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전문 온라인 쇼핑몰 ‘공씨아저씨네’를 운영중인 공석진 대표가 12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맛있는 과일을 고르는 법’을 물으면 누군가는 과일의 꼭지 모양, 껍질색과 무늬, 무게 등을 통해 ‘맛있는 과일’을 감별하라고 조언한다. 온라인 과일 판매처인 ‘공씨아저씨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이런 말이 뜬다. “맛있는 과일의 비법은 없습니다.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하는 상식을 지킬 뿐입니다.”
공씨아저씨네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과일을 판다. 소비자에게 미리 주문을 받고, 과일이 잘 익었을 때 수확해 보낸다. 크기와 모양으로 과일을 선별하지 않는다. 시장 관행을 완전히 거스르는 일이다. 마트든 시장이든 열이면 열 과일을 들여놓고 소비자에게 그때그때 판매한다. 가격을 잘 받을 수 있는 설, 추석 같은 대목에 물량이 쏟아내기 위해 과일이 잘 익지 않아도 딴다. 모양과 크기를 기준으로 상품과 하품을 나누고 가격을 달리 받는다.
공씨아저씨네 대표 공석진씨는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키며 14년간 과일가게를 운영해 왔다. 그간의 생각을 모아 최근 <공씨아저씨네, 차별없는 과일가게>를 출간했다. 책은 과일 한 알을 가지고 농업, 유통업, 노동과 기후 문제까지 두루 이야기한다. 공씨를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의 공유사무실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났다.
“내가 파는 것이 과일인가 쓰레기인가?”
지난해 3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시장에서 사과가 크기와 모양별로 다른 가격에 팔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꿀사과·꿀배 등 맛있는 과일을 칭할 때 흔히 ‘꿀’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단맛이 강한 과일일수록 맛있는 과일로 취급된다. 공씨는 “‘맛있는 과일=당도 높은 과일’이란 단순한 공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며 “과일의 맛을 완성하는 것은 본연의 향과 식감도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맛있는 과일의 기준을 당도로만 획일화하면 농업 생태계도 달라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단맛’이라는) 결과 중심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면 과정이 무시되고, 친환경 농산물인지 일반재배 농산물인지는 관심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과일의 당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쓰레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당도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농가들은 밭에 폴리에스테르와 알루미늄 등으로 이뤄진 반사 필름이나 고밀도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진 ‘타이벡’ 천을 깔기도 한다. 몇 년에 한 번씩 교체할 때마다 고스란히 쓰레기가 된다.
과일을 포장하면서 생기는 쓰레기들을 보면서 ‘내가 파는 것이 과일인가, 아니면 쓰레기인가?’ 되묻게 됐다고 공씨는 말했다. 그는 “어느 날 제가 판매하는 과일 상자를 보고 있으니 과일 반, 플라스틱 반이었다”며 “‘나도 범인’이라고 인정하고 반성문을 쓰는 느낌으로 몇 가지 시도를 했다”고 했다. 스티로폼 상자와 플라스틱 포장재를 종이 소재로 바꿨다. 플라스틱 완충재도 최대한 줄였다. 그는 “쓰레기 문제를 소비자 개인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며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가 유기적으로 함께 노력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유기농으로 농사하면 손해 보는 사회
과일 전문 온라인 쇼핑몰 ‘공씨아저씨네’를 운영 중인 공석진 대표가 12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쓰레기가 늘면 지구가 병 든다. 지구가 병 들면 과일이 나지 않는다. 이상기후의 시대, 농업은 더욱더 위태로워졌다. 여름은 특히 힘든 계절이다. 공씨는 “최근 4~5년간 여름 날씨의 변화가 과일가게의 존폐를 결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1년 매출의 절반 가까이 담당했던 자두와 복숭아 같은 ‘여름 과일’의 수확량은 거의 반 토막이 났다”고 했다.
도시민들은 무덥고 긴 여름을 지나고 나면 기후 위기를 잊을 수 있지만 과일장수는 그렇지 않다. 그는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번진 과수 탄저병은 가을과 초겨울 사과 농사에까지 피해를 주고, 비로 질퍽해진 땅은 봄철 토마토를 심는 데도 영항을 준다”며 “겨울이 따뜻하면 이듬해에는 병충해 피해가 더 커진다. 마치 ‘연쇄 부도’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공씨가 유기농업을 고집하는 친환경 농가와 거래하려는 이유는, 유기농업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해 농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화석연료를 사용해 만들어진 화학비료는 토양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하수나 강으로 흘러가 물에 사는 생명체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도 증가시킨다”며 “현대 농업은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이다. 유기농업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하나의 대안”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장 논리가 농민들이 친환경 농업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고 공씨는 말했다. 화학비료를 한 숟가락만 써도 작물의 크기가 커지고 생산량이 증가한다. 해충 피해도 훨씬 적어진다. 크기가 작은 데다 벌레 지나간 흔적까지 있는 유기농 과일들은 커다랗고 흠 없는 일반 과일들에 밀려 제값을 받지 못한다. 시간도 오래 들고, 같은 크기 땅에서 수확량이 훨씬 적은 유기농업을 농민들이 지속할 동력이 부족하다.
“지금 유기농가들은 손해를 보고 농사를 짓고 있다. 유기농 농산물의 가격도 좋지 않아 계속 유기농업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럽 몇몇 나라에서는 국가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일반재배 농산물과 같은 가격에 팔 수 있도록 농민에게 수익을 보전해준다. 유기농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해 줘야 하는데 우리나라엔 그런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 공씨는 말했다.
농민과 도시민 처음으로 만난 ‘남태령’
지난해 12월22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몰고 온 트랙터들이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행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상기후로 과일값이 폭등하자 지난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사과 수입’을 거론했다. 공씨는 책에서 이 발언을 ‘망언’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커피값은 올라도 그러려니 하지만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마치 서민 경제가 위태롭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고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한다”며 “주요 언론에 농업전문기자가 없는 상황에서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보도가 쏟아진다“고 했다. 이어 “농업 현실을 제대로 이해한 기사가 없다”며 “최근 몇 년간 농업 생산비는 정말 많이 올랐다. 기름값은 물론 농업 자재, 인건비도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씨는 “싸게 수입한 농산물 가격이 영원히 쌀 것이란 생각은 금물”이라고 했다. 자국 농업이 사라지고 시장을 장악당하면 수입 농산물 가격이 다시 오르는 게 ‘뻔한 순서’라는 것이다. 그는 “자국의 농업을 지키자는 ‘신토불이’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며 “수입 농산물에 의존하고 식량 자급률이 낮아지면 우리는 곧 생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농업은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국가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영역”이라고 했다.
공씨아저씨네 사이트에는 과일을 기르는 농가의 사정이 빼곡히 적혀있다. 김은애와 고 임영택 농민이 왜 ‘씨 있는 토마토’를 고집하는지, 이기철 농민이 왜 농장 옆에 펜션을 운영하는지, 김종현 농민이 왜 무당벌레를 사다 밭에 풀어놓는지 알 수 있다. 도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농민의 얼굴’이다.
공씨는 “도시 사람들은 농사를 ‘나와 관계없는 일’로 여긴다. 사과 수입이 농민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농민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농민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런 면에서 남태령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21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시위대가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를 타고 서울로 향하다 서초구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봉쇄당했다. 대치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남태령 고개로 속속 모였다. 밤샘 농성이 이어진 뒤 트랙터 10대가 남태령을 넘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까지 나아갔다. 공씨는 “농민과 농업에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첫 사건이 아니었다 싶다”며 “농민과의 ‘연대’라는 키워드까지 나온 만큼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집회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했다.
공씨는 공씨아저씨네의 과일 판매 전략이 농민운동 혹은 환경운동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맛, 그리고 소비자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2020년 냉해 때문에 껍질이 누렇고 거칠어진 ‘동록 사과’를 먹어 본 회원들이, 과일의 맛은 외모와 관계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은 공씨에게 ‘자신감’이 됐다.
그는 “‘못난이 농산물’만 따로 판매하는 곳도 있지만 나는 ‘못난이’가 ‘A급 농산물’과 똑같이 판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소수자를 배제하거나 고립시키지 않고 사회에서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도 우리가 사회에서 겪는 차별, 부조리가 과일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 숨은 농민 찾기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5/findfarmer/
☞ [뉴스레터 점선면] 사과, 비싼데 수입하면 안 될까?
https://www.khan.co.kr/article/202405040700001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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