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 450]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계시록>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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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계시록> 스틸컷 |
ⓒ 넷플릭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영화 <계시록>은 처음 등장하는 민찬(류준열 분)과 양래(신민재 분) 사이의 서사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평소와 같이 개척교회에서 예배를 보던 민찬은 자신의 교회 신도 여학생을 따라 교회를 찾아온 양래를 마주한다. 평소 세를 확장하는 데 여념이 없던 그는 신도 등록을 강권하던 중, 양래의 발목에 채워진 전자발찌를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양래에게 범인의 몽타주를 뒤집어씌우지만, 한 명이라도 더 등록시켜야 하는 민찬은 교회가 죄인들이 오는 곳이라며 두 사람의 만남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양래와의 만남 이후, 아들 연우(이정민 분)가 뜻하지 않은 실종 상태에 놓이게 되자 아무 의심도 없이 양래의 얼굴을 제일 먼저 떠올리고 그를 유괴범으로 확신한다. 성범죄자 조회를 통해 주거지를 확인한 민찬은 양래의 집을 찾아 나서고,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던 도중, 의도치 않게 양래를 살해하게 된다. 물론 이때에도 민찬은 이 모든 과정이 자신의 오해와 성급함이 낳은 비극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신의 계시라고 믿는다. 신의 계시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받들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뜻.
02.
연상호 감독은 이번 작품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던 것만 믿던 이들이 겪게 되는 구원과 파멸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앞서 설명했던 민찬이 정확히 그런 인물이다. 그의 가느다란 믿음은 폭우 속으로 보이는 건너편 산등성이의 예수 모습과 살인에 대한 증거 소실과 같은 우연이 더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강화되고 확대된다. 영화 <계시록>은 한 인간의 그릇된 믿음이 어디까지 나아가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를 그려내고자 한다.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밝힌 것처럼 작품 속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선과 악, 진실과 믿음 사이의 미묘한 경계 위에서 우리가 각자의 신념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언급했던 민찬 외에도 자신이 만들어낸 믿음에 사로잡힌 인물이 극 중에 더 존재한다는 뜻이다. 경기 무산중부경찰서 형사로 재직 중인 연희와 과거 저지른 성범죄로 인해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는 성범죄자 양래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믿음을 따르는 동안에 하나의 사건으로 얽히면서도 그 과정에서 각자의 신념에 점차 확신을 갖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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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계시록> 스틸컷 |
ⓒ 넷플릭스 |
03.
연희는 범죄 피해 사실로 인해 세상을 떠난 동생 연주(한지현 분)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환영에 시달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당시 동생을 납치해 성폭행을 저지른 인물은 양래. 실질적인 피해자는 정작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세상의 동정을 받기 시작하자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리고 민찬의 교회 신도였던 아영(김보민 분)의 실종 사건으로 5년 전 동생을 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범인 양래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한편, 양래는 어린 시절 경험한 학대와 상처로 인해 비정상적인 믿음으로 완성해 낸 자신만의 세계 속에 스스로를 가둬둔 인물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같이 계부로부터 학대를 받아온 그는 자신의 범행이 '외눈박이 괴물'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며 잘못된 신념을 드러낸다. 민찬에게 예수의 얼굴이 믿음을 강화시키는 장치인 것처럼, 양래에게는 외눈박이 그림자의 형상이 두터운 신념을 구축하는 데 강력한 메타포가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구축된 세 인물의 신념을 아영의 실종과 납치라는 사건 하나로 뒤섞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지점에서 활용되는 것이 사실과 믿음 사이의 미묘한 거리다. 납치 범죄를 저질렀지만 민찬의 아들은 납치하지 않은 양래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오해를 믿음으로 둔갑시키려는 민찬, 그리고 자신의 동생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정신과 교수 낙성(김도영 분)을 찾아가 어떻게든 양래를 붙잡고자 하는 연희 모두에게 이 지점의 공동(空洞)이 존재한다. 물론 이 틈은 각각의 인물이 진실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믿음을 합리화하는 계기가 된다.
04.
"당신이 그 악마 같은 놈에게 핑곗거리를 줬어."
문제는 이렇게 잘 구조화된 인물의 서사와 초반부의 전개가 중후반부를 지나며 날카롭게 벼려지지 못하고 산만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먼저 세 인물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의 위성 사건 및 서사가 이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이 작품 <계시록>에서 중요한 것은 계시(啓示, 사람이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함)에 있지 않다.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계시는 개인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민찬에게는 예수, 양래에게는 외눈박이 형상, 연희에게는 연주의 혼령이 해당된다). 하지만 민찬의 아내인 시영(문주연)이 보여주는 간음이나 평안교회 목사인 국환(최광일 분)이 가진 욕망은 다소 밋밋하고 평범해 보인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개인의 믿음을 강화해 가는 과정도 다소 평면적이다. 특히 현재의 사건으로부터 직접적인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연주는 그 경우가 조금 더 심하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살리고, 인물의 동인을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혼령인 동생을 점프 스케어(Jump Scare, 주로 공포 영화에서 관객을 놀라게 만들기 위해 갑자기 등장시키거나 변화시키는 방법)를 통해 갑자기 등장시키곤 한다. 의도는 알겠으나 효과적인 방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양래의 범죄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이 해결과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내러티브적으로 치밀하다는 생각보다는 급하다는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감정이 극의 메시지에 채 닿기도 전에 벌써 영화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형식이 돼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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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계시록> 스틸컷 |
ⓒ 넷플릭스 |
05.
"나 이제 명백히 알 거 같아. 왜 당신 같은 사탄의 자식을 내 앞에 계속해서 보내 주시는지. 내가 그분의 명령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시는지 보시기 위함이에요."
이번 작품은 연상호 감독이 최규석 작가와 함께 작업하여 연재한 바 있는 동명의 만화(2022)를 원작으로 한다. 감독 본인이 원작의 스토리를 직접 개발했다는 점과 영화 <부산행>(2015)을 통해 실사 작품에서도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연출하고 있는 영화들이 작품성과 대중성 양쪽 모두로부터 부족한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과도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한때 제작 방식 및 형식을 넘나들며 '연니버스'라고 불리는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해 냈던 감독의 창작력을 매 작품 기다림과 동시에 응원하고 있다. 이번 작품 <계시록>에서도 그랬지만, 모든 작품에서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어떤 단어로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무엇을 꼭 하나씩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작품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를 표방하는 영화 <군체>(Colony)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개봉으로 알려진 이 작품에서 그가 다시 한번 자신이 가진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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