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원 2000명에 '사즉생' 주문 … 제2 프랑크푸르트 선언
'초격차' 자부심 사라지고
글로벌 점유율 갈수록 '뚝'
반도체·TV·스마트폰·패널
사업부별 문제 일일이 지적
'구조적 경쟁력 저하' 진단
국적·성별 불문 인재 영입
신상필벌 … 성과없으면 교체
◆ 삼성 위기극복 속도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임원진을 향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를 주문한 것은 이번 위기를 '구조적 경쟁력 저하'로 진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메시지는 연초에 전체 사장단 세미나 때 공개한 신년 메시지 영상을 임원 세미나에서 다시 공유한 것이다. 삼성은 오랫동안 '초격차' 전략을 통해 업계 1등을 선도했다. 하지만 최근 경쟁사와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거나 추월당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선발주자 자리를 잃었고, 반도체 위탁생산인 파운드리는 1위 기업과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또 TV나 스마트폰은 막대한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브랜드 제품이 쏟아지면서 점유율이 위태롭다.
위기감은 이 회장 메시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회장은 특히 "21세기를 주도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30개 대표 기업 중 24개가 새로운 혁신기업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다"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위 삼성 역시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음을 울린 대목이다. 실제로 1999년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30위 기업 가운데 2024년 기준 30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 엑손모빌, 월마트, 홈디포, P&G, 존슨앤드존슨뿐이다.
그만큼 위기 대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TV부터 스마트폰, D램, 스마트폰 패널, 차량용 디지털 콕핏까지 대부분 산업별 점유율에서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예를 들어 TV는 1등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로 점유율이 2023년 30.1%에서 2024년 28.3%로 줄었다. D램 역시 2022년 43.1%에서 2024년 41.3%로 하락했다. 스마트폰 패널도 위협받고 있다. 2023년 50.1%에서 2024년 41.3%로 밀려났다.
이 회장은 영상 메시지에서 사업부별 현황을 진단했다. 그는 "메모리 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기술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저조하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제품의 품질이 걸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산업별 '흔들림'을 구조적 위기로 진단한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인 반도체는 투자 이후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한번 뒤처지면 회복이 쉽지 않은 만큼 현재 투자 방향과 기술 개발이 삼성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위기 대응 방안으로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고 거듭 강조한 까닭이다.
그는 이러한 위기를 인재 영입, 신상필벌 인사 원칙, 정신 무장이라는 세 가지 무기로 돌파할 것임을 시사했다. 특히 이 회장은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다"며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이는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3년 발표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연상시킨다. 이 선대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전 임원회의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으며 '신경영'을 선언한 바 있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1993년 1월 3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 가전 매장에서 삼성전자 제품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밀려나 있는 모습을 목격한 뒤 위기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후 더 큰 충격에 빠진다. 일본에서 삼성전자의 품질 불량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보고서를 접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 선대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한 뒤 약 두 달간 임직원 1800여 명과 350시간 넘게 만나며 신경영 철학을 설파했다. 사장단과도 800시간 이상 회의를 이어가며 혁신 방향을 공유했다. 그만큼 '정신 무장'을 강조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졌다.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품질에 있어서는 타협이 없었다. 이를 토대로 삼성전자 매출액은 1993년 9조9000억원에서 2013년 228조7000억원으로 23배 이상 급증했다.
[박소라 기자 / 이상덕 기자 / 박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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