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리뷰] 끝,>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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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새로운 시작> 포스터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한 젊은 여성이 조용한 주택가 보금자리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가 불룩 나온 게 만삭이다. 출산이 머지않은 여성은 텔레비전을 보다 직장에서 일하던 남편과 전화 통화에 간식을 먹기도 한다. 너무도 평온한 풍경이다. 하지만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고, 바깥엔 빗줄기가 거세진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여성은 이윽고 집 안으로 물이 새어들기 시작하자 당혹감에 휩싸인다. 그저 새는 수준이 아니라 물바다가 될 지경이다. 급히 응급호출을 누르지만 대기 신호만 뜰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예상보다 빠른 진통이 찾아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긴급구조된 여성은 병원에서 눈을 뜬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고 산모의 건강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급히 달려온 남편과 재회한다. 하지만 병원 안팎의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영국을 강타한 폭풍우는 런던을 포함한 대도시에 홍수를 불러왔고, 폭우는 그칠 줄 모른다. 병원 역시 폐쇄 통보를 받아 부부는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피난처를 구해야만 한다. 남편의 부모님이 기다리는 시골집으로 향하는 길은 교통체증과 이동제한으로 아수라장이다. 간신히 도착해 살았다 싶었지만, 대홍수는 마치 종말이 다가온 것처럼 그칠 줄 모르고 세상은 흉흉해지기만 한다.
식량은 부족하고 치안은 무너진다. 기아가 닥치자 약탈이 횡행한다. 가족을 차례로 잃은 여성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곳곳을 전전해야 한다. 제 한 몸 돌보기도 벅찬 가운데 아이를 돌보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여성은 오히려 아이의 존재가 삶의 의지를 지키는 버팀목이라 여긴다. 가족을 버리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이지만, 인간성을 잃지 않고자, 그리고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잊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여성은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위험천만한 여행이지만, 때로는 고마운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하고 의지할 동료와 동행하기도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악천후 가운데 과연 여성과 갓난아기는 안식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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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새로운 시작> 스틸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너무나 현실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재앙
우리가 접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대개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다. 호기심은 극대화하면서도 관객이 현실에 지나치게 이입하지 않게 하는 안전판을 고려해서다. 즉 그럴싸해 보이긴 해도 실제 발생 가능성은 희박해야 하는 요건이다. 그래서 항상 외계인이 침공하거나, 느릿느릿 좀비를 제때 막지 못하기 일쑤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무수한 간섭 요소를 제치고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소행성은 어찌나 많은지, 하나씩 따지면 개연성 빈약한 것투성이다.
반면에 현실적으로 멸망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되는 요소는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하고 시시한 게 대부분이다. 인류는 아직 감기 하나 정복하지 못했고 (이후로도 그럴 공산이 크고) 지구 환경을 스스로 파괴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후재난을 초래하는 중이다. 지극히 사소한 기후위기만 닥쳐도 그 피해 복구와 수습엔 가공할 비용과 후유증이 청구되는데 말이다.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을 가상으로 설정하면서도 막상 더 치명적인 현실의 재난에는 둔감하기 그지없다.
<끝, 새로운 시작>의 종말론적 상황은 원인불명 장기간의 폭풍우가 초래한 대홍수다. 그렇다고 노아의 방주 배경인 온 세상을 뒤덮은 물바다도 아니다. 저지대 도시가 대거 물에 잠기긴 해도 고지대는 멀쩡하고 24시간 비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여름 장마철에 종종 겪는 국지적 호우가 국가적인 규모로 벌어진 데 불과하다. 하지만 그 재앙은 우리가 상상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손색이 없다. 재난 상황을 담담하게 주인공의 시선으로 화면에 투사하기에 관객은 저런 상황이 실제로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싹해질 수밖에 없다.
종말에 가까운 상황에서 정부 행정 체계가 가장 먼저 어이없이 붕괴하는 게 정석이지만, 원래 국가 기구란 위기에 대응하라고 만든 체제라 쉽게 무너질 리 없다. 영화에서도 비록 한계가 명백해도 영국 정부는 가능한 수준에서만큼은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긴급 상황을 경보하고 최소한의 구호와 공공 서비스를 유지하려 애쓴다. 폭우 속에도 긴급출동 서비스는 늦게나마 작동한 덕분에 여성은 조산을 견딜 수 있었다. 턱없이 부족하나마 국민에게 식량을 배급하고, 노약자는 구호소에 보호한다.
하지만 정부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데도 한계가 뚜렷하다. 한 번 공적 제도에 의구심을 품으면 불신은 금방 광범위하게 확산한다. 공익을 위해 나를 희생하라는 요구에 발끈하고, 남 배려하다 내 몫 포기할 순 없다.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빈틈이 는다. 제방에 작은 구멍이 터지면 순식간에 기존 시스템이 무너진다. 주인공이 목격한 게 바로 지독히 현실적인 대재앙의 풍경인 셈이다.
여성은 턱없이 모자란 구호소 여력에 사랑하는 남편과 생이별한다. 부모 중 1명만 입소 가능한 조건 때문이다. 몰인정해 보이지만 실용적 측면에선 어쩔 수 없다. 이미 구호물자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의존한 지 오래일 만큼 노약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호소에 엄마와 어린아이들이 가득한 것은 그만큼 사회 시스템이 안간힘을 쓰며 가동된다는 징표다. 그런 구호소를 폭도들이 약탈하는 순간, 공권력 붕괴가 어떤 설정보다 현실적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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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새로운 시작> 스틸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희망의 불씨를 살리다
안전하다고 믿던 구호소가 파괴되자 여성은 아이를 안고 필사적으로 달아나야 한다. 당분간 정부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 다행히 같은 시설에 있던 여성과 동행하지만, 이들은 당장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탑승한 차량의 남자들조차 믿을 수 없다. 천신만고 끝에 위기를 벗어나 살얼음판 피난을 이어가지만,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는커녕,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지경이다. 만인에 대한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동행자는 자신이 떠나왔던 피난처 이야기를 꺼낸다. 물론 그곳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사회가 무너진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과 생활이 보장된다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들은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오매불망 고립된 환경 덕분에 세상을 덮친 재앙에서 비켜난 '코뮌'에 피신할 기회를 얻는다. 도착해 보니 지난 몇 달간 겪은 아비규환이 꿈만 같다. 이곳이라면 당장 타인에 대한 공포도, 한 끼 식사도 걱정할 바 없다.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이만하면 지상낙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곳에서 만족할 수 없다. 피난처는 과거를 잊고 여기 모인 소수만의 새로운 세계를 목표로 하지만, 여성은 자신의 아이를 이렇게 폐쇄된 공동체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 그에겐 생사 불명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본인 또한 답답한 고향을 벗어나 자유롭게 꿈꿀 수 있던 대도시 런던에서의 삶이 그립기 때문이다. 분명히 지금의 위기가 계속되지만은 않으리라는 믿음과 기대도 서서히 살아난다. 몸은 고달프겠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넓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동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다시금 위험한 바깥으로 여정을 계속하려 결심한다.
여성은 안전한 피난처를 벗어나 런던으로의 머나먼 고행을 이어간다. 물론 누가 레드카펫을 깔아놓고 환영하거나 할 리 없다. 본인은 물론 아이까지 건사하며 걷고 또 걷는다. 여전히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두려워한다. 당장 끼니 때우기도 쉽지 않다. 대홍수 전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던 여성은 이제 물불 가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손대지 않던 것들에 도전한다. 물론 갑자기 잠재해 있던 숨은 재능이 만개하는 판타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어설프고 곤혹한 시행착오가 연거푸 쏟아진다. 저러다 결국 무너지는 것 아닐까 보는 이가 걱정스럽다.
통상적으로 이런 아포칼립스 설정에선 주인공이 위기 국면에 최적화된 숨은 '히어로'이거나, 능력자로 설정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성은 그저 솜씨 좋은 미용사에 불과했고 아이도 처음 낳아 어찌할 바 모르는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 재앙의 시간에 생존 가능성이 가장 취약한 축으로 분류하기 딱 좋은 유형이다. 그러나 국가 시스템이 최소한도로 지속 가능하다면, 그런 장삼이사 존재들도 의지를 다지고 상식적으로 대처한다면 어떻게 될지 이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재현해낸다. 물론 그런 희망의 상징으로 어린 아들의 존재는 그저 원초적 모성애를 넘어 사회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열망을 충실하게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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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새로운 시작> 스틸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깊은 내공 지닌배우들의 연기 향연
눈을 현혹하는 대규모 스펙터클은 기대하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건 예상외로 빛나는 배우 구성이다. 지쳐 나가떨어질 법한 숱한 위기를 용케 견디며 아이를 지키는 여성 역할의 조디 코머, 아내를 위해 한계를 극복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남편 역 조엘 프라이,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캐서린 워터스턴 모두 이름은 외우지 못해도 어디서 많이 본 중견 연기자들이라 앙상블이 척척 맞는다.
여기에 특별출연 차원에 가깝지만 반가운 얼굴인 마크 스트롱, 그리고 무엇보다 본 작품을 선택하는 데 중요 지분을 차지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반갑다. 짧은 등장이지만 주인공이 그저 생존을 위해 탈주하던 것을 넘어 목적의식을 잃지 않고 희망의 근거를 찾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던지는 히든카드 노릇 톡톡히 해낸다. (원작의 팬이라 제작도 도맡았다)
불확실성이 팽배하고 우리가 일궈온 사회가 허약한 지점을 거듭 노출하는 시대,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극단적 '생존주의자'가 이제 드물지 않게 된 현실에서 <끝, 새로운 시작>의 주인공은 대홍수 재난 상황에서 흔히 현실적으로 묘사되는 고립주의 생존이 아니라 여전히 연결된 세계를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하 벙커에 가득한 식량과 물자보다 어쩌면 주인공이 보이는 열린 사회와 미래에 관한 믿음이 작금 위기에 더 소중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는, 작은 규모이지만 이모저모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영화다.
<작품정보>
끝, 새로운 시작
The End We Start From
2023|영국|드라마
2025.03.26. 개봉|101분 35초|15세 관람가
감독 마할리아 벨로
출연 조디 코머, 조엘 프라이, 캐서린 워터스턴, 마크 스트롱, 베네딕트 컴버배치
원작 메건 헌터 [끝, 새로운 시작]
수입/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공동 배급 ㈜키노라이츠
제공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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