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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변기 전시하고 여장 사진찍고...예술을 파괴했던 예술가 [나를 그린 화가들]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37
2024-11-09 13:41:52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1cVWmo5rMK">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tw6XCj3Iib"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레디메이드 작품 ‘샘’ 앞에 앉아 있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1737pcgj.jpg" data-org-width="361" dmcf-mid="V5BfUYxpdi"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1737pcgj.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레디메이드 작품 ‘샘’ 앞에 앉아 있다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FkfYsg1mRB" dmcf-ptype="general"> 1917년 미국 뉴욕, 공중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남성용 소변기를 예술 전시회에 출품한 남성이 있습니다. 그는 소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짓고, ‘R. 머트’라고 서명했습니다. </div> <p dmcf-pid="35kVpWQ0iq" dmcf-ptype="general">‘저게 예술이라고? 저런 건 나도 하겠다’는 생각을 한 독자분들이 있을 겁니다.</p> <p dmcf-pid="0lJpYmBWJz" dmcf-ptype="general">이 작품을 받은 독립예술가협회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샘’을 전시할지 말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투표 결과 ‘샘’은 전시 대상에서 제외됐죠. 협회 이사회는 ‘샘’이 어떤 정의에 의해서도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p> <p dmcf-pid="pGNbtS41J7" dmcf-ptype="general">그런데 협회 사람들은 생각이나 했을까요. 당시 협회 작품 설치 위원회 의장이었던 마르셀 뒤샹이 몰래 ‘샘’을 출품했다는 사실을요.</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U8XjRKwMnu"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샘’, 1950년 제작된 복제품"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3242entg.jpg" data-org-width="658" dmcf-mid="fHCYsg1mnJ"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3242entg.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샘’, 1950년 제작된 복제품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uLzCARyjnU" dmcf-ptype="general"> 뉴욕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놨던 뒤샹의 ‘샘’은 이제 미술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div> <p dmcf-pid="7R3wL8Cnip" dmcf-ptype="general">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이 변기가 왜 대단한 건데?’라는 질문을 하지만요.</p> <p dmcf-pid="zR3wL8CnJ0" dmcf-ptype="general"><strong>미술계의 이단아였던 뒤샹은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strong></p> <div dmcf-pid="qrPZhA0CJ3" dmcf-ptype="general"> <div> <strong>파리서 ‘철거’ 수모당한 작품…뉴욕에선 대박</strong> </div>1887년 프랑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뒤샹은 처음에 회화로 그림을 시작합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풍자 만화와 유화를 그렸습니다. </div> <p dmcf-pid="Bsx1SkUlLF" dmcf-ptype="general">1911년부터 뒤샹은 기계적 움직임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 파블로 피카소 등이 주도한 입체주의를 시도했죠. 입체주의는 대상을 여러 파편으로 분해한 후,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담아내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bVYgQqkPRt"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 1912"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4619cucr.jpg" data-org-width="700" dmcf-mid="4nb6zXe7id"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4619cucr.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 1912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KFw87HRuR1" dmcf-ptype="general">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는 이런 시도가 돋보입니다. 그는 입체주의자들이 주관한 ‘살롱 드 쟁데팡당’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div> <p dmcf-pid="99yL67A8d5" dmcf-ptype="general">이 전시는 심사와 수상 제도를 없애 실험적인 예술 운동을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시회를 주관한 협회에선 이 작품을 철거할 것을 요구했죠.</p> <p dmcf-pid="2e0ro6hLiZ" dmcf-ptype="general">협회 측은 이 그림이 입체주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뒤샹의 그림이 이탈리아 미래파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죠. 미래파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p> <p dmcf-pid="VcVWmo5rnX" dmcf-ptype="general">뒤샹은 결국 이 그림을 철거했습니다. 이후 이 작품은 뉴욕에서 열린 국제현대미술전에 출품되면서 성공을 거둡니다. 파리에서 작품을 거절당하면서 뒤샹은 자신들을 개방적이라고 규정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불신하게 됐습니다.</p> <div dmcf-pid="f2WoPzc6RH" dmcf-ptype="general"> <div> <strong>변기 출품한 미술가, 예술의 독창성에 도전하다</strong> </div> <strong>뒤샹은 산업 시대에 생산되는 제품의 형식적 미가 기존의 조각과 회화를 위협한다고 봤습니다. </strong>1912년 항공 공학 박람회에서 전시된 비행기 프로펠러를 보고<strong> “회화는 끝났다”</strong>며<strong> “누가 이 프로펠러보다 더 멋진 걸 만들 수 있나?”</strong>고 말했죠. </div> <p dmcf-pid="48XjRKwMRG" dmcf-ptype="general">대량 복제품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그는 소변기를 ‘샘’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킵니다. 그리고 ‘샘’을 뉴욕의 독립예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했죠. <strong>뒤샹은 ‘샘’을 통해 미술 작품의 개념이 확장되기를 바랐습니다.</strong></p> <p dmcf-pid="8Ce3ywzTnY" dmcf-ptype="general">이 협회는 엘리트주의와 상업주의로부터 자유롭고 새로운 형식의 아트 포럼을 추구했습니다. ‘심사위원도 상도 없다’는 것이 협회의 원칙이었습니다. 회비 6달러만 내면 누구나 작품 두 점을 무료로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p> <p dmcf-pid="6Fw87HRuiW" dmcf-ptype="general"><strong>하지만 ‘샘’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strong>협회는 ‘샘’을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만 바라봤습니다. 그저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배설과 연관이 있는 변기가 숭고한 가치를 구현하는 미술이 될 수 없다고 봤습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PKTn8uj4Ly"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잡지 ‘블라인드’ 제2호에 실린 ‘샘’ 사진,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촬영, 1917"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5987ssdi.jpg" data-org-width="700" dmcf-mid="8AxL67A8de"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5987ssdi.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잡지 ‘블라인드’ 제2호에 실린 ‘샘’ 사진,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촬영, 1917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QGNbtS41RT" dmcf-ptype="general"> 뒤샹은 잡지를 통해 샘을 옹호하는 글을 냈습니다. </div> <p dmcf-pid="xWgq5hVZiv" dmcf-ptype="general"><strong>“머트씨가 자신의 손으로 ‘샘’을 만들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는 일상적인 오브제를 취해, 그것의 일상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배치했다. </strong><strong>새로운 제목과 새로운 관점을 통해 그는 그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 냈다.”</strong></p> <p dmcf-pid="yFw87HRuiS" dmcf-ptype="general"><strong>“배관 제품이라서 안 된다고? 한마디로 웃기는 말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내놓은 유일한 예술작품이 배관과 다리 아니던가.”</strong></p> <p dmcf-pid="WrPZhA0CMl" dmcf-ptype="general"><strong>뒤샹은 예술을 신성시하는 태도를 거부하고, 삶과 예술을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strong></p> <p dmcf-pid="Y7CR9FLKdh" dmcf-ptype="general">또 <strong>‘레디메이드’</strong> 개념을 미술에 도입했습니다. <strong>이는 예술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대신, 기성품을 선택해 예술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strong></p> <p dmcf-pid="GXA93T6FMC" dmcf-ptype="general"><strong>이때 예술가의 행위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오브제를 선택하고, 이름을 붙이고, 사인하는 행위로 대체됩니다.</strong> ‘샘’ 역시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죠.</p> <p dmcf-pid="HSiUGsbYRI" dmcf-ptype="general"><strong>예술 작품의 본질은 형태, 재료와 같은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작가의 제작 의도 자체라는 점</strong>을 강조한 것인데요. 뒤샹은 미술품 자체보다는 예술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p> <p dmcf-pid="XQ1kJVsdnO" dmcf-ptype="general">뒤샹은 또 예술 작품에서 관람자의 역할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작 행위는 예술가 혼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작품을 해석함으로써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p> <div dmcf-pid="Z3r6zXe7Ls" dmcf-ptype="general"> <div> <strong>모나리자 그림에 장난…‘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strong> </div>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59yL67A8dm"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L.H.O.O.Q(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 1919"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7330wnqx.jpg" data-org-width="668" dmcf-mid="6Y45lcphiR"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7330wnqx.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L.H.O.O.Q(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 1919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1e0ro6hLJr" dmcf-ptype="general"> 뒤샹은 모나리자 그림에 장난스럽게 낙서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모나리자 그림을 담은 우편엽서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리고, 그 아래 ‘L.H.O.O.Q’라고 썼죠. </div> <p dmcf-pid="tP5cd2meMw" dmcf-ptype="general">‘L.H.O.O.Q’를 프랑스어로 말하면<strong>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strong>라는 말과 동일하게 들립니다.</p> <p dmcf-pid="FqldV0g2JD" dmcf-ptype="general"><strong>모나리자는 순수 미술의 상징</strong>과 같이 여겨지는 작품입니다. 제도권 미술에 속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기도 합니다.</p> <p dmcf-pid="3OMtvEuSnE" dmcf-ptype="general">모나리자에 이렇게 낙서하고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고 쓴 뒤샹은 전통 예술을 조롱한 셈이죠. <strong>뒤샹은 미술가와 미술 작품을 신성시하는 전통적 태도를 거부했습니다.</strong><strong>반미학적이고 반예술적인 태도</strong>를 보인 것이죠.</p> <p dmcf-pid="0xtEifOJMk" dmcf-ptype="general">뒤샹은 대표적인 다다이즘 작가로 분류됩니다. <strong>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반대하며 반문명·반합리·반미학적인 예술을 추구하던 운동이었습니다. </strong>다다이스트들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구 문명의 물질주의가 전쟁을 초래했다고 봤습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pe0ro6hLic"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자신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 1915~1923"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8701xnve.jpg" data-org-width="700" dmcf-mid="PVvgQqkPRM"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08701xnve.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자신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 1915~1923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Usx1SkUlnA" dmcf-ptype="general"> 뒤샹은 나아가 자신의 <strong>개인적 취향이나 손재주를 작품에서 배제하고, 아이디어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strong>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큰 유리’라고 불리는 ‘자신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div> <p dmcf-pid="uNKvDiHEej" dmcf-ptype="general">이 작품은 유리판과 니스, 납, 호일, 철사 등을 사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나무틀과 캔버스로 대표되는 기존의 회화 방식을 버린 셈입니다. 뒤샹은 자신의 회화적 기술이 작품에 개입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p> <p dmcf-pid="7e0ro6hLeN" dmcf-ptype="general">‘큰 유리’는 위와 아래의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위쪽에는 신부가 매달려 있습니다. 기계 같아 보이기도 하고, 곤충처럼 보이기도 하죠. 아래 왼편에는 아홉명의 독신남을 상징하는 모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두 개의 프레임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신부에게 닿을 수 없습니다.</p> <div dmcf-pid="zkfYsg1mia" dmcf-ptype="general"> <div> <strong>들고 다니는 미술관</strong> </div>뒤샹은 자기 작품을 복제했습니다. <strong>본인 작품의 모조품을 만든 셈입니다. </strong>상자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작게 아주 많이 만들었습니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qGNbtS41ig"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녹색 상자’, 1934"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0129ojxg.jpg" data-org-width="700" dmcf-mid="QUa20yP3n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0129ojxg.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녹색 상자’, 1934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BTMtvEuSio" dmcf-ptype="general"> 자신의 전작을 모아 복제품 앨범의 형태로 ‘녹색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제작한 녹색 상자 수는 보급판 300개, 고급판 20개에 달합니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b3jKFv8tLL"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여행 가방 속 상자(마르셀 뒤샹의 또는 마르셀 뒤샹에 의한, 에로즈 셀라비의 또는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 1935~1941년 제작"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1558sbno.jpg" data-org-width="700" dmcf-mid="xQYwL8Cnn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1558sbno.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여행 가방 속 상자(마르셀 뒤샹의 또는 마르셀 뒤샹에 의한, 에로즈 셀라비의 또는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 1935~1941년 제작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KyRFTD7ven" dmcf-ptype="general"> 이후 뒤샹은 300개가 넘는 ‘여행 가방 속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영업사원이 가지고 다닐 만한 가방 안에 작품을 모아둔 것입니다. <strong>이 가방이 있다면 미술관에서 독립해 휴대용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죠. </strong> </div> <p dmcf-pid="9SQ5lcphLi" dmcf-ptype="general">뒤샹은 레디메이드까지 총 69점의 작품을 2차원과 3차원의 미니어처 복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시용 상자에 넣어 완성했죠. 작은 소변기 모양인 ‘샘’의 복제품도 있었습니다.</p> <p dmcf-pid="2BmPqZdziJ" dmcf-ptype="general">24점의 고급형은 손잡이가 달린 가죽 케이스 안에 담겨 있고, 300점의 일반형은 평범한 상자 안에 담겨 있다고 전해집니다.</p> <p dmcf-pid="V1gq5hVZid" dmcf-ptype="general">뒤샹이 이렇게 많이 자기 작품을 복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strong>작품이 팔리고 미술관에 들어가면, 그 작품은 신성화됩니다.</strong></p> <p dmcf-pid="fuEfUYxpee" dmcf-ptype="general"><strong>뒤샹은 자기 작품을 복제하면서 산업품과 미술품, 생산과 창작, 대량생산과 유일성을 구별하는 태도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strong></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4LFDn4IieR"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이 ‘여행 가방 속 상자’를 열어 보여주는 모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2911embo.jpg" data-org-width="700" dmcf-mid="ycEe23o9i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2911embo.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이 ‘여행 가방 속 상자’를 열어 보여주는 모습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8UkVpWQ0LM" dmcf-ptype="general"> 이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지적한 점과도 상통합니다. <strong>벤야민은 사진과 영화가 등장하면서 예술 작품의 일회성과 진품성이 사라진다고 봤습니다.</strong> 전통적인 예술 작품에 있는 아우라가 붕괴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여겼죠. </div> <div dmcf-pid="6A7IjMTNLx" dmcf-ptype="general"> <div> <strong>뒤샹의 자화상</strong> </div>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PA7IjMTNnQ"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만 레이, ‘에로즈 셀라비’, 1921"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4192lgdy.jpg" data-org-width="571" dmcf-mid="WcUyrLZwe6"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4192lgdy.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만 레이, ‘에로즈 셀라비’, 1921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QWe3ywzTJP" dmcf-ptype="general"> 뒤샹은 이른바 부캐 놀이를 즐겼습니다. <strong>그는 자신의 여성형 자아를 만들어 ‘에로즈 셀라비’, 또는 ‘로즈 셀라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strong> </div> <p dmcf-pid="xGJpYmBWn6" dmcf-ptype="general">R울 두 번 겹쳐 쓴 에로즈 셀라비(Rrose Selavy)는 불어로 ‘에로스, 그것이야말로 삶(eros.. cest la vie)’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y2CR9FLKL8"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만 레이, ‘에로즈 셀라비’, 1924년 추정"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5471bqtq.jpg" data-org-width="556" dmcf-mid="YG54uGMUL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5471bqtq.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만 레이, ‘에로즈 셀라비’, 1924년 추정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Wm2yrLZwJ4" dmcf-ptype="general"> 에로즈 셀라비로 분한 뒤샹은 여성처럼 화장하고, 보석을 두르고 털목도리를 하고 여성용 모자를 썼습니다. 그의 친구 만 레이가 사진을 찍었죠. </div> <p dmcf-pid="YtaB1lf5df" dmcf-ptype="general">이 사진은 뒤샹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뒤샹은 에로즈 셀라비의 이름으로 작품에 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에로즈 셀라비를 통해 양성성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습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GUkVpWQ0dV"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이 숨겨진 거울을 이용해 찍은 사진, 1917"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6814abfm.jpg" data-org-width="700" dmcf-mid="GYhUGsbYe4"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6814abfm.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이 숨겨진 거울을 이용해 찍은 사진, 1917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H4SJfpaVe2" dmcf-ptype="general"> 뒤샹이 뉴욕 브로드웨이의 한 사진관에서 찍은 자화상입니다. 뒤샹은 숨겨진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다섯 번 나오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파이프를 문 뒤샹을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습니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XYd0Wrqyi9"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측면 자화상, 1957"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8309fwce.jpg" data-org-width="534" dmcf-mid="H0GVpWQ0L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8309fwce.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측면 자화상, 1957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Z5ozZC2XRK" dmcf-ptype="general"> 뒤샹이 말년에 제작한 자화상입니다. 그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서 여러 장 찍어낼 수 있는 자화상을 제작했습니다. </div> <p dmcf-pid="5eXjRKwMRb" dmcf-ptype="general">실크 스크린은 판화 기법으로 실크를 이용해 여러 장 찍어낼 수 있는 기법입니다. 앤디 워홀이 실크 스크린을 활용해 작품을 대량 복제했는데, 그 전에 뒤샹도 이 기법을 사용한 것입니다.</p> <div dmcf-pid="1m2yrLZwLB" dmcf-ptype="general"> <div> <strong>극비로 준비한 유작</strong> </div>뒤샹은 마지막까지도 유작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뉴욕에서 평온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뒤샹은 1955년 미국 시민권을 받은 후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div> <p dmcf-pid="tWe3ywzTMq" dmcf-ptype="general">그는 1946년부터 1966년까지 <strong>마지막 작품 ‘주어진 것’을 사람들 몰래 준비했습니다. </strong>뒤샹은 1968년 81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요. 뒤샹의 유언으로 ‘주어진 것’은 이듬해 설치됐습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Fg0ro6hLez"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주어진 것’, 1946~1966, 필라델피아 미술관"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9572nrse.jpg" data-org-width="700" dmcf-mid="XESq5hVZn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19572nrse.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주어진 것’, 1946~1966, 필라델피아 미술관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3NUsaQSgi7" dmcf-ptype="general"> 이 작품을 보러 온 관객은 커다란 나무 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문은 손잡이가 없고 열리지도 않습니다. 대신 내부를 볼 수 있게 작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0EBlkdYcdu"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 ‘주어진 것’(문을 통해 본 모습), 1946~1966"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20932eban.jpg" data-org-width="270" dmcf-mid="ZBxmgPloi2"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20932eban.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 ‘주어진 것’(문을 통해 본 모습), 1946~1966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pWe3ywzTiU" dmcf-ptype="general">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본 관객들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 </div> <p dmcf-pid="U6Tn8uj4ip" dmcf-ptype="general">마른 나뭇가지와 잎 위에 마네킹 같은 존재가 놓여 있습니다. 얼핏 보면 여성 같지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애매모호한 존재죠. 이 사람은 등불을 들고 있습니다.</p> <p dmcf-pid="uqr6zXe7i0" dmcf-ptype="general">이 작품은 <strong>예술이 관음증적인 욕망의 산물</strong>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관음증 환자가 된 관람객은 작품을 보면서 훔쳐보는 행위를 들킬 것 같은 기분이 들죠.</p> <p dmcf-pid="7taB1lf5i3" dmcf-ptype="general">뒤샹의 마지막 작품은 그가 1960년에 했던 말을 실천으로 옮긴 것 같습니다.</p> <p dmcf-pid="z4SJfpaVLF" dmcf-ptype="general">그는 <strong>“오늘날 예술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반종교적 임무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술 작품은 신성모독을 가장 충실하게 드러내고 내면적 통찰의 불을 밝히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strong>라고 말했죠.</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qNUsaQSgit"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레디메이드 작품 ‘자전거 바퀴’ 앞에 앉아 있는 모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22215zbmv.jpg" data-org-width="564" dmcf-mid="5bjKFv8tL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133022215zbmv.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레디메이드 작품 ‘자전거 바퀴’ 앞에 앉아 있는 모습.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BxYgQqkPd1" dmcf-ptype="general"> 뒤샹의 예술은 난해하고 사변적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전통적인 회화의 개념을 뒤집고 현대 미술의 흐름을 바꾼 것은 분명합니다. </div> <p dmcf-pid="bdZAe9rRL5" dmcf-ptype="general">뒤샹은 관람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낡은 관념에 도전했고, 미술계의 허위 의식과 위선을 꼬집었습니다.</p> <p dmcf-pid="Kg0ro6hLdZ" dmcf-ptype="general">뒤샹은 한 강연에서 “미래의 젊은 작가들은 더욱 멀리 나아가야 한다”며 “언제나 예술 혁명의 토대가 되는 충격의 새로운 가치가 빛을 보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p> <p dmcf-pid="96Tn8uj4eX" dmcf-ptype="general">오늘날 미술은 뒤샹의 작품으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요. 뒤샹이 제시한 예술의 개념을 한 번 더 넘어서기 위해선, 어떤 전복이 필요할까요.</p> <p dmcf-pid="2xYgQqkPnH" dmcf-ptype="general"><참고 문헌></p> <p dmcf-pid="VFNbtS41MG" dmcf-ptype="general">-매슈 애프런 외(2019),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p> <p dmcf-pid="fjuONxvadY" dmcf-ptype="general">-베르나르 마르카데(2010), 마르셀 뒤샹 :현대 미학의 창시자, 을유문화사</p> <p dmcf-pid="4GJpYmBWiW" dmcf-ptype="general">-돈 애즈·닐 콕스·데이비드 홉킨스(2009), 마르셀 뒤샹: 현대 미술의 혁명가, 시공사·시공아트</p> <p dmcf-pid="8FNbtS41Ry" dmcf-ptype="general">-마르크 파르투슈(2007), 뒤샹, 나를 말한다, 한길아트</p> <div dmcf-pid="6czCARyjiT" dmcf-ptype="general"> [나를 그린 화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예술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탐구하는 연재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예술가의 뒷이야기와 대표 작품을 격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div>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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