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보안 의식 부족·허술한 관리 체계 탓
형식적인 징계 그친 실효성 없는 기술 유출 처벌도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안 2월 본회의 상정
발사대에 기립한 한국형시험발사체 인증모델(QM)/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가 R&D(연구·과제) 지원을 받은 연구 성과는 연구자 개인이 아닌 국가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현재 우리 연구계의 기술 유출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은 매우 허술합니다."
'누리호 주역'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서 이달 또다시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국가연구개발과제로 나온 기술 보호를 위한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국내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서 여러 차례 기술 유출 시도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체계적으로 예방할 제도는 사실상 전무했다는 게 산업보안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25일 머니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기술 유출이 빈번히 일어나는) 첫 번째 이유는 연구자가 '연구성과는 내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연구자를 대상으로 연구 성과에 대한 본인의 지분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0% 이상이 '나의 것'이라고 답한 사례가 있다"며 "기술을 외부로 들고 나가도 이건 '내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고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가 지적한 두 번째 이유는 '규제의 사각지대'다. 현행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제21조에 따라 연구개발기관의 장은 소관 R&D 사업과 관련해 연구개발성과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다만 '외부로 유출될 경우 기술적·재산적 가치에 상당한 손실이 예상되거나 국가안보를 위해 보안이 필요한 연구개발과제'에 관해서다. 이른바 '보안과제'로 불리는 연구과제다. 모든 연구에 같은 수준의 보안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는 일반 과제와 보안 과제를 구분하고, 보안과제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문제는 일반 과제가 핵심 기술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경우다. 장 교수는 "일반 과제를 맡은 연구자에게는 별도의 보안 교육을 하지 않고, 각종 기술보안 지침에서도 벗어난다"며 "이 때문에 잠재적으로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 일반 과제로 분류되면 보안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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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에도 형식적인 내부 징계…"처벌·성과 보상 모두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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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술은 보안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국가의 손을 벗어나 유출될 위험에 놓여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박정인 단국대 과학기술정책융합학과 대학원 연구교수는 "국가 R&D 성과 및 기술의 무단 유출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제재 수위가 낮은 경우, 내부적인 통제는 물론 경각심을 유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특히 출연연의 경우 기술이 유출되었을 때 형식적인 내부 징계나 사법 절차의 어려움으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고 했다.
현재 기술 유출에 따른 처벌은 크게 △산업기술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라 이뤄진다. 박 교수는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핵심기술'에 대해서 유출 시 처벌하도록 하는데, 출연연에서 개발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미지정된 경우 법률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또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 연구보안과 관련된 기본법을 포함하지만, 기술 유출의 피해가 없는 경우 처벌조항이 없고, 과제 관리 위주로 접근해 과제 산출물에 대한 보호는 미흡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2009년 한국항공대 교수로 이직한 전(前) 출연연 연구원 A씨가 연구했던 풍력발전기 날개 시험계획 관련 기술을 중국 회사로 유출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A씨는 "유출한 일부 자료는 이미 대중에 공개돼 영업비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이에 따라 당시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국가 R&D 기술 중 일정 요건을 갖춘 기술까지도 보호 대상으로 포함해 형사처벌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불어 "연구책임자와 기관장의 보안관리 책임 위반 시 이를 제재할 근거, 연구비 환수·연구 자격 제한 등 강력한 행정 제재 수단이 없다면 중요한 기술의 유출을 방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아가 '국가 R&D 기술유출 방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연구개발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법적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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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연구개발혁신법 일부개정법률안 국회 상정…'민감 과제'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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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 대표 발의로 국회에 상정된 상태다. 지난 2월 17일 발의된 이 개정법률안은 △보안과제와 일반과제의 중간 보안등급(민감 과제)을 신설할 것 △연구현장에 연구보안 전담 집행조직을 마련할 것 △연구보안 부정행위의 범위를 보안과제 및 민감과제의 성과 누설·유출로 확대할 것 등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특히 '민감 과제' 신설은 기술 유출 관리의 사각지대를 좁힐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보안과제로 분류하지 않더라도 유출 시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추가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연구개발과제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연구기관은 민감 과제 연구자에게도 보안 교육을 제공하고 과제별 보안책임자를 지정해야 한다.
개정안을 주도한 장 교수는 "국가 R&D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는 연구자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자산임을 연구자 스스로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만 강화할 것이 아닌, 성과에 대한 연구자의 노고와 기여도를 인정하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를 정책적으로 충분히 제공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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