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박사방 사건으로 수면 위에 올랐던 디지털 성범죄의 참상은 끝나지 않았다. 기술·플랫폼과 결합하며 더 광범위하고, 악랄해졌을 뿐이다. 주요 가해자 몇 명을 처벌하는 정도로 이 문제를 묻어두면서 우리 사회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난해 불거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들이 그 사례다. 기술을 앞세운 이 신종 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피해자의 연령대는 더 낮아지고, 암약하는 '공범들'의 규모는 불어나고 있다. 뉴스타파와 추적단 불꽃이 끊임없이 반복·확대되는 디지털 성범죄의 근원, 익명의 '공범들'을 추적한다.
① 텔레그램 '겹지방'에 잠입하다
② 학교로 간 딥페이크, 가해자가 돌아왔다 (가제)
③ 누구나 피해자도, 공범도 될 수 있다 (가제)
‘겹지방 큰손’이 잡혔다
겹지방. 겹지는 '겹치는 지인'을 줄인 은어다.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에는 지역별, 나이별, 학교별로 개설된 대화방인 겹지방이 존재한다. 단순 검색으로도 수십 개 겹지방을 찾을 수 있다.
많게는 수천 명이 하나의 겹지방에 참여한다. 이들은 지인의 신상 정보를 올려 '겹치는 지인'을 찾는다. 그리고 인공지능 기반의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를 활용해 해당 인물이 합성된 성범죄물을 만들어낸다. 쉽게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들은 기꺼이 디지털 성범죄의 공범이 된다.
지난해 여름, 겹지방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졌다. 언론 보도가 나오고 경찰이 수사팀을 꾸렸다. 경찰이 집중 수사를 벌였던 지난해 10월 결국 이 딥페이크 성범죄 생태계의 '큰손'이 잡혔다.
체포된 사람은 대학생 정 모 씨였다. 그는 불법 합성 영상 700여 개를 제작해 텔레그램으로 유포했다. 범행은 2020년 3월 시작돼 지난해 9월까지 이어졌다. 주로 지인이나 연예인 사진을 허위 영상물로 만들었다.
‘지인 합성 X리게 해드립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2020년 3월 정 씨는 이 광고 글을 보고 처음 ‘텔레그램 성착취 생태계‘에 발을 들였다. 정 씨는 자신의 지인 사진을 나체와 합성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피해자의 사진을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 전송했다.
5년이 지난 2024년, 그는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었다. 그는 직접 겹지방을 여러 개를 운영하며 '딥페이크 봇’을 이용한 성적인 허위 사진, 영상물을 불법 합성하고 유통했다.
정 씨의 겹지방에는 시스템이 있었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의 인적 사항과 일상 사진, 허위 영상물 등을 올려야 입장할 수 있었다. 경찰에게 꼬리 잡히지 않기 위한 일종의 진입 장벽이었다. 정 씨의 겹지방에서 활동했던 '공범'은 100명이 넘었다. 이후 정 씨의 범행은 한발 더 나아갔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 “합성 사진을 유포하기 전에 시키는 대로 하라”며 성착취를 시도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시작된 범죄가 결국 오프라인 범죄로 확대되는 양상은 N번방, 박사방 사건 등 이전 디지털 성범죄 때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처음에는 단순 가담자 내지 공범이었다가, 나중에는 직접 피해자에 대한 성착취 범행까지 나서는 것이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전형이다.
△ 텔레그램 (가칭)‘전국구 겹지방’ 대화내용 중 일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또 다른 특징은 당장 피해자가 누구인지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이전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경우, 언론에 대대적으로 사건이 보도된 이후에야 피해 사실을 인지한 피해자가 많았다. 정 씨의 범행 역시 수년간 지속된 데다, 피해자가 자신이 이러한 범죄 피해를 입은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 수사 결과로 드러난 것보다 실제 피해 규모가 클 가능성이 높다.
정 씨는 체포됐지만, 그가 벌인 딥페이크 범죄는 매듭 지어지지 않았다. 그가 만든 대화방에서 활동하던 100여 명 공범에 대해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경기북부경찰청이 해당 사건의 공범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지만, 아직 알려진 성과는 없다. 이 사건 공범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즐겨 이용하던 딥페이크 성범죄의 창구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다.
‘겹지방’ 잠입에 성공하다
추적단 불꽃은 이른바 '겹지방 큰손' 정 씨가 활동했던 대화방에 있었던 공범들의 흔적을 직접 추적했다. 지난해 12월 2일부터 올해 3월 7일까지 약 3개월간, 총 50여 개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해 대화 내용을 모니터링했다. 취재 활동을 통해 입수한 내용 일체는 보도 이후 수사기관에 전달할 예정이다.
△ 텔레그램 대화방 잠입 모니터링 중인 원은지 대표
정 씨가 체포된 지 2개월이 지난 뒤에도 그의 겹지방에서 활동하던 공범들의 범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대표는 해당 대화방에서 활동하는 텔레그램 닉네임 ‘bebe’(가칭)의 활동에 주목했다.
bebe는 정 씨가 잡혀갔다는 사실은 모른 채 텔레그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원 대표는 bebe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 정 씨가 텔레그램에서 여러 개의 겹지방을 운영하고 있었고, 여전히 수사망에 걸리지 않은 가해자들이 새로운 겹지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추적단 불꽃은 2024년 12월 8일 bebe를 통해 연결 받은 <경기도 지인능욕방>(가칭, 2차 피해 유발을 방지하기 위해 가칭을 사용)에 잠입했다. 이 대화방은 현재 <전국구 겹지방>(가칭)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경찰 단속이 강화된 시기, 이들 겹지방은 보안을 강화했다. 지난해 11월부터 12월 말까지 참여자 수를 50명 미만으로 제한하고, 철저히 소규모 운영했다. 그러다 올해 1월부터는 SNS를 통해 대화방을 홍보하며 참여자 수를 늘렸다. 참여자 수는 금세 1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지난 2월 5일경에는 <전국구 겹지방>이라고 방제를 바꾸고, 대화방을 아예 공개 형태로 전환했다. 겹지방 큰손이 체포된 이후 4개월 만에 범죄의 '시스템'이 복원된 형국이다.
모니터링 중이던 취재진에게도 이러한 분위기 변화는 그대로 감지됐다. 지난해 연말 특별 단속 수사 당시 삭막했던 텔레그램 대화방의 분위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풀어졌다.
겹지방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국 시도별로 카테고리를 나눠 운영되고 있다. 참여자가 효율적으로 ‘겹치는 지인’ 찾기 위한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라는 겹지방 대화방에 “부산 09 ooo(피해자 이름)”라는 메시지가 올라오면, 누군가 "서로 아는 지인"이라고 호응한다. 그때부터 이들은 개인 텔레그램(약어 'ㄱㅌ')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딥페이크 범행을 저지른다. 일종의 '공범' 찾기 모임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밤에도 겹지방의 활동을 계속되고 있었다. 추적단 불꽃은 당시에도 텔레그램 대화방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대화방의 메시지들은 현실의 공포와 동떨어져 있었다. '계엄령', '교환의 봄'이라는 방제로 대화방이 개설됐고, 대화방 안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성 화장실 몰래카메라 영상이 오갔다.
현실의 비상계엄만큼이나 텔레그램 '겹지방' 안의 상황은 말 그대로 비상사태라고 느꼈습니다. 여성과 아동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었고, 이른바 딥페이크라 불리는 사진과 영상이 대화방에 올라왔습니다. 딥페이크의 공범들에게 현실의 비상계엄이란 것이 디지털 성범죄를 멈출 만큼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텔레그램 속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를 모니터링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 원은지 추적단 불꽃 대표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언론 보도를 통해 이른바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이 알려졌다. 수사를 통해 드러난 피해자는 61명, 총 2,034 건의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제작·유포됐다. 범인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거나 재학 중이던 남성이었다. 이들은 동문 후배들의 사진을 이용해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했다. 추적단 불꽃이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 취재를 벌여 경찰과 협업해 주범을 잡았다.
이 사건은 주요 가해자를 체포하고, 재판에 부치더라도 딥페이크 성범죄의 상흔은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주범 박 모 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공범 강 모 씨와 또 다른 박 모 씨는 각각 4년, 5년형의 중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에 가담한 나머지 '공범'들은 모두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이들이 활동했던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42명이 참여하고 있었고,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제작한 인원도 5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취재진은 이 사건 피해자 루마(가명) 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2022년 여름 피해를 입은 서울대 동문들과 함께 피해를 신고하기 위해 경찰청에 찾아갔던 순간을 떠올렸다. 피해 사실을 정리해 의견서로 제출했지만 경찰은 되레 피해자들이 피고소인을 특정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 서울대 딥페이크 피해자 루마
그해 겨울, 경찰은 사건을 불기소 의견 송치했다. 검찰도 그대로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에 이의 신청을 하고 서울고등법원에 재정 신청을 했다. 변호사는 어려울 것이라 말했지만, 법원은 재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얼마 뒤 멈춰 섰던 경찰의 수사도 국가수사본부의 지시로 재개됐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익명의 가해자로부터 끔찍한 성희롱 메시지와 불법 합성물을 받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N번방 사건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데 기여했던 추적단 불꽃을 찾았다. 원은지 대표는 이때부터 범인과 텔레그램에서 대화를 나누며 단서를 수집했다.
추적단 불꽃은 텔레그램 메시지로 대화를 나눌 때 '서울대를 졸업한 미모의 아내가 있는 30대 남성'인 척 연기했다. 박 씨는 ‘서울대’와 ‘아내’라는 키워드에 꽂혀 대화를 나눈 2년 가까이 아내의 ‘속옷’을 원했다. 속옷 사진을 보내주기를 지속적으로 원했던 그에게 검거 직전 미끼를 던졌다. 속옷을 거래하자는 말에 처음에는 주춤하던 그가 거래하기 안전한 장소를 먼저 제안했다.
첫 거래 당시 박 씨가 원하는 장소에 두었던 속옷이 사라지는 불상사가 생겼다. 서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박 씨는 대뜸 추적단 불꽃에게 1,000만 원을 준다고 했다. 추적단 불꽃이 본인의 뒤를 밟아 약점을 잡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박 씨는 “약속한 장소에 속옷이 없다"며 "혹시 본인을 미행한거냐”는 내용의 폭탄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원 대표는 수집한 단서를 토대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팀에 협업을 제안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협업 수사 2달 만에 주범 박 모 씨를 검거했다. 텔레그램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발생한 성범죄의 경우, 사실상 범인을 잡기 힘들다는 경찰의 통념이 추적단 불꽃의 활동으로 깨진 셈이다.
△ 수사보고서 /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의 주범 박 모 씨
박 씨는 피의자 신문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이유에 대해 “그게 재미가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그는 “허세라고 해야 하나요? 방장 같은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수사를 통해 드러난 박 씨의 범죄 기간은 3년 6개월, 범행 중 그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대화방을 직접 개설하기도 했다.
경찰은 주범 박 씨의 여죄를 조사하며 공범 5명을 검거했다. 3명을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했다. 구속된 두 명 중 한 명은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강 씨였다. 이들 공범들은 텔레그램을 통해 만난 사이였다.
“지인 능욕방이 한창 많을 때였습니다. 그때 호기심에 어떤 지인 능욕방에 들어갔다가 어떤 사람이 자기 지인을 올렸는데, 제가 학교에서 봤던 사람이어서 그 사람과 저 사이에 공통 지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런 얘기를 그 사람(박 씨)과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 - 공범 강 모 씨 진술조서
이들은 일명 'X올'이라는 일종의 인증 행위를 해가며 공범 관계를 맺었다. 강 씨는 수사 과정에서 “박 씨에게 지인들의 사진을 합성해서 보내주면 그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에 만족감을 느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고 진술했다.
주범 박 모 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공범 강 모 씨와 또 다른 박 모 씨는 1심에서 각각 징역 4년에서 5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의 정도를 제작·유포된 딥페이크 성범죄물의 숫자로 가늠했다. 피해자들은 이러한 사진과 영상을 수집해가며 자신의 피해 정도를 증명해야 했다. 취재진과 만난 피해자들은 "죗값을 매길 때 숫자보다도 피해자가 이러한 사건을 겪으며 거쳐야 하는 언어폭력과 추가 범죄의 공포, 심지어 스스로 증거 수집과 피의자 특정을 해야 하는 등 현실의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주요 가해자 3명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왔지만, 나머지 40여 명의 참여자 '공범'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요원한 상태다. 공범으로 검거된 5명 가운데 일부도 결국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피해는 엄연히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극히 일부만 처벌받는 일이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들 가해자들의 범행은 단순히 딥페이크 성범죄 하나로 국한되는 경우가 드물다. 실제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주범 박 씨는 추적단 불꽃의 위장 계정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N번방 가보셨나요?” “자료 드릴까요?”. 실제로 박 씨는 성관계 불법 촬영물과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망을 벗어난 공범에 의해 피해가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다시 피해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취를 감춘 공범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들의 딥페이크 성범죄물도 여전히 그들의 손아귀 안에 있다. 이미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쨌든 박 씨와 강 씨가 잡혔고, 그들을 재판정까지 이끌어냈고 검사가 구형한 대로 판결이 1심에서는 적어도 나왔다는 점까지만 보면 일부 해결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해결된 부분보다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허위 영상물이라고 하면 그냥 나체 사진에 섹시한 이미지, 혹은 몸 사진에 얼굴을 입힌 거다는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받아본 이미지들은 그런 느낌은 진짜 아니에요. 수갑을 채워놓은 여성, 여성의 몸에 낙서, 욕설을 새겨놓은 그런 사진. 굉장히 폭력성이 강한, 그리고 집단으로 남성들이 한 명의 여성을 강간하는 듯한 그런 이미지에 여성의 얼굴을 입혀요. 몸은 다른 여성 피해자들인데. 제 얼굴이 들어가 있고. 내가 아니지만, 가해자 그들의 망상과 그들의 뇌 속에서는 '나'였을 무언가
- - 루마,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피해자
(2편에서 계속)
뉴스타파 김새봄 springns@newstapa.org
뉴스타파 추적단불꽃 / 원은지 대표 56fl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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