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17'(감독 봉준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로버트 패틴슨, 봉준호 감독. 24.1.20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이유민 기자]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한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과 궁금증이 쏟아지고 있다.
'미키 17'(감독 봉준호, 각본 봉준호)은 원작 소설 'Mickey7'(미키 세븐)을 바탕으로 죽음을 반복하는 인간 복제체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여정을 다루며 복제 인간의 존재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봉 감독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가미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특히, 이번 영화는 마크 러팔로의 미스터리한 캐릭터, 독특한 외계 생명체 '크리퍼', 17이라는 숫자의 숨겨진 의미, 그리고 미키의 반복되는 죽음 속에 숨겨진 인간성 등 다양한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했다. 과연 '미키 17'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까? 영화 속에 숨겨진 다섯 가지 주요 포인트를 깊이 있게 분석해 봤다.
영화 '미키 17'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마크 러팔로. 2025.2.20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마크 러팔로의 캐릭터, 특정 정치인과 유사성?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우주 식민지 개척에 나선 우주선의 독재자 정치인 '케네스 마셜'은 영화 내내 미키와 대립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냉철한 지도자로 보이지만, 실상은 체제 유지를 위해 비윤리적인 결정을 강행하는 권위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현실 속 특정 인물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현대 정치·경제 시스템에서 복제 인간이나 인공지능을 단순한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경향과 맞물려, 봉준호 감독이 의도적으로 현대 사회를 풍자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의 태도와 말투가 마치 현실의 강력한 권력을 가진 리더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그는 복제 인간을 하나의 자원으로 간주하며, 효율성을 위해 필요할 때마다 교체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노동력을 단순한 비용 절감의 도구로 여기는 일부 기업 및 정부의 태도와 유사하다. 또 원작에서도 마셜은 등장하지만, 영화 속 마셜은 더욱 강한 권력 지향적인 캐릭터로 변했다. 특히,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아내 일파가 추가된 점이 흥미롭다.
봉준호 감독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독재자가 커플로 등장했을 때 나오는 시너지, 그리고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권력을 쥔 독재자 한 명이 아니라, 부부가 권력을 나눠 가지며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를 만들면 더 강렬한 아이러니와 풍자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진 출처=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 '미키 17' 스틸 컷.
▶ '크리퍼'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외계 생명체의 숨겨진 의미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 '크리퍼(Creeper)'는 단순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이 가진 복잡한 설정이 드러나면서 인류와의 관계가 더욱 흥미롭게 전개된다.
봉준호 감독은 크리퍼를 단순한 위협적인 괴물이 아니라, 동글동글한 형태와 독특한 움직임을 가진 생명체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봉 감독은 크리퍼를 만들면서 크루아상을 참고했다고 전했다. 크루아상의 주름진 곡선이 마치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이 형태가 크리퍼의 외형을 형성하는 중요한 영감이 되었다. 원작 소설에서 크리퍼는 길쭉한 지네처럼 묘사되었지만, 봉 감독은 좀 더 부드럽고 둥글며 유기적인 형태를 원했다. 크루아상의 결이 겹겹이 쌓인 모습이 크리퍼의 신체 구조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단순히 괴기스럽거나 공포감을 주는 크리처가 아니라, 보다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 생명체로 탄생할 수 있었다.
크리퍼의 움직임과 방어 메커니즘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모티브가 된 것은 아르마딜로(Armadillo)였다. 그는 "아르마딜로는 몸을 웅크리면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데, 크리퍼도 이와 유사한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다. 크리퍼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자신의 생태계를 이루는 독립적인 생명체처럼 보이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크리퍼는 단일 개체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개성과 역할을 가진 여러 종류의 크리퍼들이 존재한다. 베이비 크리퍼는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며 귀여운 모습을 담당하고, 주니어 크리퍼는 영화 속 액션을 담당하는 빠른 움직임을 가진 개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존재인 마마 크리퍼는 단순한 괴물의 리더가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지배자로 설정되었다. 봉 감독은 마마 크리퍼의 콘셉트에 대해 "마치 여성 4선 의원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곧 크리퍼가 단순한 본능에 의한 움직임을 넘어, 지적인 요소를 지닌 생명체일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 '미키 17' 포스터.
▶ 왜 '미키 7'이 아니라 '미키 17'인가?
원작 소설의 제목은 '미키7'이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를 '미키 17'로 바꾸었다. 단순히 숫자를 변경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17과 18은 10대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이라고 설명했다. 즉, 17은 아직 성장의 과정에 있는 존재이며, 성인으로서의 자아를 확립하기 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 18은 그 경계를 넘어서 스스로를 확립한 존재이다.
이는 영화 속 미키 17과 미키 18의 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 미키 17은 아직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미키 18은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깨닫고 저항하는 캐릭터다. 결국, 이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변화하는가'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영화 '미키17'(감독 봉준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로버트 패틴슨, 봉준호 감독. 24.1.20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미키'의 죽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인간성을 찾다
미키 17은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는 변화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미키는 여전히 같은 존재인가?"라는 것이다. 미키 17은 분명히 이전의 미키들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억과 경험이 누적되면서 그는 점점 변화한다. 그렇다면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존재일까?
봉준호 감독은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면서도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처럼, 미키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죽음은 단순한 리셋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발견의 과정일 수도 있다.
영화 '미키17'(감독 봉준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24.1.20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봉준호식 SF, 왜 이 영화는 독특할까?
'미키 17'은 단순한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기존 할리우드 SF 영화들과 확연히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SF 영화들은 보통 거대한 우주 전쟁, 인공지능의 반란, 화려한 특수효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SF는 인간 중심적이다. 그는 거대한 스케일 대신, 개인의 이야기와 철학적 질문에 집중한다.
'설국열차'(2013)에서 계급 사회를 다룬 것처럼, '미키 17'에서는 복제 인간을 통해 노동과 소비,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또한, 유머와 아이러니를 적절히 섞어 SF 장르가 가지는 무거움을 완화하면서도, 메시지는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특히, 봉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 인간적인 유머는 '미키 17'을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만든다. 미키가 죽음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순간들, 크리퍼와의 예상치 못한 교류,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들의 조합은 영화가 단순한 복제 인간의 이야기에서 한층 깊은 철학적 탐구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미키 17'은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철학과 유머가 결합된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스포츠한국 이유민 기자 lum525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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