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열린 빈퓨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젠슨황 엔비디아 CEO(왼쪽 셋째)와 팜민찐 베트남 총리(왼쪽 둘째)
[신짜오 베트남 - 328]‘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최대 대기업 집단인 ‘빈그룹’의 행보를 보면 베트남 정부가 그리는 미래상을 알 수 있습니다.
빈그룹의 시초는 라면 공장이었습니다. 빈그룹 창업자 팜느엇브엉은 우크라이나에서 라면 사업을 짭짤하게 재미를 보고 고향인 베트남에 돌아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빈그룹을 키운 건 주로 내수 사업이었습니다. 베트남 최대 네트워크를 구축한 빈마트, 베트남 고급 아파트 보급에 앞장선 빈홈즈(건설) 등을 비롯해 병원(빈멕국제병원), 레저(빈펄리조트)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베트남 내수를 책임지는 그룹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여간의 빈그룹 행보를 보면 이제 내수 기업을 떠나 첨단 산업 대표주자가 되려는 움직임이 읽힙니다. 스마트폰 사업(빈스마트)과 자동차 사업(빈패스트)에 진출하기 위해 알짜인 빈마트 사업은 접어버렸고, 심지어 야심차게 시작한 스마트폰 사업도 전기차에 집중하느라 중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업 재편은 결국 베트남을 첨단 산업으로 이끌기 위한 베트남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 고위층은 한국 기업과의 만남을 할 때마다 첨단 기술 분야 투자를 늘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과거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전 주석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날 때도 그랬습니다. 베트남을 생산기지로만 보지 말고 제조업 기술력을 높이는 연구개발(R&D) 센터로 봐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얼마 전 한국 기업과 간담회를 연 팜민찐 베트남 총리 역시 자리에 모인 한국 기업을 놓고 거의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지난 3월 4일 팜민찐 총리는 하노이에서 한국 기업들과 간담회를 갖고 첨단 기술을 베트남에 이전해주고 베트남 고급 인력 양성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R&D 센터를 설립하고 전문가와 고급 인력을 베트남으로 계속 데려와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베트남은 연간 1인당 GDP를 6-7% 가량 증가시키며 고속 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수 위주의 성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을 한 단계 더 도약시켜 동남아를 선도하는 강국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결국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옆 나라 태국은 1인당 GDP가 아직 8000달러가 채 되지 않지만 벌써부터 제조업이 쇠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태국은 지난해 중국산 저가 수입품 공세에 따른 제조업 타격 등으로 인해 예상에 크게 못 미치는 2.5%의 성장에 그쳤습니다.
전년 성장률(2.0%)보다는 올라갔지만 벌써부터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모습입니다. 지난해 관광객은 정부 목표인 3500만 명을 크게 웃돌며 선방했지만 제조업 부문이 -0.5%의 역성장을 기록하며 발목을 잡았습니다.
태국을 넘어 동남아 맹주를 꿈꾸는 베트남 입장에서 결국 막강한 제조업이 없으면 성장에 한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베트남은 일본계 자금이 휩쓰는 동남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 자본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국가입니다. 그들은 한국이 제조업의 힘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고,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고 검증된 성장 방정식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첨단 기술 인재에는 소득세를 깎아주는 방법까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VN익스프레스를 비롯한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트남 재무부는 고급 기술 인력에 대한 소득세 감면을 추가하는 내용을 소득세 개정안에 포함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정 분야의 기업이나 프로젝트에서 근무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직장인에 한해 세금을 깎아주는 식으로 인재 유입 물꼬를 트겠다는 것입니다.
고급 기술 인력과 디지털 기술 인재들이 베트남에서 일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세제 혜택 정책이 있어야 우수 인재를 자국에 유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법무부와 정보통신부 등 연관 부처도 이 같은 방침에 동의하며 소득세 감면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소득세를 아예 면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베트남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앞서 베트남은 지난 2023년 호치민시에서 활동하는 고급 기술 인력 등의 전문가에 대해 5년간 소득세를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한 바 있습니다.
과학 기술에 대한 베트남의 진심은 ‘베트남판 노벨상’으로 불리는 ‘빈퓨쳐상’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시상식은 빈그룹 주도로 베트남 정부의 후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한국으로 치면 삼성그룹이 전 세계 과학 기술에 이바지한 과학자를 상대로 상금을 주는 식입니다.
지난해 빈퓨처상은 4개의 최우수 연구 사업을 선정했습니다. 2024년 빈퓨처상 본상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제프리 힌튼 교수 토론토대 교수를 축으로 5명의 과학자가 받았습니다. 힌튼 교수는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저명한 과학자입니다.
빈그룹이 수백만 달러의 상금을 내는 이 행사는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세계적인 과학 분야 수상식으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시상식에는 팜민찐 총리를 비롯한 정부 최고위 관계자가 나와 베트남 과학 발전에 대한 의지가 담긴 연설을 합니다.
결국 빈그룹이 돈을 써서 만든 자리를 통해 베트남 정부가 과학 인재를 끌어오는 밑그림으로 돌아가는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빈그룹을 필두로 베트남 경제 체질을 근본부터 바꾸려는 베트남 정부의 구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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