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서 비만 진단 기준 논의
홍준화 을지대 의대 교수가 14일 서울 광진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이병철 기자
한국인의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비만의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만의 기준을 높이면 비만에 대한 경각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반대했다.
홍준화 을지대 의대 교수는 14일 서울 광진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비만 기준을 완화하기보다는 그대로 유지해 선제적으로 관리와 예방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비만 진단 기준 지침에 대한 토론 패널로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국내에서 비만은 지방의 과도한 축적으로 인해 장기가 손상을 받고, 이로 인해 다른 질환을 유발하는 상태로 정의된다. 하지만 비만 여부를 진단할 때는 지방 축적 정도를 측정하는 대신,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BMI(체질량지수)를 활용한다. 지방 축적을 평가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드는 반면, BMI는 키와 몸무게를 측정해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서는 BMI 25를 기준으로 비만으로 진단한다. BMI 25는 성인 남성 평균 키 171.5㎝를 고려했을 때 몸무게가 74㎏인 경우에 해당한다. BMI가 25를 넘으면 비만, 23.0~24.9는 과체중 혹은 비만 전단계로 보고 있다. 김양현 고려대 의대 교수는 “아시아 국가는 대부분 BMI 25를 비만의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 유럽 등 백인 중심 국가의 기준보다는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호주를 비롯한 서양 국가 대부분은 BMI 30을 비만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1995년 처음 비만의 기준을 정할 때 BMI 30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한국에서는 비만으로 분류되던 사람도 미국에 가면 정상으로 진단을 받을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열린 한국보건교육건강진흥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한국인의 비만 기준을 BMI 25 이상에서 27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BMI 27 이상일 때 질병이나 사망 위험률이 높아지므로 이를 비만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보공단은 2002~2003년 건강검진을 받은 성인 847만명을 대상으로 BMI에 따른 사망률의 변화를 21년간 추적했다. 그 결과, BMI가 25 수준일 때는 사망 위험률이 낮고, 29를 기준으로 이전 구간 대비 사망 위험률이 2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은 BMI 27에서, 김혈관질환은 29, 뇌혈관 질환은 31에서 발생 위험이 급격히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공단은 이를 모두 고려해 비만 기준을 BMI 27로 조정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비만의 BMI 기준이 오르면 이전에는 비만으로 분류되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과체중 또는 정상으로 분류된다. 몸 상태는 그대로인데, 기준이 바뀌며 환자에서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입장에서는 비만 환자가 줄면 그만큼 의료비 지출이 줄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의료계는 비만의 기준을 사망률과 연관지을 것이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수면장애 등 관련 질환의 발병 위험성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양현 교수는 “WHO가 2000년 제시한 인종별 비만 기준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는 BMI 25가 적당하다”며 “이는 비만으로 인한 관련 질환의 발병률이 BMI 25를 기준으로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준화 교수도 국내 비만 관련 질환 위험성을 고려했을 때 BMI 기준을 25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중국의 사례를 들면서 국가와 인종에 따른 자체적인 BMI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중국은 오히려 비만의 BMI 기준을 30으로 적용하다가 28로 내렸다”며 “자국민 대상 연구를 통해 비만 관련 질환의 위험성이 커지는 지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비만 진단을 위해서는 BMI가 아닌 보다 정확한 지표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홍 교수는 “비만을 정의하는 과도한 체지방이 얼만인지, 어떻게 분포됐는지에 따라 허리둘레나 체성분분석 등 여러 기준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인슐린이나 저밀도 콜레스테롤(LDL) 등 혈중 지표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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