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중국 '구형 반도체'의 역습③
[편집자주] 한국·대만·미국·일본이 첨단 공정에서 경쟁하고 있는 사이 중국이 글로벌 구형(범용)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매출보다 많은 투자로 시장을 잠식 중이다.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철강·배터리·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점유율을 높여온 전략을 반도체에서도 쓰고 있다. 위기를 직감한 미국은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
범용 반도체 글로벌 생산 점유율 변화/그래픽=김다나 디자인 기자
미국의 중국 범용 반도체 견제가 '주변국과 동맹'을 기반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으로선 미국의 움직임에 동참하며 '실리적 선택'을 하는 한편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은 지난 1월부터 중국 반도체에 50% 관세를 적용하는 등 견제를 시작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지난달 5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동맹국과 협력'을 바탕으로 중국을 더 압박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한국에 '중국 제재 참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국'이라는 점,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 미국 내 반도체 수요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이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미국 이상으로 큰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우리 기업의 현지 투자 등을 고려하면 한국이 일방적으로 미국 편에 서기도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중국 대상 수출액은 65조원으로 미국 대상 수출(61조원) 대비 약 4조원 많았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 전체 낸드 생산량의 약 40% 이상이 시안에서 만들어진다.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D램과 낸드를 만든다. 우시에서 생산하는 D램은 SK하이닉스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다. 우시 공장의 지난해 매출액은 5조6127억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미국과 협력을 바탕으로 범용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 확대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중국의 범용 반도체 시장 장악을 방치할 경우 우리 최첨단 반도체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방적으로 미국편에 서는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 전문연구원은 "결국 실리를 찾아야 한다"며 "미국의 중국 제재 수위 등을 보고 상황에 맞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전략적 모호성'을 많이 거론했는데 이처럼 굳이 우리가 먼저 나설 필요 없이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중 갈등 격화 가운데 우리가 최대한 피해를 입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안은 결국 '기술'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기술의 초격차 전략이 중요하다. 중국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 판매하고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며 "물량이나 가격에선 우리가 중국을 이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수요 변화에 빠른 대처도 필요하다"며 "HBM(고대역폭메모리) 사업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희비가 엇갈렸듯 순간의 판단이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이런 부분을 잘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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