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24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사건을 기각했다. 이 결정에서 재판관 의견은 각하, 기각, 인용 세 가지다. 기각에는 기각이라는 결론만 같고 이유가 다른 두 의견이 있어, 구체적으로 네 가지다.
시중에서는 이 의견 분포를 근거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론을 다양하게 예측한다. 하지만 재판소는 두 사건에서 겹치는 쟁점을 피해 갔다. 따라서 한덕수 사건으로 윤석열 사건을 예측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덕수 사건 결정은 여러 논리적 결함과 재판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문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한덕수 사건 결정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탄핵 정족수 미달이라는 각하의견은 교과서적인 견해
국무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를 탄핵 소추하려면 국회의원 몇 명의 찬성이 필요할까. 이와 관련 헌법은 국무총리는 재적의원 과반인 151명, 대통령은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명이 필요하다고 정하고 있다(제65조 제2항). 한덕수 권한대행은 국회의원 192명 찬성으로 탄핵소추됐다. 즉 국무총리 기준인 151표로 탄핵소추한 것이다.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사유에는 국무총리로서 벌인 일도 있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한 일도 있다. 가령 여전히 진행 중인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한 일이다. 다만 국회가 발의한 탄핵안 이름이 ‘국무총리(한덕수) 탄핵소추안’이라고 돼 있지만, 이는 151표 탄핵소추를 정당화하려는 작명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법 주석서에는 권한대행으로 한 일에 관해서는 200명 찬성이, 국무총리 시절 한 일에 관해서는 151석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주석서는 한쪽 의견만 적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견을 다 소개한다. 그런데 151명 찬성 의견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주석서 대로라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한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등이 사유로 포함된 한덕수 탄핵심판 사건 정족수는 200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재판관 정형식·조한창의 각하의견은 특별히 시비하기 어려운 교과서적인 선택이다. 이렇게 각하의견인 두 재판관은 본안 평의에 들어가지 않고 평의에서 빠졌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복귀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울산·경북·경남 산불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국무총리로, 다시 대통령으로 짜깁기 해석
이 사건에서 각하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나머지 재판관 여섯 명이 본안 판단에 들어가 평의를 계속했다. 이들은 모두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 탄핵소추에는 151표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러나저러나 한덕수는 국무총리라는 것이다.
이들 재판관은 “예비적‧보충적으로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국무총리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대통령의 지위와 동일하다고 볼 수 없고… 본래 신분상 지위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정족수를 적용함이 타당하다”라고 했다. 쉽게 말해,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의 신분은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덕수를 파면할지 판단하면서는 다시 그가 대통령이라고 했다. 한덕수는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고 이는 위헌이라면서도, 이 정도는 중대하다고 보기 어려워 파면할 수는 없는데 이유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파면 결정은 국정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더욱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라고 했다.
즉, 피청구인인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를 탄핵소추 의결 정족수에서는 국무총리로 봤다가, 파면 여부를 결정할 헌법 위반의 중대성 문제에서는 대통령으로 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의견을 재판관 김복형의 기각의견이나, 재판관 정계선 인용의견은 다루지 않았다. 기각의견 가운데 재판관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의 의견이다.
헌법재판관 자각 부족한 하급심 판사 시절 태도
이러한 기각의견은 정족수 문제 이외에도 여러 대목에서 논증의 부실함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기관을 통제하는 헌법재판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을 상대하는 하급심 민‧형사 재판 수준의 사고가 드러나고 있다.
재판관들이 과거 판사 시절 민‧형사 재판에서 써온 법리로 헌법 문제를 논증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가령 한덕수 권한대행의 임명 거부가 위헌이라면서도 고의는 없으니 파면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 가운데 하나다.
구체적으로 “피청구인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법재판소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에 기인하였다고까지 인정할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 …”이라고 했다. 이는 형법상 직권남용 법리를 주요하게 가져다 쓴 인상을 준다.
하지만 우리 헌법이나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의 사유로 고의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반이론상 위법행위에는 고의와 과실이 모두 포함되기에 고의를 요구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헌법재판연구원, 주석 헌법재판소법, 2015, 662쪽).
이와 비슷하게 재판관 김복형은 대통령의 재판관 임명 의무에 시한을 설정하고 민사재판에서 지연이자 계산하는 듯한 내용을 썼다.
이와 관련해 한덕수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선출안이 가결되기도 전에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실 때까지 저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습니다.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시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습니다”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재판관 김복형은 기각 의견에서 “국회가 재판관으로 선출한 사람을 선출 후 ‘즉시’ 임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권한의 행사 기한은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한 ‘상당한 기간 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의 구체적인 작위의무는, 국회가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을 의결하고, 피청구인이 국회로부터 헌법재판관 선출 통지를 받은 이후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는 민사재판에서 이행지체로 인한 최고(催告)를 하지 않으면 더러 손해배상 청구나 계약 해제가 어려운 사례도 있는데, 그러한 논리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적시에 처리하지 않는 헌법재판관도 헌법위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적시에 처리되지 못하고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헌법 문제를 대하는 법리나 태도에서 헌법적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재판관에게는 사건을 적시에 처리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이를 위반하는 것 역시 헌법위반이다.
뉴스타파 이범준 seirot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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