이터를 활용한 첫 연구"라고 밝혔다. 척추이분증 환자와 그 부모의 유전자 데이터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해 척추이분증을 일으키는 핵심 돌연변이를 검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척추이분증은 임신 중 태아의 척추가 완전히 닫히지 않아 생기는 선천성 질환이다. 태아의 발생 과정에서 척추가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척추 사이로 척수, 뇌척수액, 뇌척수막이 주머니 모양으로 튀어나온다. 3000명 중 1명꼴로 생기는 희귀 질환이나 선천성 신경관 결손 장애 중에서는 흔히 발생하는 질환이기도 하다. 척추이분증을 갖고 태어난다고 해서 바로 사망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장애를 동반할 수 있다. 뇌척수액에 의해 뇌압이 상승하는 '수두증(물뇌증)'을 비롯해 발달장애, 배뇨 장애를 앓게 된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척추이분증도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병하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환경적 요인에 집중했다. 가장 큰 원인은 엽산 부족이다. 임산부가 엽산을 충분히 섭취할수록 태아가 척추이분증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만 엽산을 충분히 섭취해도 여전히 척추이분증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어 유전적 원인도 있다는 추측이 나왔고, 그간의 실험 결과 척추이분증 발병에 무려 수백개에 이르는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김 교수팀은 이 중에서도 부모로부터 유전되지 않고 자식에게서만 발현되는 '드 노보(De novo) 돌연변이'에 초점을 맞춰 유전자 후보의 범위를 좁혔다. 김 교수는 "척추이분증은 부모로부터 자식에게로 유전자가 전달될 확률이 낮은 질환이기 때문에 세대를 걸쳐 유전자가 존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즉 부모에게 없던 유전자가 아이가 태어날 때 어떤 이유로 변이돼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라며 드 노보 돌연변이에 집중한 이유를 설명했다.
척추이분증 환자 851명으로부터 도출한 질병 관련 유전자 및 생물학적 기능 네트워크 /사진=김상우 연세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교수
연구팀은 미국 캘리포니아대(UC) 샌디에이고캠퍼스 연구팀이 수집한 전 세계 851명의 척추이분증 환자와 가족 2451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때 연구팀이 한국에서 구축한 대규모 유전자 변이 분석 기법(네트워크 기법)이 주효했다. 유전자 간 상호작용을 분석해 서로 어떻게 얽혀있는지 확인하는 기법이다. 이를 통해 각 유전자의 기능과 연관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 결과 연구팀은 5개 돌연변이 유전자의 공통적인 특성을 발견했다. 이같은 특성을 인간에게서 확인한 건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특히 △세포 내 섬유를 만들어 세포의 골격을 유지하고 세포의 이동에 관여하는 액틴사이토스켈레톤(Actin Cytoskeleton) △척추의 형성 과정에서 섬유질을 통해 신경관이 단단히 결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마이크로튜블(Microtubule·신경튜브폐쇄) 기능이 돌연변이로 인해 망가지면 척추이분증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추정해냈다.
김 교수는 "어떤 기능이 망가졌을 때 척추이분증이 생길 수 있는지 확인한 만큼, 반대로 해당 기능을 강화하는 물질을 추가로 밝혀낸다면 척추이분증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019년부터 수행해온 돌연변이 검출 연구로 축적한 역량이 척추이분증이라는 확장된 연구 주제에 적용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번 연구 성과는 신경관 결손 질환뿐만 아니라 자폐증처럼 유전적 돌연변이와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질환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구를 이끈 김상우 연세대 교수, 단독 제1저자 하유진 하버드의대 박사후연구원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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